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은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작품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색을 맡은 제임스 아이보리는 올해 11월에 국내 개봉한 <모리스>(1987)를 비롯해서, 사랑에 대한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왔다. 설렘부터 갈등까지 사랑의 모든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면, 제임스 아이보리가 참여한 작품이 좋은 선택지가 될 거다. E.M.포스터의 소설을 각색해서 연출한 세 작품부터 가장 최근에 각색으로 참여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제임스 아이보리가 영화를 통해 그려낸 사랑의 풍경을 살펴보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받은 제임스 아이보리(왼쪽)와 주연배우 티모시 샬라메(오른쪽), 이미지 출처 – 'prnewswire'

 

<전망 좋은 방>

영국에 사는 '루시 허니처치'(헬레나 본햄 카터)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사촌 '샬롯'(매기 스미스)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간다. 기대와 달리 전망이 안 좋은 방 탓에 하소연하는 두 사람을 보고, 전망 좋은 방에 머무는 에머슨 부자는 그들에게 방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방을 바꾸는 걸 계기로 루시는 '조지 에머슨'(줄리안 샌즈)과 가까워지지만, 샬롯은 그들이 가까워지는 걸 막고 서둘러서 영국으로 돌아온다. 영국으로 돌아온 루시는 '세실'(다니엘 데이 루이스)과 약혼을 하고, 근처에 에머슨 부자가 이사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제임스 아이보리에 관해 이야기 하려면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다. 제임스 아이보리와 이스마일 머천트는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제임스 아이보리의 연출작 대부분을 함께 제작했다. 두 번째는 각본가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다. <전망 좋은 방>(1985)은 제5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 의상상, 각색상을 받았는데, 각색을 맡은 이가 바로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다.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는 제임스 아이보리의 연출작 대부분의 각본을 맡았고, E.M.포스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 작품 <전망 좋은 방>과 <하워즈 엔드>(1992)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번이나 각색상을 받았다.

<전망 좋은 방> 트레일러

루시가 플로렌스에서 처음으로 머문 방의 전망이 좋지 않다는 점은 다양한 규범 안에 갇힌 루시의 상태와도 비슷하다. 루시는 조지와 함께하면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자유에서 오는 기쁨을 느낀다. 루시가 원하는 전망 좋은 방이란, 그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고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모리스>

20세기 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는 '모리스 홀'(제임스 월비)은 우연히 만난 '클라이브'(휴 그랜트)와 가까워진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둘은 결국 서로 사랑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둘의 환경과 가치관이 점점 바뀜에 따라, 둘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한다.

올해 11월 국내에 개봉한 <모리스>(1987)는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제임스 월비와 휴 그랜트는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모리스>는 소설가 E.M.포스터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E.M.포스터의 소설을 가장 완성도 높게 영화화한 감독으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전망 좋은 방>(1985), <모리스>(1987), <하워즈 엔드>(1992) 등을 연출했다.

<모리스> 트레일러

<모리스>는 사랑의 우선순위에 대한 영화다. 클라이브는 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을까 봐 두렵다고 말하고, 모리스는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을 위해서 무엇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사랑을 위해서 얼마나 대단한 걸 할 수 있겠어, 라는 전제와 함께 던져지는 세상의 질문에 모리스는 행동으로 답한다. 자신에게는 사랑이 곧 삶이라고.

 

<하워즈 엔드>

'헬렌 슬레겔'(헬레나 본햄 카터)은 '폴 월콕스'(조셉 베넷)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의 사랑은 금세 끝나고, 슬레겔 가문과 월콕스 가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어색해진다. '마가렛 슬레겔'(엠마 톰슨)은 오랜만에 '루스 월콕스'(바네사 레드그레이브)를 만나 친분을 유지하고, 헬렌은 우연히 만난 '레오나르 바스트'(사무셀 웨스트)와 가까워진다. 루스 월콕스는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집 '하워즈 엔드'를 마가렛에게 남기겠다고 하고, '헨리 월콕스'(안소니 홉킨스)는 이를 믿지 못하고 유언장을 없앤다. 그 후 마가렛과 헨리는 우연히 만난 뒤로 가까워지고, 헨리는 유언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마가렛에게 청혼한다.

<하워즈 엔드>(1992)는 제6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미술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엠마 톰슨과 안소니 홉킨스는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다음 작품 <남아있는 나날>(1993)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춘다. 엠마 톰슨은 <하워즈 엔드>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몇 해 뒤에 주연과 각색을 겸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로 각색상을 받는 기록을 세운다.

<하워즈 엔드> 트레일러

E.M.포스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는 대부분 영국 사회의 계급과 사랑을 엮어서 보여준다. <하워즈 엔드>에서 슬레겔 자매가 사랑을 위해 하는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슬레겔 가문이 월콕스 가문에게 흡수되는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다. 사랑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고, 그러므로 누군가는 사랑을 이용하기도 한다. 헨리 월콕스가 마가렛 슬레겔에게 청혼한 건 오직 사랑 때문이었을까. <하워즈 엔드>의 결론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사랑을 의심하게 할 만큼 차갑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983년 이탈리아의 한 별장,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아버지 '펄먼'(마이클 스털버그)과 어머니 '아넬라'(아미라 카서)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있다. 펄먼 교수는 매해 여름마다 별장에서 함께 연구활동을 할 보조 연구원을 구하고, 올해에는 '올리버'(아미 해머)가 별장으로 온다. 엘리오는 올리버와 함께 지내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가 점점 특별해짐을 느낀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각색과 제작에 참여했고,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연출은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를 연출한 이탈리아 출신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맡았다.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색에 루카 구아다니노의 연출이 더해지면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속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많은 관객들의 마음 안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트레일러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엘리오'라고 부른다. 달콤하지만 사랑에 끝이 있다면 아픈 말이기도 하다. 이름이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모든 순간에 그를 떠올리게 될 거다. 그를 다시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잊을 수 없는 여름과 사랑을, 이름 안에 담아두고 살아간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