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의 삶은 미드의 좋은 소재이지만 막상 드라마 속 그들의 삶은 기대와 달리 단순히 화려함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현실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비리, 배신, 탐욕으로 얼룩진 그들의 삶을 미드를 통해 유추해볼까 한다.

 

<Billions(빌리언즈)>(2016)

<빌리언즈>는 데미안 루이스, 폴 지아매티가 주연을 맡아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는 명연기를 선보인 수작으로 꼽힌다. 시즌1은 2013년 내부정보를 이용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는 억만장자 스티브 코헨의 법적 공방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스트리트 기자 출신 앤드류 로스 소킨이 각본에 참여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이야기는 내부 정보 유출로 의심되는 수상한 주식 거래 현장을 포착한 미증권거래위원회와 검찰이 억만장자 바비 엑슬로드를 용의선상에 올리며 시작된다. 검사 ‘척’(폴 지아매티)은 이미 수차례 연방정부의 수사망을 따돌린 적 있는 ‘바비’(데미안 루이스)를 주시하며 적절한 때를 노린다. <빌리언즈>는 지난 5월 다섯번째 시즌을 확정했다.

예고편

데미안 루이스가 연기하는 바비 엑슬로드는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업계에서 이른 바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전설적 인물로 통한다. 그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걸 즐기면서도 자선사업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인망이 두터운 인물. 그러나 동시에 20여년 전 아르바이트 했을 때 당했던 수모를 기억하고 이를 되갚는 치밀함도 가지고 있다. 뛰어난 지략, 리더십 그리고 강한 승부욕은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했지만 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이 강해질수록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흐릿해지며 그는 수차례 위기를 맞게 된다.

검사인 척이 바비를 쫓는 형국을 보고 바비를 악당, 척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빌리언즈>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9.11 이후 달라진 월스트리트의 풍경, 치열한 금융업계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제시하는 작품으로서 4시즌에 걸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Succession(석세션)>(2018)

<석세션>은 영국의 국민 코미디 <Peep Show>를 제작한 제시 암스트롱이 각본 및 제작을 맡았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로이 가(家)를 둘러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경영권 승계를 두고 자녀들을 시험하고자 하는 아버지 ‘로건’과 병이 위중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벌가에 익숙한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8월 세 번째 시즌을 확정했다.

예고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다양한 권모술수를 선보이는 캐릭터, 재벌가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은 각본 등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영국 BAFTA에서는 국제 프로그램 부문 작품상을, 지난 9월 열린 에미상에서는 드라마 부문 각본상을 받았다. 극중 브라이언 콕스는 거대 미디어 기업 웨이스타 로이코의 설립자이자 CEO로 80세의 나이에도 불구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며 자식들 사지로 몰아넣는 ‘로건 로이’역을 맡았다. 한편 <석세션> 속 로이 가(家)는 지난 날 언론 재벌 머독 가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제작자 제시 암스트롱은 몇년 전 머독 가에 대한 영화를 구상했었으며 극 중 로건의 아들 ‘로만’과 ‘켄달’의 경영권 싸움은 마치 루퍼트 머독의 두 아들을 연상케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켄달은 유력한 후계자였으나 아버지 로건에 의해 동생들과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끝내 약물에 의존하는 등 나약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제작자가 <석세션>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와 상통한다. <석세션> 속 로이 가(家)는 자기 중심적이고 오만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때때로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케 한다. 이는 재벌가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담고자 한 제작자의 숨은 의도로 해석된다.

 

<Dynasty(다이너스티)>(2017)

<가십걸> 제작진들에 의해 리부트된 1980년대 동명의 인기 TV시리즈 <다이너스티>는 재벌가의 배신과 갈등, 복수와 성공을 중독성있게 그려낸 드라마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폭풍 같은 전개가 특징이다. 캐링턴 아틀란틱의 수장이자 억만장자 ‘블레이크’가 ‘크리스탈’과의 결혼을 발표하고, 자신이 회사의 새 COO 자리에 오를 것을 예상한 블레이크의 딸 ‘팔론’은 갑작스러운 새엄마의 등장에 크게 분노한다. 이에 캐링턴 아틀란틱의 가장 큰 라이벌 ‘제프 콜비’와 손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극 중 블레이크와 팔론의 관계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딸 이방카 트럼프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한다. <다이너스티>는 모든 걸 가졌지만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동시에 재벌가의 허상을 지적하고 있다.

예고편

원작이 가진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성향에 맞게끔 각색을 거친 <다이너스티>는 다만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해 다소 시대와 동떨어진 결과물이라는 평단의 따가운 혹평을 피하진 못했다. 그러나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는 성공해, 더욱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볼거리들로 매 시즌 적지 않은 화제성을 모으며 현재 시즌 3이 방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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