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링크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발견하는 건 때론 보물찾기 같다.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상상도 못했던 음악들을 발견할 때의 그 희열이란. Oh Pep!은 호주 멜버른 출신의 여성 듀오.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올리비아 할리(Olivia Hally) 그리고 바이올린과 만돌린을 맡은 페피타 에메리히스(Pepita Emmerichs)로 구성되어있다. 세계적인 상을 받았다거나 잘 알려진 영화나 드라마의 OST로 쓰였다거나 유명한 음악 차트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숨겨진 밴드를 찾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그런 정도의 밴드. 하지만 한번 알게 되면 자꾸만 마음이 가는 그런 밴드다.

이미지 출처 - 링크

남반구에서부터 태평양을 가로질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이 밴드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보자. 가을 소풍날, 어딘가에 숨겨져 꼬깃꼬깃 접혀있던 보물 쪽지를 발견했을 때처럼 얼굴 가득 미소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올가을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는 또 한 번 풍성해질 것이다.

 

Olivia + Pepita = Oh Pep!

이미지 출처 - 링크

2009년, 올리비아와 페피타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빅토리안 예술 중등학교(Victorian College of the Arts Secondary School)를 다니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페피타에게 자신의 무대에 함께 서겠냐고 물어봤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존 프린(John Prine)과 루신다 윌리엄스(Lucinda Williams) 같은 뮤지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두 소녀는 함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올리비아가 12살, 페피타가 고작 11살이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졸업 후, 둘은 클럽이나 포크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주 빠짐없이 공연하던 둘은 이내 그 활동 범위를 멜버른에서 미국으로 차근차근 넓혀갔다. 공연에 익숙해졌고,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계적으로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2012년, 본인들의 이름 앞글자를 딴 'Oh Pep!'를 타이틀로 한 데뷔 EP를 자체 제작해서 세상에 내놓았고, 2013년 10월에는 두 번째 EP를 선보였다. 2016년에는 드디어 데뷔 앨범인 <Stadium Cake>까지 발매하기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 - 링크

Oh Pep!은 매력 있는 밴드들이 그렇듯 여기저기 눈도장을 찍고 다닌다. NPR 뮤직의 밥 보일런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밥 보일런은 2015년 CMJ 뮤직 마라톤에서 Oh Pep!의 공연을 본 뒤 “깊이 있고, 재미있고, 시적”이라고 감탄하며 자신의 방송인 NPR Music의 <Tiny Desk Concerts>에 Oh Pep!을 출연시켰다. 덕분에 방 안에 앉아 <Tiny Desk Concerts>를 보며 동경하던 둘은 그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뉴욕타임즈는 또 어떤가. “삐딱하면서도 애틋한 멜로디”에 능숙하다는 감탄을 남겼는데, 이보다 더 Oh Pep!을 잘 표현한 한마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Oh Pep! NPR 뮤직 타이니 데스크 라이브 영상

 

장르가 없는 게 장르

Oh Pep! <Stadium Cake>, 이미지 출처 - 링크

Oh Pep!의 음악은 포크와 컨트리라는 장르로 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명확하게 한정 지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해 페피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음악을 만들 때 장르는 고려하는 사항이 아니라며 장르가 자신들의 음악을 제한하게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주로 듣는 음악의 종류인 팝, 포크, 컨트리가 많이 반영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클래식과 재즈도 연구하고 락, 블루그래스도 백그라운드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팝, 인디, 락 그 이상의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Oh Pep!이 되어 섞이는 것. 어쩌면 Oh Pep!이 추구하는 장르는 '장르가 없는 게 장르'인, 'Oh Pep! 그 자체가 장르'인 그런 음악이 아닐까.

Oh Pep! 'Doctor Doctor'

이런 특징은 이들의 데뷔 앨범인 <Stadium Cake>에도 잘 드러난다. 포크와 컨트리 장르의 색깔도 뚜렷하지만 포크, 컨트리 음악이라고 단정지을 수 만은 없다. 사실, <Stadium Cake>를 듣다보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데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는 Oh Pep!의 의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들이 말했듯이 “평생 단 한번 밖에 할 수 없는 데뷔 앨범”이기에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지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중독성 있는 'Doctor Doctor'와 몸이 나른하게 녹아드는 것만 같은 'Tea, Milk & Honey', 라이브로 들었을 때 더 매력 있는 'The Race'를 꼭 한번씩 들어보자. 아마 한번 듣고나면 한번만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Oh Pep! 'Tea, Milk & Honey'

 

그리고 두 번째 앨범, I Wasn’t Only Thinking About You

Oh Pep <I Wasn’t Only Thinking About You>, 이미지 출처 - 링크

2017년 여름, 올리비아는 여행을 떠났다. 2018년 초까지 이어진 그 여행에서 올리비아는 많은 뮤지션과 협업하며 작곡을 해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작곡한 곡들을 멜버른에 가져온 올리비아는 그곳에서 페피타와 함께 현악기를 추가하고 편곡을 하며 <I Wasn’t Only Thinking About You>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다. 신기한 건 따로 작업해도 다른 의견을 내도 결국엔 둘다 서로에게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페피타는 둘다 좋아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 확고한 둘만의 취향이 결국 Oh Pep!스러움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이 같은 학교 복도에서 마주치길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Oh Pep! 'Hurt Nobody'

대부분 기타로 작곡하는 것과는 달리 <I Wasn’t Only Thinking About You> 앨범에 수록된 'Hurt Nobody'는 피아노로 작곡했다. 이 곡이 쓰인 것은 2018년 초 뉴욕 맨하탄. 때마침 폭탄 사이클론으로 맨하탄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Hurt Nobody'를 작곡한 날은 특히나 눈 속에 갇혀 으스스하고 종말이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단다. 올리비아는 "우리는 굉장히 따뜻한 방에 있었는데, 밖에서는 미친 듯이 폭풍우와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는 말로 이 곡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Hurt Nobody'를 들으며 느껴졌던 그 서늘함, 홀로 남겨진 느낌 같은 것들이 그런 환경에서 나왔구나 싶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Oh Pep! 'Parallel'

내슈빌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만들었다는 'Parallel'도 인상적이다. "I'm always leaving when you come around Looking for me in the lost and found(네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항상 떠날 거야. 나를 분실물 보관소에서 찾도록)"이라는 가사가 '평행선(Parallel)'이라는 제목과 함께 뇌리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내슈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Your Nail And Your Hammer'은 또 어떤가. 한번 들으면 멈추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돈다. 참으로 중독적이다.

Oh Pep! 'Your Nail And Your Hammer'

Oh Pep!의 매력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워줄 너무나도 매력적인 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 보이지 않게 꼬깃꼬깃 접혀있던 Oh Pep!의 매력을 열어보자. 이 보물의 주인공이 당신이 될 수도 있을 테니.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ANSO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