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일어난 힐링 열풍은 이를 실천할 여러 가지 신드롬을 동시에 낳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례길이나 트레킹. 목적 지향적인 여정이나 등산이 아닌 걷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행위는 실제 힐링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으며 아직까지 유행을 이어가고 있다. 게임 속 세계에도 힐링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여가에 즐기는 취미 활동이지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경쟁에 성장에 혈안이 되어 스트레스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에 마치 순례길이나 트레킹처럼 여정을 통해 힐링을 선사하는 게임을 모아 봤다. 추운 겨울,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연말연시를 따스한 힐링의 시간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 출시 최신순

 

<어라이즈: 심플 스토리>, 노인의 인생을 반추하는 아름다운 여정

플랫폼 어드벤처 게임 <어라이즈: 심플 스토리(Arise: A simple story)>는 최근 2019년 12월 3일에 출시된 신작이다. 피콜로스튜디오가 발표한 데뷔 작품으로 한글화가 되었으며, 요소요소마다 제작사의 야심이 묻어나는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조종해 과거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독특한 고유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게임 내 밀물과 썰물, 낮과 밤, 여름과 겨울 등을 조절하고, 앞으로 나아갈 루트를 만들어간다. 게임의 스토리 역시 시스템을 반영한다.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화장된 이후 눈 덮인 산 정상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게임이 시작하지만, 플레이어가 시간을 되돌림에 따라 주인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정을 떠나게 되는 식이다.

트레일러

주인공과 함께 여행을 떠난 플레이어는 3시간가량의 플레이타임 속 여정에서 노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노인이 그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순간과 슬픈 순간을 모두 마주한다. 노인의 지난 인생 속 달콤한 사랑과 상실감, 희로애락이 뒤섞인 순간들은 게임 특유의 아기자기한 시스템과 캐릭터와 만나 무겁지 않은 재미를 전해주며, 동시에 실감나는 광원 효과를 통해 계절감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화면 및 웅장한 음악과도 잘 어우러지며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스>,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의 예술

<그리스(GRIS)>는 길을 잃은 채 꿈속을 방황하는 소녀 '그리스'가 여정을 통해 현실을 만나 성장하고, 상처와 시련을 극복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이다. 광활한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리스는 뿔뿔이 흩어진 별을 모아 별자리를 만들거나, 기억의 조각을 획득해 앞으로 나아간다. 2D 그래픽이지만 마치 순정만화나 수채화 일러스트처럼 사춘기 청소년의 감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한 아름답고 섬세한 디자인, 감미로운 음악, 무엇보다 추상적인 꿈속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한 듯한 상상력 넘치는 세계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1년 전인 2018년 12월에 스팀에서 출시한 퍼즐게임으로 출시 일주일 만에 유저들의 입소문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트레일러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적막한 붉은 사막, 차갑고 공허하기만 한 푸른 바다, 고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활력을 품고 있는 짙은 녹음의 숲, 그리고 새까만 밤하늘에 은은히 떠올라 모든 생명체를 위로하는 듯한 샛노란 달빛. 그리스는 각양각색의 여정을 통해 자기 세계에 고유한 색깔을 입히고, 그렇게 색을 찾은 세계는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종종 등장하는 컷신은 캐릭터의 정교한 움직임을 멋진 배경 위에 어우러진다. 조작이 단순하고, 퍼즐이 어렵지 않으며, 사실상 게임 오버가 없는 게임이기도 해, 일상의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에 지친 이라면 한 번쯤 즐겨봐도 좋을 게임이다.

 

<압주>, 바다가 선사하는 고요한 시간

2012년 발매한 어드벤처 게임 <저니(Journey>는 게임 개발자 회의에서 시상하는 GDC(Annual Game Developers Choice Awards) 2013년 시상식에서 무려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대 최다 수상작에 올라있는 작품이다. 황량하지만 멋진 풍경의 사막을 여행하며 유적을 발견하고 역사를 탐험하는 이 게임은 1시간 반 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을 채워주는 감동적인 스토리와 목적 지향적 관점을 벗어나 게임 속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세계관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힐링 게임의 대표작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압주(ABZÛ)>는 그런 <저니>의 훌륭한 작품성을 완성했던 그래픽 팀과 음향 팀이 가세해 만든 어드벤처 인디 게임이다. PSN Plus가 제공하는 무료 게임으로 2017년 5월에 출시했다.

<압주> 챕터1 플레이 영상

<저니>가 사막을 여행한다면 <압주>는 잠수복을 입고 해저를 탐험한다. <저니>와 마찬가지로 플레이타임은 1시간 30분 가량으로 짧지만,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계관을 즐기기에 따라 바다 풍경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얼마든지 긴 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활한 바닷속 풍경과 물에 빛이 스미는 아름다운 모습, 여러 해양 동물이 플레이어 주변을 떠도는 광경은 끝없이 신비로운 기분을 전해준다. 실제로 수집을 이용한 도전 과제가 있어 스토리 라인과 상관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과제에 몰입하다 보면 3~4시간 가량으로 플레이타임이 늘어난다. 여기저기 뒤지며 수집을 하다보면 해녀가 된 기분도 든다. 진행을 통해 점차 드러나는 스토리는 숭고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Editor

정병욱 페이스북
정병욱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