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로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파란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에는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각본상까지 포함되어 영화의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이 높은 점수를 받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외신은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 기사를 읽지 말 것을 권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구성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은 젊은 시절 부잣집에서 과외 교습을 했을 때의 생경했던 개인적 경험과 함께 프랑스에서 실제 일어났던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는 1933년 프랑스의 르망(Le Man) 지방에서 숙식 하녀로 일하던 두 명의 친자매가 안주인과 그의 딸을 잔혹하고 엽기적으로 살해했던 사건을 말한다. 당시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졌던 많은 언론이 이를 상징적인 '계층 갈등' 사건으로 정의하여 세간의 큰 관심이 모였던 사건이었다.

 

크리스틴과 레아 자매(Christine & Lea Papin)

사건 당시 27세와 21세였던 파팽 자매

부모의 이혼과 궁핍한 생활로 인해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매는 르망 호수 인근의 변호사 가정에서 함께 숙식하며 하녀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안주인의 우울증이 심해져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7년이 되던 1933년, 바깥주인이 외출한 사이 사소한 문제로 몸싸움이 벌어지며 안주인과 그 딸을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도망도 가지 않은 채 자기 방에서 잠을 자던 자매는 순순히 경찰에 체포되었고 세기의 재판이 벌어졌다. 언니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후일 종신형으로 감형되었고, 소극적인 범행으로 정상참작이 된 동생에게는 10년형이 선고되었다.

영화 <Murderous Maids> 예고편

 

공유성 편집장애(Shared Paranoid Disorder)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열악한 고용 환경에서 일한 것도 아니었고 평소 말 없고 성실한 하인들이 사소한 분쟁 끝에 분노로 가득 찬 살인마로 돌변하여 잔혹하게 살인을 저질렀고, 도망가거나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다. 이들은 정신감정 결과 큰 문제가 없어 유죄로 평결이 났으나, 학자들 간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후일 이들은 편집장애를 가진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유발되는 '공유성 편집장애'에 정확하게 맞는 사례가 되었다. 가령 개별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두 사람이 합칠 때 새로운 인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매는 근친상간 관계였다고 알려졌는데, 두 사람이 다른 교도소로 수용되자 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식음을 전폐하여 1937년에 사망하였다.

다큐 <The Papin Sisters: A Crime That Horrified France>

 

계층 갈등에 잠재된 분노

1933년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을 가리켜 '악인이 나오지 않는 희비극'이라 불렀다. 코미디처럼 얽히고 설키며 진행되던 상황은 마지막 장면에 살인 사건으로 전환되지만, 그 누구도 살인자로 부를 만한 악역은 없고 범행 동기 또한 단순하고 미약하다. 80여 년 전에 벌어진 파팽 자매의 살인 사건 역시 사회적 약자에게 갑자기 촉발된 분노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듯이, 영화 <기생충>에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건은 <The Maids>(1949), <Sister My Sister>(1994), <Le Ceremonie>(1995), <Murderous Maids>(2000) 등 많은 영화와 연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파팽 자매 사건을 영화화한 <Sister My Sister>(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