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실력자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지난 한 해에도 여러 신인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 중에는 당신이 깜빡 놓친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 소개한 결산 ‘2019년 인디신을 빛낸 반갑고 신선한 얼굴 8’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2019년의 숨은 신인들을 살펴본다.

2017년에 레인보우99와 함께 자기 이름을 내건 컬래버레이션 음반을 발표한 천미지나 앨범은 아니라도 이미 여러 싱글을 발표한 천용성 등은 제외했다. 방송 <사인 히어>나 <SHOW ME THE MONEY 8>을 통해 이름을 많이 알린 소금과 머쉬베놈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앨범을 발표한 신인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번 편에서는 포크와 재즈 장르의 뮤지션을 소개한다.

* 장르별 해당 아티스트의 주요 앨범 발매순

 

포크

포크는 대체로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인상 탓에 단순하고 낡은 장르로 치부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포크 음악의 과장되지 않은 질박한 표현은 진솔한 인상과 신뢰를 주고, 작은 편성만으로 음악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음악에 보다 자유로운 표현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게 한다. 2019년에도 여전히 2019년의 목소리와 테크닉을 담은 많은 신진 포크 뮤지션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포크 음악이 지닌 힘을 방증한다.

오늘도 무사히 <송곳>(2019.02.26)

오늘도 무사히는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다.(인디포스트 기사 링크1, 링크2) 때로는 음악을 포기하려고 생각했다고도 하고, 지금도 생계를 위해 음악보다 카페 업무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그이지만, 포기하지 않은 끝에 2019년 정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곡에 따라 아쟁과 건반 연주가 함께하기도 하고, 풍성한 밴드 포맷을 취하기도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기타 연주와 호소력 짙은 보컬이 중심이 된 전형적인 포크 음악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전부터 그의 음악에 늘 입버릇처럼 따라붙었던 '송곳 같다'는 표현처럼 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가사다. 과거 민중가요 시대에 투쟁 의지와 동지애를 북돋는 데 쓰였던 포크의 가사는, 2019년 오늘도 무사히의 노래를 통해 현대 사회 제반 문제들에 의해 고통받는 개인의 아픔과 절망, 외로움을 드러내는 데 쓰이고 있다. "희망을 갖지도 버리지도 못한 우린 엉거주춤 미래를 준비하다가 이따금씩 지금을 탕진하며 고요한 끝을 기다린다."('요즘 속담')는 그의 가사는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불안과 절망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그야말로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한 번 더 깊숙이 찌른다.

오늘도 무사히 '남조선 블루스' 라이브 영상

 

이형주 <아토피>(2019.03.27)

그의 앨범 소개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토피'라는 말이 '뜻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나는 가게, 재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동네를 찾아가 직접 쓴 곡을 연주하고 노래로 불렀던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이형주는 그동안 만들고 불렀던 곡들을 모아 EP를 발매했다. 타이틀의 의미처럼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상의 아픔과 괴로움을 담았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렇듯 대답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채 "가려온 온몸만 긁어대며"('아토피') 스스로 상처 내는 세상을 노래하겠다는 뜻으로. 기타와 차분한 이형주의 목소리뿐인 단출한 구성 위에 재즈 베이시스트 정수민이 콘트라베이스로 묵직한 그루브를 더했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 만든 세상 속에서 잠을 깨" "텁텁하고 익숙한" 치열한 밖으로 나선다.('외출') "사람들이 기울어져 하늘로 높이 날아갈 때면, 나도 거기 가고 싶어서 배꼽에 힘을 잔뜩 줘봐도 나는 여기 아직 여기 제자리에" 남아 있다.('밑바닥')

이형주 '밑바닥' 라이브 영상

 

이푸른솔 <인사>(2019.04.05)

2019년에 정규 데뷔작 <인사>를 발표한 이푸른솔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앞선 아티스트들과 달리 과거에 흔한 디지털 싱글 하나 발표하지 않았던 그의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다. 물론 음악에 담긴 그의 일상은 우리나 다른 포크 아티스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학교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호젓한 일상의 여가를 소중히 하는 보통의 우리로서, 젊은 시절의 짝사랑을 회상하고, 방을 치우는 것조차 큰 결단을 해야 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노래한다. 이푸른솔의 고백처럼 "사랑도, 이별도, 공부도, 연애도 쌓이는 건 금방이지만 막상 하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방 치울 때 듣는 노래') 이푸른솔의 1집은 각기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통합 브랜드를 만드는 프로젝트 그룹 엔디자이너스(N Designers)가 프로듀싱 및 제작을 맡았다. 국내 포스트록신을 대표했던 밴드 로로스의 도재명이 편곡에 참여했다.

