좋은 신보 소식은 봄이 오는 소식만큼이나 반갑다. 긴 겨울이 주는 권태를 달래줄 신보를 소개한다. 킹 크룰(King Krule)과 그라임스(Grimes)의 새 앨범이다. 두 앨범은 음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으로 가득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한 번에 내어 주진 않는다. 그 때문에 이 음악들을 몇 번이고 돌려 듣다 보면 봄이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1. Grimes <Miss Anthropo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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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임스(Grimes)의 5년 만의 새 앨범이다. 그라임스는 지난 10년간 판타지 콘셉트와 미래적인 사운드로 팝 음악의 틀을 깬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라임스가 10년 동안 노력을 쏟아부은 프로듀싱, 작곡, 팝스타에 관한 연구가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다섯 번째 앨범 <Miss Anthropocene>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Miss Anthropocene> 커버
이미지 출처 - 그라임스 인스타그램

<Miss Anthropocene> 앨범 역시 콘셉트 앨범이다. 악당 캐릭터인 기후변화의 여신 'Miss Anthropocene'이 인간이 환경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복수로 인류에 종말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앨범을 들으며 그라임스가 악당의 편에서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그라임스 트위터

<Miss Anthropocene>에서 그라임스는 수록곡 'New Gods'를 작업하며 갖게 된 새로운 신에 대한 욕망을 앨범 전체의 논지로 확장한다. 그는 앨범이 현대판 판테온이 되기를 희망하며 곡마다 각각 새로운 신 혹은 악마의 이름을 붙였다. 가사를 통해 각 곡이 어떤 신을 나타내는지 추측해볼 수 있겠다. 우선 'Delete Forever'는 약물 중독의 악마, 'Before The Fever'는 자아의 죽음의 여신이다.

앨범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만큼이나 <Miss Anthropocene>의 음악적 결과물도 무척 다채롭다. 그라임스는 팝 음악부터 스페이스 컨트리, 클럽 비트, 누 메탈, 중세 음악, 발리우드 OST 샘플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미래적인 사운드로 코팅한다. 반면에 앨범의 메세지는 전작에 비해 다소 어두워졌다. 그라임스는 작사를 하며 나쁜 충동을 따라 부정적인 감정을 앨범에 담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Delete Forever'는 Lil Peep이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날 쓴 곡이며, 'My Name Is Dark', 'You Will Miss Me When I'm Not Around'는 기분이 안 좋던 날의 충동적인 생각을 담은 곡이다.

그라임스 'Delete Forever'

<Miss Anthropocene>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대비되는 두 가지가 서로 만날 때 있다. 그라임스는 중세 음악이 미래의 사운드와 만나게 하고, 가장 어두운 곡이 천국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곡과 이어지게 배치하거나 슬픈 감정을 가장 깨끗한 사운드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대비에서 오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어두운 감정은 우리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라임스 '4ÆM'

 

2. King Krule <Man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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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크룰(King Krule)은 어느덧 장르 그 자체가 되었다. 약 10년 전의 킹 크룰은 우울과 분노의 감정을 펑크, 힙합, 노 웨이브, 트립 합과 재즈가 혼합된 장르에 담아 독특한 음악을 선보였다. 킹 크룰의 낮고 거친 보컬과 세상 모든 것에 화나 있는 태도까지 그의 음악과 캐릭터가 일치되는 점에 사람들이 그에게 빠지게 된 것 아닐까 싶다. 수년 동안 킹 크룰이 해온 음악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그의 영향을 받은 Yellow Days, Cosmo Pyke, Loyle Carner, Nilufer Yanya와 같은 영국의 신예 뮤지션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젠 아이콘과도 같은 킹 크룰은 얼마 전 새 앨범 <Man Alive!>를 공개했다.

이미지 출처 - <Man Alive!> 커버
이미지 출처 - Charlotte Patmore ⓒ

세 번째 앨범 <Man Alive!>는 그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달라진 이후 낸 첫 앨범이다. 앨범을 작업하는 사이에 킹 크룰은 연인 Charlotte Patmore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고, 고향인 런던을 떠나 교외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이런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킹 크룰과 우울함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그는 여전히 허탈함, 파멸, 좌절, 분노의 상태를 음색에 담아내고 있다. 2집인 <The Ooz>의 공동프로듀서인 Dilip Harris가 이번에도 함께 한 점도 전작과의 연결성을 보여준다.

앨범 <Man Alive!>가 전작과 차이를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Man Alive!>에서 그는 가사와 소리의 질감을 통해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Cellular'의 가사는 핸드폰을 붙잡고 안 좋은 뉴스와 전 여자친구의 연락처를 뒤적이는 킹 크룰을 상상하게 만들고, 'Theme for the Cross'는 딸을 껴안고 바다로 가라앉는 남자의 비통한 모습(”To men that drowned holding their daughters”)을 떠올리게 한다. 베이스, 색소폰, 기타 연주 소리는 멜로디 없이 잘린 소리 조각이 구간을 들락날락하며 장면의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 사용되는 것만 같다. 이는 킹 크룰이 시각적인 것에 예민한 예술 영화광인 점과 교외 생활이 바꿔준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새로운 습관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킹 크룰 'Cellular'
킹 크룰 'Theme for the Cross'

두 번째로는 앨범의 시퀀싱(Sequencing)이다. <Man Alive!>는 킹 크룰 앨범 중 40분이라는 가장 짧은 재생 시간을 특징으로 하는 앨범이다. 14곡이라는 적지 않은 트랙 수이지만 앨범의 절반 정도는 2분대의 짧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킹 크룰은 연결된 두 곡의 끝과 시작이 이어지게 하거나 전혀 다른 곡일 경우엔 분위기에 통일성을 주어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인상을 줄 수 있도록 곡의 배치와 배열에 신경을 썼다.

<Man Alive!>는 킹 크룰의 기억 속 한 장면과 이야기 모음집에 가깝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음악이 되지만 반면에 인상적인 싱글이 없는 앨범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킹 크룰의 음악은 이해하려고 다가간다면 한 편의 예술영화를 귀로 감상한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킹 크룰'Hey World!'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