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2020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가 발표됐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매체 노출이나 대중적 인기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과 진정한 음악인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는 시상식으로,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많은 음악인이 후보에 올라 저마다 수상을 기대하며, 2019년 지난 해 가요계를 되돌아보는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물론 매년 후보와 수상을 결정하는 선정위원회가 아무리 공정하고 치열한 선정과정을 거쳐도 예술에 대한 판단에는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고, 여러 사람의 주관과 미관이 반영되다 보니 항상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에 이번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를 법 했지만 오르지 않았던 음악들을 장르 부문별로 돌아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두 번째는 랩&힙합, 알앤비&소울, 포크, 재즈 그리고 크로스오버 부문이다.

* 음반과 노래를 가리지 않고 장르 부문별 두 팀씩 선정했습니다. 언급은 장르별 가나다순입니다.
** 선정 리스트는 인디포스트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과정 및 결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최우수 랩&힙합 부문 - 리짓군즈 | 오도마

2019년은 유독 좋은 힙합 음반이 많이 나온 해다. 연초에 인디포스트가 만나고 온 XXX(링크)가 연작 <SECOND LANGUAGE>를 발표했고, '2016 한국대중음악상'에서 <The Anecdote>로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이센스는 3년 만의 정규앨범 <이방인>을 내놓기도 했다. 신에서는 씨잼(C JAMM)의 <킁>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만큼 아쉽게 후보에 못 오른 음반도 많았다. 리짓군즈는 유행과 미디어 노출에 민감한 국내 힙한 신의 경향과 상관없이 독특한 그만의 콘셉트와 기획력으로 성공 가도를 걷고 있는 크루다. 3집 <Junk Drunk Love>(2017)가 대중과 평단 양측으로부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멤버인 코드쿤스트와 뱃사공, 재달 등은 개인 활동으로 승승장구하고 있기도 하다. 게임 속 가상현실로 상정한 이번 4집 <ROCKSTAR GAMES>는 전작들보다 더욱더 당돌한 콘셉트를 담고 있다. 동시에 감상의 즐거움이 무척 직관적인 앨범이기도 하다. 리짓군즈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전자음으로 조성한 기계적 사운드로 뒤바뀌었으면서도, 불량함과 순수함, 나른함과 허슬이 공존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SHOW ME THE MONEY 777>(2018), <SHOW ME THE MONEY 8>(2019)에 연이어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오도마는 데뷔 정규앨범 <밭>을 발표했다. 구수하면서도 이지적으로 느껴지는 오도마의 개성 있는 랩 톤과 붐뱁이 만나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비유로 시대성을 드러낸 제목과 가사의 문학성도 무척 절묘하다. 진솔하고 진중한 서사를 담은 가사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트랙 곳곳에 흥미로운 소스와 효과를 배치한 악곡은 전체 앨범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리짓군즈 'Credit Roll (Prod. iDeal)' of <ROCKSTAR GAMES>(2019.04.24)
오도마 '범인 (feat. The Quiett)' of <밭>(2019.09.17)

 

