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실력자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지난 한 해에도 여러 신인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 중에는 당신이 깜빡 놓친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 소개한 결산 ‘2019년 인디신을 빛낸 반갑고 신선한 얼굴 8’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2019년의 숨은 신인들을 살펴본다.

2017년에 레인보우99와 함께 자기 이름을 내건 컬래버레이션 음반을 발표한 천미지나 앨범은 아니라도 이미 여러 싱글을 발표한 천용성 등은 제외했다. 방송 <사인 히어>나 <SHOW ME THE MONEY 8>을 통해 이름을 많이 알린 소금과 머쉬베놈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앨범을 발표한 신인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번 편에서는 록과 일렉트로닉 장르의 뮤지션을 소개한다.

* 장르별 해당 아티스트의 주요 앨범 발매순

 

홍대의 많은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고, 인디 아티스트의 독자적인 생존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요즘이라지만 훌륭한 인디록 밴드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들은 신인임에도 과거의 정통을 온전하게 답습하기도 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기도 한다.

러스트러블 <We Love Hate>(2019.01.28)

비록 예전의 명성이나 활동에는 못 미치지만, GMC 레코드는 아직까지 명실상부 국내 하드코어 씬을 대표하는 레이블 중 하나다. 러스트러블은 그런 GMC 레코드가 야심차게 내놓은 2019년 신인 밴드. 메탈신 내 큰 규모의 이벤트인 ‘메탈 업라이징 2019’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레이블의 전통이나 신의 기대와 다르게 순수한 하드코어 음악만 추구하지 않는다. 'lust'와 'trouble'을 합성한 밴드 이름처럼 주로 사랑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록발라드풍의 비장한 멜로디를 활용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뉴메탈의 랩을 얹기도 한다. 깔끔한 미성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김민경의 메인 보컬과 김대호의 그로울링이 한 곡 안에서도 파트를 나누어 치열하게 힘을 겨루며 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Evanescence를 연상하게 하면서도, 훨씬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새로운 흥미를 끈다.

러스트러블 '사랑이 아냐' 라이브 영상

 

보수동쿨러 <Yeah, I Don't Want It>(2019.06.28)

홍대 중심의 문화 프레임을 벗어나 다양한 지역 중심의 문화 소비와 발전이 추구되는 오늘날, '로컬 밴드'라는 수식은 더는 특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꼽히는 부산이라면 의미는 꽤 남다르다. 최근 몇 년 동안 세이수미가 부산을 대표하는 밴드였다면, 2019년만큼은 보수동쿨러가 부산을 대표했다. 2017년부터 부산에서 활동해온 이들은,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보기 힘든 신선한 음악 스타일과 사실 멤버 누구도 부산의 보수동과 큰 관련이 없다는 뒷이야기 덕분에 더욱 '힙'하고 '쿨'해 보인다. 이들의 첫 번째 데뷔 EP는 서프록과 블루스를 거쳐 쟁글팝과 모던록까지 아우르며, 단출하고 훵키한 비트 위 보컬 정주리의 힘 있고 명료한 내레이션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Yeah, I don’t want it.” 긍정과 부정의 능청스러운 공존이기도 한 앨범의 제목처럼 모두가 이해하는 삶의 모순이 함께 하기도 한다.

보수동쿨러 '0308' 뮤직비디오

 

설(SURL) <I Know>(2019.10.18)

2019년 신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디록 밴드를 꼽는다면 아마도 설(SURL)이 아닐까? 이들은 2개의 EP와 2곡을 담은 1개의 디지털 싱글, 웹드라마 OST 참여 1회 등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설의 음악은 언니네이발관이나 혁오 같은 선배들의 모던록이나 새소년 같은 최신 조류의 정통 리바이벌 트렌드를 고루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작업을 더할수록 연주력도 무르익었다. 이와 같은 발전적 면모는 화사하고 역동적인 밴드 사운드와 나른한 보컬 톤,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서정적인 면모를 모두 갖춘 이들의 미래를 더욱 밝아 보이게 한다.

