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회 칸 영화제에서 논쟁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제작,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미지 출처 - 링크

영화인가 아닌가. 영화 감독이 만들고 영화 배우가 출연하니 영화인 것인가. 영화관에서 개봉을 하지 않았으니 영화가 아닌 것인가. 넷플릭스가 만든 영화들은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칸 영화제 출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논쟁을 불러왔다. 2017년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에게는 황금종려상을 줄 수 없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도 여기에 가세해 "시네마의 역사와 인터넷의 역사는 별개의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또 어떤가. 온라인 스트리밍 기반의 넷플릭스 영화는 아카데미상이 아닌 TV시리즈를 시상하는 에미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 이미지 출처 - 링크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넷플릭스의 영화들이 하나 둘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영화제에서 하나둘 수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베니스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같은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말이다. 여기 그러한 작품들을 모아봤다. 넷플릭스에서 만들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기에 영화가 아닌가 싶으면서도 영화제에서 수상한 걸 보면 영화라고 인정할 밖에 없는 작품들. 논쟁을 뒤로하고서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로마(Roma)>

영화 <그래비티>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 머나먼 우주를 유영하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영화 <그래비티> 작업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다짐을 한다. 다음 영화는 더 단순하고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멕시코 태생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래서 전원 멕시코인으로 구성된 스텝을 꾸리고, 멕시코인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시작한다. 순조로워 보였다. 문제는 극 장상영이었다. 멕시코 배우를 쓰고 멕시코어를 쓰는 멕시코가 배경인 흑백영화는 극장에서 걸기 힘들었다.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이래도 소용없었다. 산드라 블록이라는 유명 배우와 함께 우주를 유영했던 전작과는 사정이 매우 달랐다. 그리고 이때, 고민에 빠진 감독에게 넷플릭스가 솔깃한 제안을 건넨다. 감독이 몇몇 극장에서 개봉한 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입은 닫고 지갑은 열겠단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넷플릭스와의 협업. 덕분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로 전달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던 첫번째 작품이었다”고까지 표현하며 만족스럽게 영화 <로마>를 완성했다. 그리고 2018년 제 75회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중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첫 영화가 되었다. 바로 같은 해 칸 영화제에서 넷플릭스 영화라는 이유로 초청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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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영화 <로마>는 작아보인다. 광활한 우주에 버려진 것(<그래비티’)도,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임신기능을 상실한 종말의 시대를 맞이한 것(<칠드런 오브 맨>)도 아니니까. 임신했다는 한 마디에 남자친구가 도망쳐버린 가정부 '클레오'와 가족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네 아이와 남겨진 '소피아'의 흔하다면 흔한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하지만 이 작고 사소해보이는 이야기는 1970년대 초 멕시코의 격변기를 관통하면서 힘이 생긴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은 또 어떤가. 외로이 남겨진 여성들의 계급과 인종을 뛰어넘는 그 우애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감독이 왜 이 작품에 대해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자, 꼭 만들어야 만 하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감독과 그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힘을 가진 넷플릭스. 이 둘의 만남 덕분에 멕시코로부터 지구 반바퀴 떨어진 이곳, 한국의 거실에서 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인가 아닌가 논쟁을 떠나서 말이다.

 

<카우보이의 노래(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다섯 편이었다. 유난히 서부극을 좋아하던 코언 형제에게는 19세기 말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다섯 개의 단편이 서랍 속에 있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었다. 25년 동안 생각날때마다 하나씩 써내려 간 단편들이었다. 그러다 10년 전쯤 문득 생각한다. 이 각각의 짧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코언 형제는 자신들이 이야기를 썼던 시간 순서대로 단편들을 나열한 후 거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역할로 마지막 6번째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렇게 만들게 된 영화가 바로 ‘카우보이의 노래’. 코언 형제의 18번째 작품이자 35년의 활동을 하면서 만든 영화 중 가장 러닝타임이 긴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코언 형제는 헐리우드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보여줄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독특한 방식의 이 작품에 투자할 영화사가 없으리라 판단했던 것. 대신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자신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사운드와 영상을 백프로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더 높게 쳐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넷플릭스와의 이 만남 덕분에 서랍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이 시나리오는 제 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까지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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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를 배경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브레이브>와 같은 영화나 카우보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헤일, 시저!>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코언 형제는 유난히 서부극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코언 형제가 <카우보이의 노래>에서는 한풀이라도 하듯이 고전 헐리우드 서부극을 다채롭게 요리해나간다. 마치 서부극만으로 차려놓은 푸짐한 코스요리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코언 형제만의 서늘한 유머까지 이 영화의 풍미를 더해준다. 팀 블레이크 넬슨, 제임스 프랑코, 리암 니슨 과 같은 걸출한 배우들은 또 어떤가. 서부극 매니아라면 코언 형제의 팬이라면 꼭 한번쯤 봐야할 영화다. 다행히도 넷플릭스를 통해 어디에서나 언제나 볼 수 있다.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제목은 <결혼 이야기>인데, 내용은 한 부부가 이혼을 하는 내용. 하긴, 이혼만큼 결혼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줄 소재가 또 어디있겠는가. 로스엔젤레스 출신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뉴욕 출신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10년차 부부. 10년의 세월은 이들을 깔끔하게 갈라설 수 없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8살 아들의 양육권을 갖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지만, 그 이면에 서로를 사랑하며 지낸 결혼 생활 10년의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답게 결혼과 이혼의 과정이 현실적이고 공감가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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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자자하다. 로튼토마토의 비평가 지수는 무려 100%. 부정적인 평가를 한 평론가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뜻. “자신들의 연기 중 최고라 평가할 만큼 훌륭한 두 배우의 연기”라는 <인디와이어>의 호평은 또 어떤가. “노아 바움백 작품 중 최고”라는 헐리우드 리포터의 칭찬도 있다. 게다가 토론토 영화제에서 <기생충>을 제치고 관객상 2등상까지 거머쥐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렇게까지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걸까. 다행인 건 멀리갈 필요도 없다는 것.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이 영화와 만날 수 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영화인가 아닌가. <로마>를, <카우보이의 노래>를, <결혼 이야기>를 보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인가 아닌가가 과연 중요한가. 연인과 데이트하며 극장에서 보든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보든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아닐까.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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