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세함'과 '민감함', '세심함' 같은 말에 끌린다. 내 성향과 정반대에 있는 이 단어들을 볼 때마다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된다. 동시에 기가 죽기도 한다. 특히 일류 작가가 지닌 민감한 촉과 문장에 새겨진 곡진함을 보면, '나는 저들 세계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든다. 무심히 일하다가도 세심함과는 거리가 먼 나를 의식한다. 쉽게 살고 싶어 자초지종을 무시하고 일을 밀어붙인다. 퇴근길에 한참을 고민하지만, 등만 대면 잠이 쏟아진다. 난 가끔 어떤 이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사실 이해할 게 너무 많아서 생긴 착오가 아닐까 짐작한다. 사려는 피곤한 일이니까. 그럴 때 침대 맡에서 주워 읽는 책은 안도의 한숨과 같다. 일류 작가는 문장 속에 고된 이해의 과정을 녹여낸다. 사건 자체의 스펙터클이 아닌, 사건 이후의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정말 순수문학이라는 게 있다면, 그 '순수' 안에는 사건이 자아내는 빛의 파장에 따른 성분이 줄줄이 적혀있으리라. 다음 세 작품은 개인의 내밀한 순간을 정밀하게 포착한 책이다.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종일 스치는 일은 무수하지만, 기억에 남겨진 일은 드물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자취만 남아 희미해진다. 작가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별거 아닌 순간을 정밀하게 그려 미묘한 생의 감각을 밝혀낸다. 수록된 작품이 모두 훌륭한 이 소설집에서 <구멍>에 관해 적고 싶다. 어릴 적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화자는 평생 그 사고에 매여 산다. 머릿속으로 사건 재구성하며 제 과오를 탓하며 미련을 가진다. 당시 덜컥 겁이 나 가족에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책상에 앉아 상상으로 친구가 여전히 살아서 자신과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끝내 참혹한 기분에 휩싸여 자책할 뿐이다. 그렇다 그는 무력하다.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를 어떻게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수 있을까. 작가는 친구가 죽은 사건 당일 여름날 아득한 동네 풍경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마치 주워 담지 못한 진실이 거기 흩어져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공기를 낱낱이 문장에 옮긴다.

“버지니아는 가뭄 철이었다. 2주째 비가 오지 않았고, 기온은 세 자릿수를 기록했으며, 저녁이 되어도 40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늦은 오후의 공기는 투명하고 가볍고 아주 얇아서 마치 그 속을 움직여 다니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고, 눈을 찡그려 뜨면 쇄석 진입로 위로 물결치듯 솟아오르는 연기가 보일 듯했다.”

기억이란 편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학은 인위적인 구원을 배척한다. 곪지 않도록 보호막을 씌울 순 있어도 상처가 없는 것처럼 호도할 순 없다. 앤드루 포터는 오직 제스처만 남긴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후회로 얼룩진 시간을 매만지며 기억을 추스르기 바쁘다. 결국 그 정도가 소설이 할 수 있는 다가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한다. <구멍>에서 화자는 자신이 왜 그 구멍 안에 친구를 두고 왔는지는 끝내 함구한다. “나는 내 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그 부분은.” 거기엔 어떤 숙명적인 구석이 있어 우두커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회한(remorse)이란 '한 번 더 깨물다'라는 어원을 가진다. 인간이 늘 과거에 얽매여 사는 건 다시 만날 수 없는 순간을 기어코 깨물어서 상처를 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잊을만하면 상처는 덧나고 부르튼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내게 무해한 사람>을 펼치니 녹색 펜으로 그은 밑줄이 빼곡하다. 책을 읽으며 영역표시를 하듯 이곳저곳 내 의도와 채취를 담는다. 책과 나 사이 점이지대를 찾아 곱씹는다. 종종 난 이해 가능한 감정에만 귀를 기울이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이해할 수 없을 땐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우다가 듣기 좋은 말에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펜을 드는 건 아닐는지. 내가 아무리 누군가에게 열려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도 그게 가당키나 할까. 속단을 경계하며 살아도 챙기지 못한 마음이 불쑥 솟아난다. <내게 무해한 사람>엔 현시대가 앓는 갈등 틈으로 진입하려는 작가의 야심이 느껴진다. 젠더 감수성, 남성 권력이 지닌 폭력성과 그로 말미암은 페미니즘, 빈부격차, 발작적인 폭력, 이방인 정서, 시골 소멸과 도시 정체를 서술한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험에 가닿으려는 분투다. 방 한구석에서 제 속내를 드러내던 작가는 이제 버스를 타고, 어느 도시 골목에 기대어 선 타인에 눈길을 보낸다. 최은영은 좀 더 무릅쓰며 내키지 않는 곳까지 파고든다. 눈을 마주하길 주저했던 수줍음은 여전하지만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 읽는 내내 곳곳에서 숨을 골라야 했다.