설 'Dry Flower' 뮤직비디오

 

일렉트로닉

모든 음악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산 및 소비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다양한 장르 계보를 갖고 있으며, 독립적인 생산 및 특수한 소비 방식을 취하는 일렉트로닉 신의 아티스트들은 전통적인 개념의 창작이나 앨범 발매와 거리가 먼 활동을 펼치기 마련이다. 이들의 전위성이 돋보이는 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아마도 이 때문이리라. 물론 그 와중에도 앨범 단위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꾸준히 더 넓은 세상에 선보이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장명선 <이르고 무의미한 고백>(2018.12.07)

1년도 더 지난 2018년 12월에 음반을 발표해, 각종 2019년 결산에서 잊히기 쉬운 전자음악가 장명선을 먼저 떠올려 봤다. 2016년 일렉트로닉 듀오 '밤과 낮'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그는 이후의 솔로 활동을 통해 착실히 내공을 다졌고,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한 본 정규 1집에서 뚜렷한 주제 의식과 음악적 개성, 일러스트 작가 김성혜와 협업해 완성한 10장의 그림을 함께 공개하며 신인답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음악은 주로 단순하고 깔끔한 소리를 내는 신시사이저 사인파 사운드와 선연한 멜로디, 여린 보컬이 중심이 되어 맑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물론 그 위에 덧댄 글리치 이펙트와 언제라도 금세 그 소리가 사라질 것만 같은 장명선의 팔세토 창법은 앨범의 메시지처럼 때 이른 괜한 불안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는 2019년 11월, 싱글 'Daphne'를 발표하며 이어지는 활동을 예고했다.

장명선 '이 다음에는' 뮤직비디오

 

넷 갈라(NET GALA) <re:FLEX*ion>(2019.05.31)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NBDKNW(노바디노즈) 소속의 프로듀서로서 서울의 여러 클럽에서 활동해온 넷 갈라(NET GALA)는, 2019년 활동을 통해 신인으로서만이 아닌 일렉트로닉 신에서 가장 왕성한 작업량과 결과물의 좋은 퀄리티를 동시에 선보인 아티스트다. 그는 한 해 동안 더블 싱글 <Quarrel>, 첫 EP <re:FLEX*ion>, 리믹스 앨범 <re:FLEK*tor>를 몇 달 간격으로 발표하며 그야말로 '열심히 일했다.' 넷 갈라의 음악들은 저마다 매우 색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이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매 트랙 사운드가 날카롭게 부각돼 개성이 분명하다는 점과 소리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이어붙여 무척 입체적인 감상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일렉트로닉 음악의 다양한 분화 속에서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노이즈 위주로 발전해온 디컨스트럭티드 클럽 뮤직(deconstructed club music)을 언뜻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층위의 사운드가 어지럽게 뒤엉키거나 하는 일은 없이, 단일하고 선명한 이미지 혹은 그루브 속에 그야말로 '빠져들게' 한다.

넷 갈라 'KIKI'

 

아무(amu) <Era> (2019.10.31)

아무(amu) 역시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DJ이자 프로듀서다. 하우스와 테크노 음악, 클럽과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키워드로 실험적인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채널 '텍스쳐스(textures)'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N.A.S.A.>를 디렉팅하기도 했다. 본작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한 그의 솔로작.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앰비언트 무드를 주요 기조로 삼았고, 그에 더해 무정형으로 흘러가는 테크노 비트를 소통의 주된 언어로 삼았다. 트랙이라는 이름으로 분절된, 그러나 단일한 하나의 시간으로 흐르는 <Era> 속 어지러운 연대기는 특정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각 트랙의 제목을 통해 묘사된다. 기괴한 외피를 지닌 한 여성의 몸과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앨범 전체 러닝타임을 고스란히 담은 뮤직비디오는, 단지 음악을 듣는 것 이상의 뚜렷한 감정과 진한 여운을 준다.

아무 <Era>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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