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국대중음악상' 후보가 발표됐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매체 노출이나 대중적 인기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과 진정한 음악인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는 시상식으로,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많은 음악인이 후보에 올라 저마다 수상을 기대하며, 2019년 지난 해 가요계를 되돌아보는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물론 매년 후보와 수상을 결정하는 선정위원회가 아무리 공정하고 치열한 선정과정을 거쳐도 예술에 대한 판단에는 정답이 존재하기 어렵고, 여러 사람의 주관과 미관이 반영되다 보니 항상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에 이번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를 법 했지만 오르지 않았던 음악들을 장르 부문별로 돌아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첫 번째는 록, 모던록, 메탈&하드코어, 팝 그리고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이다.

* 음반과 노래를 가리지 않고 장르 부문별 두 팀씩 선정했습니다. 언급은 장르별 가나다순입니다.
** 선정 리스트는 인디포스트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과정 및 결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최우수 록 부문 - 동양고주파 | 천미지

동양고주파와 천미지는 인디포스트가 이미 세 차례(링크1, 링크2, 링크3)와 두 차례(링크1, 링크2) 소개하며 2019년을 대표하는 록 아티스트로 주목한 바 있다. 동양고주파는 '아름다운 소리의 무법자'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은 신선한 록 사운드가 강점인 밴드다. 아시아 월드뮤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신비하고 영롱한 양금 선율과 둔탁한 타악, 밴드 사운드를 대표하는 육중한 베이스가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감각을 일깨운다. 양금의 트레몰로와 선율이 일순 분위기를 휘어잡는 앨범의 타이틀 '파도'는 2019년 최고의 록 싱글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이번 해에 본격 데뷔한 천미지는 마치 1990년대 말,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온 록 스타 같다. 앨범 전반을 물들인 어둡고 텁텁한 공기의 그런지 사운드와 음울하고 아름다운 선율, 그 속을 헤집고 나타나 조금씩 비틀거리면서도 꿋꿋이 갈 길 향해 걷는 여리고 달콤한 보컬이 화자가 품은 관계에 대한 고뇌와 불안, 의지와 불만 등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인디 신의 선배 오지은이나 오랜 친구 김사월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그것의 또 다른 록 버전으로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개성의 아티스트.

동양고주파 '파도' of <곡면>(2019.09.30) 라이브 영상
천미지 'I Want To Be Your Mother' of <Mother And Lover>(2019.06.26) 라이브 영상

 

최우수 모던록 부문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 향니

인디포스트는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하 끝잔향)의 데뷔 EP를 '2017년 숨은 명반'(링크)으로, 향니의 전작들을 주목해야 할 신보(링크1, 링크2)로 꼽은 바 있다. 두 팀은 2019년 각기 컬래버레이션 앨범 <Carrier>와 정규 3집 <3>으로 돌아왔다. 두 앨범 모두 밴드의 기존 매력은 물론, 국내 모던록 신에서 발견하기 힘든 새로운 면모까지 두루 갖추어 절대 그냥 지니칠 수 없는 인상적인 순간을 남겼다. 끝잔향의 경우 영국의 앰비언트 밴드 Eyre Llew와 함께 했다. 2018년, 영국와 한국에 번갈아 기거하며 투어를 동고동락한 이들은 두 밴드의 음악적 교감을 공동의 앨범 형태로 남기기로 했다. Eyre Llew가 맡은 전반부 트랙의 잿빛 하늘의 세계를 지나 두 팀이 온전히 합을 맞춘 'Moeve'에 이르면, 세차고 시원한 폭우 같은 포스트록 사운드와 그 비가 갠 후에 마주하는 맑은 하늘의 선명한 드림팝 사운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4인조 밴드에서 2인조 듀오로 체제를 전환한 향니는 멤버 수가 줄었다고 해서 그 사이키델릭함과 기이함까지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노골적으로 차용한 레트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한결 여유롭고 다채로워진 서사 덕분에 그 매력이 더욱더 깊어졌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Hero' of <Carrier>(2019.03.06) MV
향니 '탐구생활' of <3>(2019.11.25) MV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부문 - 뉴클리어 이디엇츠 | 알포나인틴