최은영이 그린 한국엔 지긋지긋한 도시인의 염증과 결국 그곳에서 천착할 수밖에 없는 힘 빠진 어깨가 있다. 감히 위로라고 뭉뚱그려버리기에는 귓가를 맴도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의 새침한 생김새와 매캐한 먼지를 스치며 걷는 그들이 친숙하다. 주위를 기민하게 살피며,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파묻고 카카오톡으로 쭈뼛거리고 인스타그램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그들. 감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언어마저 이미지로 소비하는 그들. 언어가 협소해진 시대의 감정이란 불가해한 뉘앙스에 가깝다. 상대를 알아보고 언급하지 않으면 감정은 뭉친 어깨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늘 불가결한 귀결을 품고 사는 인생은 순간순간 음습한 마음에 시달린다. 잊을만하면 나를 괴롭히는 기억에 골부림 한다. 최은영은 더딘 손길이지만 최대한 신경 써서 스쳐 가는 감각을 매만진다. 느닷없이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는 친구 앞에서 자신이 지었던 표정을 기억하고(수록작 고백), 멀리까지 자신을 찾아온 친구를 현실적 고민 탓에 외면했던 무심함(수록작 아치디에서)에 대해 생각한다. 미처 휘발하지 않은 감정을 기어코 형언한다. 눈을 비비고 보면 비루한 하루에도 미세한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최은영은 기민하게 눈을 돌리며 우연과 반복이 진자 운동하는 어둠을 그려낸다.

 

손보미 <그들에게 린디합을>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유머와 재기, 가끔 삐죽거리는 위악적인 말들이 인상적인 소설집이다. 생각 없이 비실비실 웃다가 끝내 서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폭우>다.

이야기의 화자는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스터 장'이다. 그는 현재의 고요함에 감사한 마음이다. 폭우가 세상을 뒤덮은 이 밤에도 침묵에 기댈 수 있어 안도한다. 이야기는 미스터 장이 손님으로 온 두 부부의 사연을 들어주는 형식이다. 두 부부는 경제적인 면모는 물론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두 부부다. 겉보기엔 온전해 보이는 한 부부는 지금 느닷없는 삶의 균열에 경각한다. 반대로 나락에 떨어진 듯 보였던 또 다른 부부는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전복을 꿈꾼다.

미스터 장은 끝까지 사연 많은 부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양을 배운 사람의 예절에 가깝다. 도시인 특유의 걱정을 가장한 너른 무관심이 흐른다. 그는 오직 영업을 마치고 혼자 남아 커피 한잔을 하며 정적을 즐길 궁리만 한다. 평탄한 일상에 잠재하는 파국의 징조는 그에게 먼 얘기다. 섣부른 관계 맺기를 하며 늘 폭탄 같은 갈등을 앉고 사는 타인을 보며 딱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남자는 속된 도시를 좋아하지만, 결코 주류라고 불리는 전형 안으로 뛰어들 마음이 없다. 그는 고립을 만끽하며 뭉친 어깨를 주무른다.

오늘도 광장에서는 화가 나 열렬하게 무효를 외치는 무리가 있다. 그 반대편에는 누군가를 추모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난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신문로의 어둑한 골목을 향해 발만 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누리는 주말 저녁을 위해 그들을 스친다. 세상은 살면 살수록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을 단호히 재단하고 사건을 손쉽게 해석하는 소설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섣부른 단정을 일삼는 문장에 더는 동요하지 않는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느슨한 거리감을 느낀다. 마치 지구가 가루가 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며 자신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손보미 작가는 <폭우>를 통해 인간 삶을 감싸는 감정의 충돌과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균열의 양상을 면밀하게 그린다. 무관심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 도시는 서로가 타인임을 견지한다. 이 시간 어디선가 일어날 범죄, 폭우로 물에 떠내려간 어떤 가족처럼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은 외면한다. 작가는 모두 의식하고 있지만 꺼내놓지 못했던 도시의 어둠에 시선을 둔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