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윈스턴의 유명한 앨범 표지 <December>(1982)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피아노 솔로 음반 <December>(1982)은 당시 조용하고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표지 디자인도 그랬고, 장르를 따졌을 때 클래식도 아니고, 재즈나 팝도 아닌 음악도 특별했다. 눈 덮인 차창 밖에 펼쳐진 하얀 세상을 내려다보며 배경 음악으로 들으면 좋을 법한 어쿠스틱 음악이었다. 이 음반은 나오자마자 300만 장이 팔리며 사람들에게 윈담 힐 레코드(Windham Hill Records)의 정체성을 각인하였다. 당시 재즈 또는 월드뮤직으로 분류되던 이 음악은, 그로부터 5년 후 그래미가 뉴에이지 앨범상 부문을 신설함으로써 뉴에이지 음악(New-Age Music)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조지 윈스턴 <December>(1982)에 수록한 ‘Thanksgiving’

뉴에이지 음악을 개척하고 대표한 윈담 힐의 창업자는 윌리엄 애커맨(William Ackerman). 그의 아버지는 명문 스탠퍼드 대학의 영문과 교수였고, 그 역시 같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새로 목수 일을 배웠고, 건축 관련 일감을 타기 위해 윈담 힐 빌더스(Windham Hill Builders)라는 회사를 차렸다.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틈틈이 스탠퍼드 캠퍼스로 나가서 홀로 기타를 치면서 캠퍼스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를 아는 친구들이 공동으로 300달러를 갹출하여 그에게 데뷔 음반을 낼 것을 권했고, 그의 차고에서 첫 음반 <In Search of the Turtle’s Navel>(1976)을 녹음하였다.

윌리엄 애커맨의 ‘Bricklayer’s Beautiful Daughter’

아예 레이블 회사를 차린 그는, 기타리스트였던 사촌 알렉스 디 그라시(Alex de Grassi)를 불러 두 번째 음반을 냈고, 자신에게 기타를 가르친 스승의 음반도 냈다. 프로듀서 일에 재미를 붙인 그는 목수 일을 접었다. 친구들에게 빌린 300달러로 시작한 회사는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매출 2,600만 달러(약 312억 원)의 독립 레이블로 성장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뮤지션들이 모여들었고, 1980년대에 들어와 조지 윈스턴의 솔로 피아노 음반들이 인기를 끌며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빌보드는 처음에 이들을 '소프트 재즈'로 분류하였으나, 대형 음반매장인 타워레코드가 이내 '뉴에이지' 섹션을 신설하여 윈담 힐 레코드의 음반들로 이를 채우면서 신설 장르의 선구자가 되었다.

Windham Hill Artists <A Winter’s Solstice>(1985)

회사는 성장했고 창업자 윌리엄 애커맨은 부자가 되었으나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는 더 이상 대형화된 회사를 운영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윈담 힐 음반의 유통을 맡은 A&M 레코드에 회사를 매각하고, 복잡한 캘리포니아를 떠나 한가로운 버몬트 주로 이주했다. 그곳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다시 예전과 같은 작은 규모의 프로덕션 일을 계속하고 있다. 2004년에는 자신의 열한 번째 앨범 <Returning>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윈담 힐 레이블은 현재 소니 뮤직 산하에 있으나,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는 않는다.

Windham Hill Records <Piano Sampler>(1985)
윈담 힐 레코드의 창업자 윌리엄 애커맨

윈담 힐 레코드는 약 20년 지속되었고 소속 아티스트는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음악은 지금도 계속 재발매되고 있고 고정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생활에 자리 잡고 있어서 도서관의 배경 음악이나, 요가나 마사지 또는 명상을 하면서 들려올 수도 있고 새로 산 스트레스 저감 장치에서 들려오는 음악일 수도 있다.

 

Windham Hill 팬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