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 <두 교황>(2019)은 공개 후 많은 관객으로부터 사랑받은 작품이다. <두 교황>의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리스는 브라질 출신으로, ‘2016 리우 올림픽’ 개막식을 인상적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페르난도 메이렐리스 외에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두 감독, <중앙역>(1998)의 월터 살레스와 <엘리트 스쿼드>(2007)의 호세 파딜라도 브라질 영화를 이야기하면 빠뜨릴 수 없다. 자신의 두 작품을 연속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시킨 클레버 멘도사 필로는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브라질 감독이다.

‘브라질’ 하면 축구와 삼바부터 떠오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브라질 출신 감독들이 만든 영화의 강렬한 인상은 현란하고 화려한 브라질 축구와 삼바, 그 이상이다. 브라질 출신 감독들이 만든, 축구와 삼바보다 강렬한 영화들을 살펴보자. 

 

월터 살레스의 <중앙역>

‘도라’(페르난다 몬테네그로)는 예전에는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중앙역에서 글을 모르는 이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며 생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도라는 편지를 대신 써주고 보내주는 대가로 돈을 받지만, 정작 집에 와서는 편지를 보내지 않고 버린다. 편지가 하루라도 빨리 상대에게 닿길 바라는 이들 중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나’(소이라 리라)와 아나의 아들 조슈에(니시우스 드 올리베이라)가 있다. 아나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도라는 고아가 된 조슈에와 함께 조슈에의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중앙역>(1998)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여우주연상,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60년대 글라우버 로샤,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 루이 구에라 등 브라질 군사정권에 맞서 민중 문화를 강조한 ‘시네마 노보’ 이후 한동안 암흑기를 보냈던 브라질영화계에서, <중앙역>은 새로운 희망처럼 등장한 작품이다.

영화 <중앙역> 예고편

도라와 조슈에는 조슈에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한다. 둘은 마지못해 동행하는 듯했으나, 티격태격하는 과정 안에서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혼자였다면 이겨내기 어려웠을 시간을 함께 의지하며 버틴 도라와 조슈에는, 앞으로는 혼자 모든 것을 하는 대신 좀 더 타인을 믿고 기대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카티아 런드의 <시티 오브 갓>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촌 ‘시티 오브 갓’은 갱이 된 어른과 갱을 꿈꾸는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로켓’(알렉산드레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친형부터 친구들까지 범죄에 휩쓸리는 걸 보며 자란다. 마약 판매를 독점하기 위해 ‘제’(리안드로 퍼미노)와 ‘캐롯’(마데우스 나츠테르가엘레)의 일당이 대립하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전쟁 같은 날을 보낸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브라질 감독이다. 카티아 런드와 함께 연출한 <시티 오브 갓>(2002)은 브라질 영화계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을 안 했음에도,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가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릴 만큼 호평받은 작품이다. <시티 오브 갓> 이후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콘스탄트 가드너>(2005), <눈먼 자들의 도시>(2008)을 연출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두 교황>(2019)을 연출하며 각종 영화제의 작품상 후보로 올랐다.

<시티 오브 갓> 트레일러

<시티 오브 갓>은 파울로 린스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우들 대부분은 연기 경험이 없는, 시티 오브 갓 지역의 현지인이다. 덕분에 많은 장면이 마치 실제처럼 생생하다. 현란한 화면과 함께 펼쳐지는 폭력은 쾌감보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영화가 끝나도 ‘시티 오브 갓’의 폭력은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게 <시티 오브 갓>의 가장 무시무시한 점이다.

 

호세 파딜라의 <엘리트 스쿼드>

마약상과 부패한 경찰이 가득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정의로운 경찰은 살아남기 힘들다. 브라질 특수기동대 ‘BOPE’는 도시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고, 지휘관 중 한 명인 ‘나시멘투’(와그너 모라)는 곧 출산할 아이를 위해서라도 위험한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나시멘투는 자신의 후임을 뽑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에서 ‘네토’(밀헴 코타즈)와 ‘마티아즈’(안드레 라미로)를 최종후보로 생각한다. 네토는 정의로운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패한 상관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마티아즈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경찰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대학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중앙역>(1998)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후 또다시 황금곰상을 받은 브라질 영화가 나타났으니, 그 작품은 바로 <엘리트 스쿼드>(2007)다. 연출을 맡은 호세 파딜라 감독은 <엘리트 스쿼드 2>(2010)까지 브라질을 배경으로 성공적인 시리즈를 만든 뒤, 할리우드에서 <로보캅>(2014) 시리즈의 새로운 연출자가 된다.

<엘리트 스쿼드> 트레일러 

부패한 사회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미련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네토와 마티아즈는 부패한 경찰들 사이에서 타협 대신 자신들의 방법으로 정의를 고수한다. 세상이 경찰을 비난하고 동료 경찰들이 부패를 저질러도,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네토와 마티아즈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건, 아무리 부패한 사회에서도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걸 목격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클레버 멘돈사 필로의 <아쿠아리우스>

‘클라라(소냐 브라가)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낡은 아파트 ‘아쿠아리우스’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건축업자가 찾아와 보상을 해줄 테니 아파트를 팔아달라고 말한다. 클라라를 제외한 입주민들이 모두 나간 아파트에서, 클라라는 자신의 모든 추억이 담긴 아파트에서 떠나기를 거절한다. 건축업자들은 클라라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클라라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기생충>(2019)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은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2019)다. <바쿠라우>를 연출한 클레버 멘도사 필로는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브라질 감독 중 한 명이다. <아쿠아리우스>(2016)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지출해서 평단의 호평을 얻은 작품으로, 특히 주연배우 소냐 브라가의 존재감이 큰 영화다. 소냐 브라가는 <거미 여인의 키스>(1986)로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폭넓게 활동 중인 브라질 배우다.

<아쿠아리우스> 트레일러 

클라라는 추억이 깃든 아쿠아리스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이기적이고 고집을 부린다는 말을 듣는다. 남들 눈에는 불편하고 낡은 건물일지 몰라도 세상에는 숫자만으로는 표현 불가한 게 존재한다. 편리함과 숫자가 모든 것의 척도라면, 많은 이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취급받지 않을까. 추억조차도 돈이 되는지 판단하고 집이 재테크 수단처럼 비춰지는 시대에서, 추억이 깃든 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