메탈&하드코어 분야는 워낙 협소한 시장으로 인해 후보군을 추리기조차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매년 좋은 앨범을 내는 베테랑 밴드나 신인들이 나오니 더욱 반갑기도 하다. 2016년에 결성한 뉴클리어 이디엇츠(Nuclear Idiots)는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가 뒤섞인 믹스쳐록을 구사하는 밴드다. 2019년에 두 번째 EP를 발매했으며, 이번 앨범은 시종일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FX 키보드 사운드와 하드코어의 직선적인 리듬, 메탈의 거친 질감, 팝록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매력까지 고루 갖추었다. 특히 무려 11명의 게스트 보컬이 참여하며 한시도 지루할 틈을 만들지 않았다. 2015년에 첫 EP를 발표한 뉴메탈 밴드 알포나인틴(R4-19)은 2019년, 두 번째 EP를 발표하며 밴드의 건재한 존재감을 알렸다. 전작에서는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중요하게 활용함으로써 아무래도 신세대다운 감각을 뽐냈으나, 그간 멤버 교체를 통해 드러머만 2명을 갖추게 된 이번 앨범 <Prelude>에서는 키보드 사운드의 비중을 줄이고, 단단하고 촘촘한 리듬 파트와 그에 걸맞은 중량감의 기타 사운드 등 전통적인 미학에 가까운 메탈코어 사운드를 앞세워 속 시원한 매력을 발산했다.

뉴클리어 이디엇츠 'Fade Away' of <ANTI SOCIETY>(2019.07.25) 라이브 영상
알포나인틴 'Nowadays' of <Prelude>(2019.03.07)

 

최우수 팝 부문 - 백현진 | 파제&버둥

백현진의 <가볍고 수많은>은 이번 시상식 후보에 호명되지 못한 이름 중 가장 의외의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백현진이 누군가. 국내 최고의 아방가르드 팀인 어어부 밴드 일원이자 듀오 방백의 한 축이다. 2017년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화가, <복수는 나의 것>(2002)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삽입곡을 맡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2008)은 누구나 인정하는 당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였고, 여러 해와 경력을 거쳐 솔로 아티스토로 11년만에 발표한 이번 <가볍고 수많은> 역시 그때 못지않은 작가 정신과 시대 의식이 점철된 훌륭한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앨범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절망과 고통을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나열하고, 그 위에 감정을 은은하게 연기하는 백현진의 노래를, 김오키(테너 색소폰)와 이태훈(일렉트릭 기타)의 연주를 더하고 있다. 타이틀처럼 각 수록곡이 주목하는 일상의 소재들은 사소하고 가볍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대변하며, 그것의 총체는 무겁기만 하다. 2018년 EP <조용한 폭력 속에서>로 데뷔한 버둥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성, 여성으로서의 개인성을 중요한 음악 제재로 삼아온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뜨겁고 날카로운 의식과 메시지는 2019년 파제와 함께 한 앨범 <부탁>과 '올해의 헬로루키' 선정을 거치며 날개를 달았다. 어쿠스틱 질감의 느린 포크 음악에 익숙했던 두 사람은 이번 컬래버레이션에서 세련되고 로맨틱한 팝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건반과 기타, 때때로 베이스이 가세한 편성은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백현진 '빛' of <가볍고 수많은>(2019.11.29) MV
파제, 버둥 '부탁' of <부탁>(2019.04.03)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 - 룸306 | 최첨단맨

일렉트로닉 음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유독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룸306(Room306)의 두 번째 정규앨범 <겹>이 그렇다. 이 앨범에는 재지한 리듬감을 앞세운 세련된 팝과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발라드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차갑고 기계적인 일렉트로닉 소스 위 살포시 보컬을 얹은 트랙과 반대로 미니멀한 비트 위 닿지 않는 관계의 아쉬움을 은유한 제리케이의 랩이 뜨거운 아쉬움을 남기는 트랙까지 <겹>이 품은 음악과 분위기는 실로 다채롭기까지 하다. 룸306의 앨범이 장르를 아우른다면 최첨단맨의 음악은 과거와 미래를 포함해 여러 시대의 인상을 품고 있다. 이들은 솔로 프로젝트 휴키이스의 휴(Hugh), 스웨덴세탁소, 위 헤이트 제이에이치(We Hate JH)의 이상근과 정진욱, 버클리 음대 수료 후 귀국한 신스 댄(Dan)이 모여 결성한 밴드로, 팀 이름을 고스란히 반영한 앨범 <ultramodernista>을 통해 1980년대 레트로 댄스 음악의 흥겨운 분위기를 공유하는 일렉트로닉 록 사운드와 풍성한 질감의 현대 퓨처리즘 사운드를 동시에 들려준다. 2019년 가장 신나는 음악 중 하나.

룸306 '밤이 Night Comes' of <겹>(2018.12.29) MV
최첨단맨 'florida' of <ultramodernista>(2019.09.04)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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