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거닐며 무수한 책들을 우러러본다. 도대체 이 많은 책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지식의 층위는 두텁다 못해 그것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문득 서가에 멈춰 서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빼서 읽는다. 이름 모를 작가가 긴 시간 공들여 적었을 문장이 빼곡하다. 매일같이 셀 수 없는 책이 출판되고 사라지는 요즘 출판시장에서 이 책은 과연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그만큼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은 빗발치는 우연을 견뎌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린 종적을 감췄던 소설이 한참을 지나서야 인구에 회자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다음 두 권의 책은 출간 당시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마치 운명처럼 뒤늦게 우리 곁을 찾아온 소설들이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오스카 트로피를 다섯 개나 거머쥔 음악감독 존 윌리엄스라면 몰라도 작가 존 윌리엄스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소설 <스토너>를 읽고 나니 더는 그를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졌다. 존 윌리엄스는 1922년생으로 평생을 걸쳐 미국 덴버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꾸준히 글을 써서 몇 권의 책을 남겼지만 많은 시간 동안 대체로 학문에 매진했다. 1994년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마치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처럼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장편 소설 <스토너>는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절판됐다. 하지만 출간 50년이 지난 어느 날 소설 판권을 싸게 사들인 네덜란드 한 출판업자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온다. 얼마 안 있어 <스토너>를 향한 찬사는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연이어 미국에서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저명한 작가와 평론가들이 존 윌리엄스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토너>는 책 좀 읽는다는 독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소설이 되었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잇기 위해 미주리대학 농과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필수 교양과목인 영문학 개론 시간에 셰익스피어 73번째 소네트를 접하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스토너는 평생을 문학 연구에 매진하며 삶의 고통과 부조리를 감내한다. 세속적인 성공을 멀리하고 가족의 행복도 챙기지 못했지만 끝내 펜을 놓지 않았다.

<스토너>가 다루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삶처럼 보인다. 말이 없고 지루하며 때론 완고하기까지 한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소설 같지 않다. 내가 주인공에게 매혹된 이유는 흘리지 않는 인간을 향한 동경 때문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출근과 퇴근 사이에 놓인 노동의 위엄을 아는 직장인이다. 무엇보다 시대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일과를 지탱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일터에서 씨름하는 난 잘 알고 있다. 우리 일상은 실수투성이고 세월은 생각지도 못한 얼룩을 남기곤 한다. 스토너는 검약한 자세로 자신이 원하는 문학을 위해 기꺼이 숨죽인다. 그의 일상에서 유일한 일탈은 저녁 무렵 스탠드를 켜고 서가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다. 거치적거리는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문학 속에 몸을 뉠 때 그는 온전한 기쁨을 느낀다. 스토너가 가족과 동료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건 혼자 저녁 무렵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허한 마음이 가만한 문장으로 채워지면 자신을 돌아볼 여력이 생긴다. 독자는 그의 내밀한 고백을 들으며 절뚝이지만 쉽사리 고꾸라지지 않는 존엄에 대해 생각한다.

스토너가 처음 문학과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한다. 영문을 몰라 미세하게 떨리는 눈빛과 뭔가 대단한 걸 목격했다는 의미심장함이 그의 눈에 번뜩인다. 교수는 토닥이는 말투로 그에게 말한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마치 누군가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맹목의 환희가 그에게 번진다. 문학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스토너>처럼 적확하게 그려낸 작품을 난 알지 못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이 목에 걸려 킁킁거릴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며 문장을 곱씹는다. <스토너>를 읽으며 난 그 '처음'을 떠올렸다. 어쩌면 평범한 삶에도 특별한 뭔가가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 장을 펴니 그의 장례식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 수잔>

소설 <토니와 수잔>은 1993년작이지만 한국엔 소개되지 않았다. 저자 ‘오스틴 라이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 독자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디자이너이자 영화감독인 톰 포드의 두 번째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가 <토니와 수잔>을 원작으로 제작되면서 늦게나마 한국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토니와 수잔>은 실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품은 작품으로 출간 즉시 언론과 평단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비록 영화 개봉에 따른 후광이 있었지만, 소설이 내뿜는 매혹은 30년의 세월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작중에서 에드워드가 보내온 원고를 읽느라 남편과 아이마저 등한시하고 소설에 빠져든 수잔처럼 나 역시 이 소설을 접한 후 한동안 이야기가 내재한 물음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192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오스틴 라이트는 '윌리엄 스토너'처럼 영문학 교수로 거의 평생을 재직했다. <토니와 수잔>은 그가 죽기 10년 전인 72세에 집필한 소설이다. 그는 작가로 시작하기엔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대 후반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큰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후일담을 듣다 보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걸작이 내가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을까 싶다. 그저 시대와 맞지 않아 인연이 닿지 못했을 뿐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걸출한 작품들이 작은 마을 도서관 귀퉁이 서가에 꽂혀있으리라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은 이야기는 어떤 계기로든 알려지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토니와 수잔>은 빗발치는 우연을 뚫고 지금 내 손에 들어왔고, 난 겸허한 마음으로 책에 묻은 세월을 털어냈다.

'수잔'은 작가 지망생인 남편 '에드워드'의 현실적이지 못한 태도에 질려 그를 떠난다. 수잔은 에드워드가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고, 에드워드는 매정한 수잔에게 큰 상처를 받고 버림받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자신이 쓴 소설 원고를 보낸다. 그사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중산층의 가정을 이룬 수잔은 에드워드의 원고를 읽으며 본능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제 모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났던 죄의식과 옛 연인을 향한 궁금증이 복잡하게 얽히며 이야기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에드워드가 쓴 원고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주인공은 40대 수학 교수 '토니'다. 그는 아내 '로라', 딸 '헬렌'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다. 토니는 어두컴컴한 고속도로에서 야간 운전을 하다가 제 차를 가로막는 괴한과 시비가 붙는다. 말다툼으로 시작한 갈등은 자존심이 걸린 싸움으로 번지고, 그 과정에서 거친 폭력을 동반한 비극이 토니를 궁지에 몬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별안간이라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던 토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작중 토니와 달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수잔은 원고를 읽으며 비로소 그가 느꼈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에게서 내쳐지는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수잔은 중산층의 그럴듯한 삶이 가진 위태로운 측면에 깊은 불안을 느낀다. 과연 지금 같은 행복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타인들의 말처럼 행복한 삶을 사는 걸까. 단숨에 가정을 잃고 몰락하는 허구의 이야기 속 토니는 수잔에게 가닿고, 그녀는 불현듯 자신이 꾸린 불안정한 삶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토니와 수잔>은 문학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린 일상을 살며 무수한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만, 그걸 허구라며 웃어넘긴다. 하지만 어떤 문학은 삶을 뒤흔들고 여태껏 가보지 못했던 장소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두 눈을 뜨고 일상을 보낼 땐 보지 못했던 삶 속 균열을 발견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버림받았던 영혼을 구제받기도 한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이야기의 물결은 삶을 더 큰 바다로 몰아넣고, 전혀 관련도 없던 누군가를 가족처럼 보살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늘 겸허하게 소설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아둔한 짓을 반복한 나를 구제하려 이야기는 다시 첫 줄부터 시작한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