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들어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가 주목을 받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이 환생한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쳇 베이커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준 그는, 1920년대의 인기 코넷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두 사람은 한 세대 다른 시절을 살았지만, 서정적인 음악 스타일과 함께 폭음 문제 역시 비슷했고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점 또한 비슷했다. 브라이언 존스,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등 소위 '27세 클럽'이라 부르는 천재 뮤지션들과 같이, 빅스 바이더벡 역시 만 27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Bix Beiderbecke의 대표곡 'Singin’ the Blues'(1927)

빅스 바이더벡의 고향 아이오와주의 데이븐포트(Davenport, Iowa)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와 동상이 설치되었고, 그의 생가와 묘지 또한 잘 보존되어 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다 독학으로 코넷 연주법을 터득하였지만, 악보를 읽거나 음악 이론을 배우는 것은 게을리했다. 대학에 진학했으나, 음악 이외의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언제나 술에 취한 듯 지내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다 중서부 지방의 인기 재즈밴드 울버린(Wolverines)에 참여하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 킹 올리버 밴드에서 코넷을 연주하던 루이 암스트롱과 비교되곤 했는데, 루이 암스트롱이 기교에 능한 연주를 했다면 빅스 바이더벡은 서정성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Bix Beiderbecke의 히트곡 'I’m Coming Virginia'(1927)

색소포니스트 프랭키 트럼바우어, 기타리스트 에디 랑 등과 함께 시카고와 뉴욕의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며 인기 스타로 떠올랐으나, 그는 항상 약속 시각에 늦거나 술에 취해 있는 못된 버릇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찌는 듯이 더웠던 1931년 8월 6일, 퀸즈의 아파트에서 갑자기 사망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파트 관리인에 따르면, 밤중에 고함이 들려 그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그가 심한 발작 증세를 보이면서 "두 명의 멕시코인이 큰 칼을 들고 침대 밑에 숨어 있다."며 공포에 떨었고 이내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렴과 뇌부종이었지만, 오랜 알코올 중독에 의해 나날이 건강이 악화했던 것이다.

그가 사망한 뉴욕 퀸즈 서니사이드 43-30 아파트 현판

요절한 스타들이 그리하듯, 그 역시 살아 있을 때보다 사망한 후 평단과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로맨틱한 영웅”(Romantic Hero)이라는 꼬리표의 재즈 레전드로 부상하였다. 그를 모델로 1938년에 출간된 소설 <Young Man with a Horn>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작가 도로시 베이커(Dorothy Baker)는 출판사 Houghton Mifflin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커크 더글라스와 도리스 데이가 주연한 동명 영화로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을 조명한 영화 <Bix>(1991)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 <Young Man with a Horn>(1950) 예고편
이탈리아 영화 <Bix>(1991) 예고편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데이븐포트 생가는 잘 보존되어 현재 숙박업소로 활용되고 있다. 그가 일곱 살이었을 때 한 지방신문이 음악 신동으로 소문난 그에 대해 취재하여 한번 들은 곡을 피아노로 친다며 그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 놀라워했다. 연극 공연을 볼 때도 연극 자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빨리 집으로 돌아와 연극에서 들었던 음악을 그대로 피아노로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오와의 음악 신동 이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음악적인 진보를 이루지 못했고 오랜 음주 습관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서 음악적 재능을 살리지 못한 채 일찍 저물고 말았다.

빅스 바이더벡의 스탠더드 중 하나인 ‘Davenport Blues’(1925)
아이오와 데이븐포트에 있는 빅스 바이더벡 동상 및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