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브루벡 쿼텟 시절의 폴 데스몬드(왼쪽에서 두번째)

재즈 역사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은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ime Out>(1959)에 수록한 'Take Five'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경쾌한 리듬의 재즈곡으로, 60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대중적인 곡이다. 이렇게 경쾌한 곡을 작곡한 알토 색소포니스트 폴 데스몬드(Paul Desmond)는 언제나 밝은 성격에 세련된 외모의 쿨 가이였다. 그는 1977년 사망할 때 이 곡을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저작권을 적십자에 남겼는데, 매년 적십자에 돌아온 수입은 평균 10만 달러, 약 1억 2천만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 'Take Five' 실황

평생 동지로 지낸 데이브 브루벡과 폴 데스몬드 사이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군대 악단에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데스몬드가 리드하던 재즈 콤보에 브루벡을 고용하며 다시 만난다. 하지만 콤보 구성 문제로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고 데스몬드가 먼저 콤보를 탈퇴해 버린다. 뒤늦게 브루벡의 트리오의 인기가 올라 수입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폴 데스몬드는 브루벡에게 간청하기 시작했고, 무작정 브루벡의 집으로 아이들을 봐주며 브루벡의 아내를 먼저 설득했다. 브루벡은 마지 못해 데스몬드를 받아들였고 콤보 이익의 20%를 주기로 하였다. 이 때가 1951년.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데뷔앨범 <Jazz at Oberlin>(1953)에 수록한 'Stardust'. 폴 데스몬드의 유명한 솔로를 들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가족끼리도 알고 지낸 친한 사이지만 성격이나 스타일은 많이 달랐다. 브루벡은 적극적이고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고, 데스몬드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쿨가이(Cool guy)였다. 한 차례 결혼한 경험이 있는 '돌싱'인 그는 평생 혼자 살면서 연애만 했던 바람둥이였다. 언제나 단정하게 차려 입고 다니는 패셔니스타였고 누구에게나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하루에 팔몰(Pall Mall) 담배를 몇 갑이나 피우는 골초였고, 듀어(Dewar) 위스키를 즐겼다. 그는 독서나 사색에도 열심이었고, 가끔 LSD나 코카인 같은 마약을 하면서 인생을 즐겼다.

제리 멀리건(왼쪽), 데이브 브루벡(피아노)과 함께 연주하는 폴 데스몬드(1971)

폴 데스몬드는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를 연주하였는데, 때때로 색소폰으로는 쉽지 않은 매우 높은 음계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드라이 마티니(칵테일의 일종)와 같이"라 표현한 바 있는데, 데이브 브루벡의 묵직한 연주와 대조를 이루어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그는 쿼텟 활동 외에도 제리 멀리건(바리톤 색소폰), 쳇 베이커(트럼펫), 짐 홀(기타)과 자주 콜라보레이션을 하였는데, 밝고 경쾌하며 릴랙스(relax)를 중시하는 이들의 연주를 가리켜 쿨 재즈(Cool Jazz)라 불렀다.

쳇 베이커와의 협연 'Autumn Leaves'

그는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오랜 음주에도 불구하고 간은 별 문제가 없어서 기쁘다며 마지막까지 유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지 않은 채 1977년 2월 뉴욕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고, 그 해 5월 눈을 감았다. 가족이 없었던 그는 모든 저작권을 적십자에 맡겼고 그가 보유했던 그랜드 피아노는 자주 가던 술집에 주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하고 재는 공중에 뿌려져,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