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레코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창업자 겸 프로듀서 맨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는 지금도 여전히 아티스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하고 있으며, 음반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프로듀서로 올린다. 많은 음악 레이블들이 초기 성공을 이루면 장르를 확대하고 사업 규모를 대형화하지만, ECM은 여전히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음악의 산실로 남았다. 어떻게 보면 설립부터 현재까지 창업자의 음악적 취향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맨프레드 아이허의 ECM 소개 영상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클래식 더블 베이스를 전공하던 그는, 악보 음악보다 즉흥연주 음악에 관심을 두고 미국 여행을 하면서 폴 블레이, 오넷 콜맨과 같은 거장을 직접 만나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재즈 음악을 제작하기로 마음 먹고 고향 인근의 뮌헨에서 ECM을 설립했다. 마침 뮌헨에 거주하던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맬 월드론(Mal Waldron)을 설득하여 첫 음반 <Free At Last>(1969)에 음반 코드 '1001'을 부여하면서 레이블의 역사를 시작했다. 창업자는 부지런히 음악 현장을 누비며 폴 블레이, 얀 가르바레크, 칙 코리아, 게리 버튼 등을 만났고, 그러다가 키스 자렛의 <The Köln Concert>(1975)가 350만 장이 팔리며 주목할 만한 재즈 레이블로 성장했다.

ECM의 첫 음반, 맬 월드론의 <Free At Last> 소개 영상

이듬해에는 게리 버튼의 밴드와 레코딩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타리스트의 데뷔 음반을 레코딩하였다. 그의 이름은 팻 매스니(Pat Metheny), 앨범명은 <Bright Size Life>(1976)였다. 또한, 재즈 페스티벌에서 눈여겨 보았던 조지 러셀 밴드의 색소포니스트를 만나러 핀란드 오슬로로 내달렸다. 그의 이름은 얀 가르바레크, 지금도 변함없이 ECM과 함께 하는 핵심 아티스트다. 재즈와 같은 즉흥연주 음악을 고집하던 ECM은, 1984년에 ECM New Series를 서브 레이블을 내며 클래식이나 종교 음악 같은 작곡 음악으로 확장했다. 바로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Arvo Pärt의 <Tabula Rasa>(1984)와 같은 명반을 냈고, 얀 가르바레크와 힐리어드 앙상블이 협업한 <Officium>(1994)와 같은 크로스오버 명반도 나왔다.

ECM 50주년 기념 영상

만프레드 아이히가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나온 Arvo Pärt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차를 세워놓고 오랜 시간 음악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도 직접 아티스트를 찾아 나서고 녹음에 앞서 아티스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독일 등에 최상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갖추고 최고의 사운드로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끌어낸다. 사람들은 기술적으로는 'ECM Sound', 음악적으로는 'ECM Style' 이라 부르고, ECM의 미니멀리즘 적인 앨범 디자인에 대해서도 환호한다. 음악과 소리에 대한 창업자의 열정은, 40주년에 제작된 음악 다큐멘터리 <Sounds and Silence: Travels with Manfred Eicher>(2009)에 잘 드러나 있다.

다큐멘터리 <Sounds and Silence: Travels with Manfred Eicher>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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