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은, 예술가는 자기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예술로 담아내는 이들이다. 여기 사랑으로부터, 뻔한 일상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꼰대로부터 자유를 울부짖은 여성들이 있다. 물론 이 노래의 주체는 여성이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모두 가수가 직접 작사, 작곡한 따끈한 12월 신곡이다.

* 앨범 발매 최신순

 

장재인 'Venus'(19.12.18)

“Don't chase me up, (중략) 유연하게 피어난 마음이 있기에 돌아본 이 별 위에 놓아둘게. 여기서 그댈 보내. 그대도 나를 놓아줘. 괜찮아. 자유로와. 이제서야 저 우주로 사라져.”

오디션 프로그램 신드롬을 일으켰던 <슈퍼스타K2>(2010) 이후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다. 당시 최종 3인에 오른 유일한 여성으로서 개성 넘치는 음색과 힘 있는 목소리, 짙은 감성으로 인기를 끌었던 장재인은 그동안 있었던 투병 등 많은 악재를 딛고,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존재감을 발휘 중이다. 그는 지난 18일 발매한 EP <INNER SPACE>에서 이전보다 훨씬 내밀한 자기 목소리를 싣는다. 앨범 커버에도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장재인 'Venus'

앨범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자유'다. 고정관념이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날 자유. 그중에서도 타이틀 'Venus'는 관계에서의 자유를 다룬다. 말하자면 이는 이별로부터의 자유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지난 추억이나 무거운 감정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되새기고 있다. 아티스트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니만큼, 공명하는 리버브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부유감과 스스로 다독이는 듯한 차분한 보컬이 매력적이다.

장재인 인스타그램

 

정혜선 'WHEEL(쳇바퀴)' (19.12.16)

“다람쥐 쳇바퀴 쳇바퀴 빙빙빙 도니 좋니 빙빙빙 도니 좋니 어지롭지 않니 지루하지 않니 꿈틀거리지 않니 불편해 보여 불행해 보여 그만 박차고 뛰어나오지 그래.”

정혜선은 무려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1989)에서 은상을 수상한 관록의 싱어송라이터다.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따 발표한 1집 <정혜선>(1992)은 당시 하나음악(현재 '푸른곰팡이')을 대표하는 조동진, 조동익 형제가 각각 디렉팅과 편곡을 맡고, 일류 세션 및 장필순, 조규찬 등 최고의 가수들이 가세해 오늘날까지 귀한 음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 후 정식 발매도 안 된 2집을 거쳐 20년 넘게 공백기를 가진 그는, 2017년 조용히 복귀한다. 발매하지 못했던 2집의 곡을 강렬하고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조곤조곤한 자기 목소리로 소화해낸 반전의 음악이었다.

정혜선 'WHEEL(쳇바퀴)'

활동을 부지런히 이어가 올해 초, 3집 <시공초월>을 내놓은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 싱글을 연이어 내놓는다. 최근 발표한 이번 작품은 감각적이고 유쾌한 레트로 무드 사운드에 진지한 가사와 유머러스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독특한 노래다. 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이 맴도는, 불편하고 불행한 우리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감을 믿고 내 방식대로 세상을 헤쳐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사에 “ㅋㅋㅋㅋㅋ”와 “체체체체쳇”을 이질감 없이 녹여내는 작법이나 직접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능청스러운 몸짓을 소화해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실력과 세태를 반영한 블랙유머 모두 겸비한 UV가 부럽지 않다.

정혜선 페이스북

 

피싱걸스 '응 니얼굴' (19.12.12)

“오늘도 남 걱정에 열일하는 대한민국 안녕하세요. 내가 해봐서 다 아는데 무시하는 것 같아 언짢아요. (중략) 신경 끄고 저리 좀 가줄래요. 그래그래 니 얼굴. 니 얼굴이나 걱정하지 그래.”

“음악으로 사람을 낚겠다”라는 당찬 포부의 이름 '피싱 걸스'부터 남다른 패기가 느껴진다. 첫 앨범명 <꺼져짜져 뿌잉뿌잉>(2013)과 타이틀 '오.천.주 (오빠 나 천오백원만 주세요)', 올해 발표한 싱글 '좋아요를 눌러주세요'까지 보고나면 솔직함을 넘어선, 이들의 인디 신 내 전무후무한 캐릭터와 젊고 발칙한 B급 면모에 그 음악이 무척 궁금해진다. 피싱 걸스의 음악은 그 팀 이름과 여러 노래 제목, 가사와 어울리는 펑크팝(punk pop). 펑크록을 근간으로 블루지한 사운드, 흥겨운 디스코 리듬, 얼터너티브록의 거친 매력과 경쾌하고 직선적인 단선 멜로디 위주의 노래가 이들의 콘셉트와 메시지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피싱걸스 '응 니얼굴'

12월 12일 발표한 이 노래에서, 이들 3인조는 다가오는 설 명절을 겨냥이라도 한 듯 “잔소리 말고, 니 얼굴이나 걱정하라”고 나이 불문한 세상 모든 '오지라퍼'와 '꼰대'들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조회 수 158만을 기록한 머쉬베놈의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Prod. SLO)' 뮤직비디오 영상에서 열연을 보이며 유튜브 스타가 된 배우 홍석연 씨가 이번 '응 니얼굴' 영상에도 등장해 꼰대를 대표하는 '홍 부장'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뽐냈다. 기타 솔로에 뒤이어 흥겹고 록킹한 후주까지 듣고 나면 정말 주변의 온갖 오지랖과 꼰대질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피싱걸스 페이스북

 

우효 '뻔한 치킨' (19.12.11)

“숨막혔어. 두꺼운 화장에 덮혀서 답답했어. 나한테 맞는 건 없었어. (중략) 아 돌고 돌고 돌아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넌 뻔하지.”

달콤함과 처연함을 한두 스푼씩 섞은 듯한 목소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 심금을 울리는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데뷔 이래 벌써 5년째 청춘을 대변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아온 인디계의 아이돌 우효. 그는 이번 싱글에서 '뻔한 치킨'이라는 다소 모호한 제목과 '말'을 그린 앨범 커버가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뻔한 희망을 전달한다.

우효 '뻔한 치킨'

노래의 화자는 '두꺼운 화장'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틀과 남들의 인식 안에 갇혀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 속에서 그가 발견한 자유는 바로 '너'라는 존재. 우효가 자랑하는 코드 위주의 우울하고 서정적인 건반 사운드 위를 터벅터벅 걷던, 평소보다 더욱 기운 없는 우효의 목소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상처럼 여전히 뻔한 '너'를 만나는 순간 뜻밖에 분위기가 전환된다. 뻔한 세상 속에서 찾는 뻔한 희망. 어쩌면 진정한 자유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 노래가 말해주는 듯하다.

우효 인스타그램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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