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란 무엇인가? 정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힙합은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음악 장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남성성’ 문화가 두드러진 장르이기도 하다. 힙합의 여성 혐오에 대해 분석한 학자, 웨이쩌와 커빈(Weitzer & Kubrin, 2009)은 403개 힙합 음악을 분석했더니 여성을 모욕하거나 여성에 대한 불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정당화 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힙합 문화에서 여성은 열등한 타자로 묘사돼 왔다.

하지만 남성 뮤지션들로 그득한 국내 힙합신에 개성 넘치는 목소리와 단단한 실력, 대체 불가한 아이덴티티로 무장해 들어선 이들이 있다. 올해 하반기 신곡을 발표한 윤훼이, 이영지, 림킴이 그 주인공이다. 래퍼로 오롯이 서기까지 이들이 어떤 궤도를 그려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윤훼이(YUNHWAY)

WEDAPLUGG RECORDS 소속의 1995년생 가수로, 2015년 디지털 싱글 ‘Fatal Love’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데뷔 앨범부터 지금까지 주로 PBR&B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PBR&B 장르는 R&B, 힙합, 일렉트로닉 등이 변칙적으로 뒤섞인 음악 스타일로 빈티지한 사운드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특징으로 한다. 윤훼이는 중음의 시크한 목소리로 랩과 보컬을 오가며 차근차근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2016년 프로듀서 세우(sAewoo)와 유닛을 결성해 정규앨범 <2226>을 발표했다. 해당 앨범은 힙합 커뮤니티 리드머가 뽑은 ‘2017 국내 알앤비/소울’ 베스트 5위에 올랐다. 이후 2018년 ‘Liquor’, ‘Find a New Lover’, ‘Long Long Time!’, 2019년 1월에는 싱글앨범 <Silhouette>을 발표했다.

윤훼이 ‘Fatal Love’

윤훼이는 인터뷰에서 첫 앨범 <Fatal Love>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앨범 발표 이후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담았지만 거칠고 기존 음악과 다르다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 그는 이후 좀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팬들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일종의 ‘타협’을 한 것. 하지만 이 또한 여전히 유명세를 위한 게 아닌 그저 자신의 음악일 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사람들의 삶까지 바꿀 필요는 없지만, 음악이 어딘가로 흐르고 사람들에게 자극이 된다는 걸 알게 될 때, 어떤 점에선 변화가 생겨 그들이 내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 땅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윤훼이가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다.

 

이영지

랩 경력 6개월 만에 전국 135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등래퍼 3>(2019)에서 1등을 거머쥔 힙합계 슈퍼 루키. 랩 네임을 따로 짓는 여타 래퍼들과 달리 이영지는 본명을 쓴다. “넥타이 풀어 헤쳐야 힙합이다.”,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다.”라는 또래들의 말을 듣고 “어디서 배운거야? 그런 힙합?”이라고 맞받아칠 만큼 자신감 넘치고 솔직하다. 또한 경연 내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노력파다. 최종 우승곡 ‘고 하이(Go High)’에는 래퍼 이영지의 다짐이 담겨 있다. “그토록 기다려온 때가 나에게 왔지.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않아. 내 앞에 벽들을 뛰어넘어. 백조가 된 미운 오리. 하늘 위엔 나의 두 팔 높이 날아 올라가.” 그는 올해 하반기 ‘I' m the ONE’, ‘암실’, ‘New History’ 세 싱글을 발표하며 차근차근 도약하고 있다.

이영지 ‘암실’ 뮤직비디오

 

림킴(LIM KIM)

김수아·홍종윤 논문(2016)에 의하면 과장된 “남성성 추구는 힙합 음악의 정서 구조 중 하나”다. 남성들의 연대와 인맥으로 얽히고 얽힌 이 장르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정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선언’하는 것은 기존 흐름을 바꿀 ‘사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절처럼 타인이 부여한 틀을 깨고 내면의 목소리를 랩으로 끄집어낸 이가 있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4년 남짓 시간이 걸렸다. 바로 림킴이다.

나긋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예전 ‘김예림’과 다르다. 림킴은 자신을 제대로 직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결기로 내면의 욕망을 노래한다. “남성의 시선 속에서 날 정의하지 않아”, “새로운 목표를 향해 소리 높이자”. 지난 5월, 활동의 포문을 열었던 신곡 ‘SAL-KI’(살기)에서부터 그는 강렬한 랩을 내뱉는다. 대중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0월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첫 EP <제너레아시안(GENERASIAN)>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 시간, 공간을 넘어/ 모든 젠더, 인종, 그리고 믿음까지” “우리는 퍼져나가/ 슈퍼 바이러스처럼”(디지털칸) 서구/남성 중심 시선으로 편재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아시아 여성으로서 새로운 도약과 다양한 개성을 이야기하는 림킴. 림킴이 장르 그 자체가 되는 그 날이 기대된다.

림킴 ‘YELLOW’ 라이브 영상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