최우수 알앤비&소울 부문 - 소마 | 히피는 집시였다

소마(SOMA)는 아이돌 그룹 타히티 출신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다. <Tonight>(2012)로 데뷔했다가 이내 탈퇴해 듀엣 그룹 VERRY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멤버의 탈퇴로 무산되면서 결국 솔로 활동을 준비한다. 이후 가장 좋아하는 색이자 두려워하는 파란색과 물을 중심 테마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솔로 데뷔 앨범 <Somablu>가 장르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전 활동의 아쉬움을 달랬다. 2019년에 발표한 <SEIREN>은 소마의 데뷔 정규앨범이다. 피비알앤비(PBR&B)나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를 주로 들려주었던 초창기 스타일을 포함해 소울 느낌이 충만한 발라드, 힙합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다채롭게 가세했다. 이전보다 멜로디를 더욱 부각한 작법과 소마의 분위기 넘치는 보컬은 다양한 트랙들을 아우르기에 안성맞춤이다. 한편 2016년 듀오 데뷔 후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세 차례 정규앨범을 발표한 히피는 집시였다. 무척 가쁜 작업 속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두 차례 노미네이트, 한 차례 수상을 거머쥐며 평단의 높은 지지율을 선보였다. 2019년에도 역시 이들은 바빴다. MBN <사인히어>(2019)에 출연해 대중에게도 그 이름을 알렸으며 1년 만에 정규앨범 4집을 발매했다. 이번에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2020 한국힙합어워즈'에서는 올해의 알앤비 앨범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음악성을 과시했다. 인디포스트에서 앞서 소개한 바 있듯이,(링크) 히피는 집시였다의 이번 앨범 <불>은 추상적인 테마 '불'의 이면을 파고들어 또 다른 추상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고, 이를 현실의 구체적인 감정과 엮는 시적 가사가 짙은 여운을 남기는 앨범이다. JFlow의 실험적인 비트와 여백미, 팔세토 창법으로 고음을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Sep의 매력적인 가창력이 여전하다. 짱유, 우원재, 저스디스 등 개성 강한 피쳐링 진이 기존 히피는 집시였다의 서늘한 분위기와 다른 어둡고 격정적인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소마 'Zebra' of <SEIREN>(2019.03.14) 라이브 영상
히피는 집시였다 '그대로 (With Hoody)' of <불>(2019.11.18)

 

최우수 포크 부문 - 니들앤젬 | 오늘도 무사히

매년 올해의 음반 부문에 후보를 올렸던 포크 부문은 이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예년보다 포크신에 좋은 음악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대중음악상 무대가 익숙한 이들의 이름(권나무, 정밀아)과 오랫동안 신에서 활약한 이름(에몬, 여유와 설빈), 자신의 영역에서 오래 활동을 펼치다 앨범을 내놓은 이들의 이름(연영석, 이주영, 천용성)이 고루 포크 부문 후보에 올랐다. 쟁쟁한 후보들 덕분에 '2018 한국대중음악상'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던 니들앤젬(링크)은 후보 노미네이트를 다시 한번 미루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2015년, 기타 치는 싱어송라이터 에릭유와 바이올린 켜는 싱어송라이터 레베카정의 혼성 듀오로서 데뷔한 니들앤젬은 현재 에릭유의 솔로 프로젝트로 활동 중이다. EP 한 차례, 디지털 싱글을 두 차례 발매했고, 이번에는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캐나다 몬트리올과 서울을 오가는 그의 환경 덕분인지 니들앤젬의 음악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텁텁하고 구수한 포크와 다른 이국적인 감각의 네오포크 감성이 한껏 묻어난다. 노래의 가사에는 그가 7년 동안 몬트리올의 길고 추운 겨울과 따스하고 순간적인 여름을 살아오며, 이방인으로서 겪은 만남과 이별, 고요하고 시린 겨울의 이미지 그리고 지나는 시간과 계절 속에서 잊히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디포스트에 앞서 두 차례 소개한 오늘도 무사히(링크1, 링크2)도 반드시 언급하고 싶다.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활동 중인 그는, 그동안 작업해온 곡들을 모아 2019년에 드디어 데뷔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남다른 그의 이름처럼, 스스로 늘 말하는 “송곳 같다”는 표현처럼 오늘도 무사히의 음악은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가사가 일품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한 시선과 이를 위트 있게 뒤튼 유머 감각도 특별하다. 처량한 슬픔과 초연한 태도를 함께 머금은 그의 보컬과 힘을 보탠 심상명의 기타 연주가 맛깔스럽게 어우러진다.