이푸른솔 '인사' 뮤직비디오

 

 

재즈·크로스오버

재즈는 모순을 안고 있는 장르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사 가장 대표적인 음악 장르면서도, 막상 국내에서는 일부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취향으로 여겨져 마치 '대중음악'이 아닌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는 현실이 우선 그렇다. 개성이 강한 '재즈'라는 음악의 특성상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결국 그 장르의 전통이 새로운 창조의 방식과 자유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 역시 역설적이다. 전통음악을 근간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 크로스오버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 소개하는 아티스트들은 이와 같은 모순에 치열하게 맞부딪혀 그만의 결과물을 내놓은 신인들이다.

헤이스트링 <Salto>(2018.12.14)

헤이스트링은 2018년, 서울남산국악당이 개최한 '제1회 젊은국악오디션 단장'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은 신진 그룹이다. '제11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은상을 받고, '2018 청춘만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야금 연주자 세 사람으로 구성된 이들은 개량된 25현 가야금의 "악기 특성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이를 벗어나고자 한 진지한 연구가 돋보인다"는 호평 일색 찬사를 들으며 많은 전문가의 기대를 모았다. 이후 헤이스트링은 직접 창작한 곡들을 모아 곧장 1집 <Salto>를 발표했고, 2019년에 각종 전시 협업과 해외 초청 무대를 소화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더 높이기도 했다. 수록곡은 모두 원테이크 녹음 방식으로 제작되어 연주의 현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야금 합주곡임에도, 다양한 분위기와 연주 스타일로 인해 한시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헤이스트링 'Potencia' 라이브 영상

 

Team Kusikia <Several Possibilities>(2019.02.08)

팀 쿠시키아는 피아니스트 김지현, 베이시스트 최장군, 드러머 여정민으로 이루어진 신진 재즈 그룹이다. 늘 고수와 베테랑이 즐비한 재즈계에 2019년, 신인으로서 나타나 강한 도전과 실험 정신이 느껴지는 프리재즈 곡들을 선보였다. 예측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진행과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연주가 돋보이는 이들의 음악은, 아무래도 팀명의 '쿠시키아(kusikia)'가 스와힐리어로 '듣다'를 의미하는 만큼 듣는 재미와 흥도 다채로워서, 프리재즈나 현대음악이 '어렵기만 하다.'는 편견을 누그러뜨린다. 피아노 연주자 김지현은 2019년, 부천시에서 지원하는 '청년예술가S 프로젝트'에 선정됐고, 앨범의 타이틀곡 'Jodranesque'는 <재즈피플>이 선정하는 '2019 한국 재즈계를 빛낸 30곡', 네이버뮤직앱 바이브가 선정한 '요즘 국내 재즈 37곡'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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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Gray Womb>(2019.04.02)

재즈 피아니스트 이한빈은 2019년 한 해 동안 각기 다른 콘셉트의 앨범을 2장 발표하며 부지런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재즈 퍼포먼스를 전공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국악인들과 협업하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음악적 발전 방향을 고민하고 모색해왔다. 2015년에는 재즈국악팀 '어울림'에서 활동했으며, 2016년에는 이한율(보컬), 김태현(대금), 권효창(전통타악)과 함께 재즈국악 그룹 '그레이 바이 실버'를 결성해 국내 무대를 넘어 프랑스 라 로쉘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 발표한 두 앨범은 각기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낸 일기와 두 사람의 조심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대화를 담은 대화록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담은 <Gray Womb>가 전자에 속한다면, 10년 전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기타리스트 준킴과 다시 만나 각자의 악기로 소통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녹음으로 담아낸 앨범 <순간>이 후자에 속한다. 소리의 꽉 찬 순간과 그 공백을 오가는 순간을 역동적이고 유려하게 표현하는 테크닉과 가사나 목소리 하나 없이 순간마다 곡과 연주에 감정을 탁월하게 이입하는 그의 특별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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