니들앤젬 'H의 미간' of <곁에 있다 없을 때 빈 자리를 모른다>(2019.08.21) 라이브 영상
오늘도 무사히 '요즘 속담' of <송곳>(2019.02.26) 라이브 영상

 

최우수 재즈 - 오재영 트리오 | 최성호 특이점

재즈 부문은 아무래도 오랜 경력의 뮤지션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번 한국대중음악상 재즈 음반이나 연주 부문 역시 대부분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거나 여러 차례 시상식에 등장한 베테랑들이 그 이름을 후보에 올렸다. 물론 연주 부문 후보에 오른 진푸름(Pureum Jin)이나 조민기(Minki)처럼 새로운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인디포스트가 주목할만한 신인으로 꼽은 팀 쿠키시아도 이름을 올릴만하지만,(링크) 오늘은 오재영 트리오의 <人間探究 인간탐구>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베이시스트 오재영이 피아니스트 임채선, 드러머 조해솔과 함께 발표한 첫 리더작으로 사람들과 지내온 관계와 감정을 성찰하는 진지한 주제 의식과 악곡을 펼쳐가는 수학적인 테마, 과감한 즉흥 연주와 화려한 인터플레이가 돋보인다. 2016년 데뷔 앨범 발표 이후 연이어 좋은 음악을 선보이며 2집과 3집이 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른 재즈 기타리스트 최성호 특이점의 4집도 언급하고 싶다. 즉흥 연주를 통해 늘 예측 불가능한 추상과 능청스러운 서사를 함께 들려주었던 최성호 특이점 특유의 즉흥 음악은 이번 앨범에서 더욱더 구체적인 텍스트와 뜻밖의 유머까지 덧대며 재즈의 다양성에 또 하나의 새로운 면모를 더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내레이션에는 논리적인 사고와 따뜻한 감성이 공존하고, 배경과 여백을 채우는 연주에는 번뜩이는 실험 정신과 차분한 선율이 교차한다.

오재영 트리오 'A Net of Greed' of <인간탐구 人間探究>(2019.05.10) 라이브 영상
최성호 특이점 '어떤 기억' of <주기율표 / The Periodic Table>(2019.07.25) 라이브 영상

 

최우수 크로스오버 - 강권순 | 신노이

크로스오버 장르는 유난히 그 귀추가 주목된 부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악을 기반에 둔 크로스오버 뮤지션이 해외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례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래도 제3세계 음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더욱더 관대해진 세계 무대 양상과 국악 기반의 음악을 지원하는 여러 공공사업, 꾸준히 다양한 생존 방식을 모색해온 전통음악계의 노력과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도전이 맞물린 결과일 것이다. 자연스레 크로스오버 부문의 문은 좁아졌다. 후보에 들지 못한 음악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악과 대중음악계 두 거장이 의기투합한 앨범 <지뢰 - 땅의 소리>다. 이 앨범은 한국 전통 성악곡인 '정가'의 명인이자 국악계 가장 진보적 행보를 보여온 강권순과 밴드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대중음악계 거장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함께한 작품이다. 그동안 주로 판소리나 민요처럼 개성이 짙은 속악과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던 대중음악이 절제적이고 유연한 면모가 두드러지는 정가와 어우러졌다는 점만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에 더욱 아쉽다. 앨범은 공개 라이브 형태로 녹음되어 연주의 조화와 현장감이 무척 생생하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신노이는 국악의 여러 음악을 넘나드는 보컬 김보라와 재즈신에서 다양한 도전을 펼쳐오고 있는 베이시스트 이원술,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음악을 주로 만드는 하임으로 구성된 트리오다. 안정적인 반주 위에 자유분방한 보컬 및 연주를 얹는 방식 자체는 새로울 게 없지만, 소리와 베이스, 앰비언트라는 다소 독특한 조합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신선함과 전통의 여백미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영리함, 갈수록 극적으로 치닫는 김보라의 노래가 절대 뻔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강권순 '길군악' of <지뢰 - 땅의 소리>(2019.11.08) 라이브 영상
신노이 'Silkroad II' of <THE NEW PATH>(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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