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내 개봉한 <디스트로이어>(2018)는 니콜 키드먼의 파격적인 변신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니콜 키드먼의 변신은 한 작품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니콜 키드먼은 비슷한 배역에 안주하기보다 도전과 변신을 택해왔다. 각종 매체에서 붙여주는 아름답다는 수식어는 니콜 키드먼의 스펙트럼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말이다. 그 어떤 수식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니콜 키드먼의 대표작들을 살펴보자. 

 

<투 다이 포>

'수잔'(니콜 키드먼)은 방송계에서 성공하길 꿈꾸며 작은 방송국에서 기상 캐스터로 일하고 있다. 수잔을 보고 첫눈에 반한 '래리'(맷 딜런)는 열렬한 구애로 그와 단숨에 결혼까지 하지만, 방송인으로서 성공을 꿈꾸는 수잔의 눈에 지미는 그리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수잔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지미'(호아킨 피닉스), '리셀'(케이시 애플렉), '리디아'(알리슨 폴란드)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그들을 이용한다.

니콜 키드먼이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은 시작점에는 <투 다이 포>(1995)가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조이스 메이나드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니콜 키드먼은 <투 다이 포>에서 성공에 집착하는 수잔을 연기하며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투 다이 포> 트레일러 

수잔은 방송인으로서의 성공을 꿈꾸고, 래리는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길 바라고, 지미는 수잔과 가깝게 지내길 원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다고 믿으며 함께 한다. 수잔은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꿈에 방해되는 어떠한 조건도 용납하지 못한다. 유명한 방송인이 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게 소용없어 보이는 수잔에게, 소박한 성공의 가치는 공허하게 들린다. 미디어 속 화려함에 익숙해져서 그 외에 모든 것의 가치를 잊어가는 이들처럼 말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

'빌'(톰 크루즈)과 '앨리스'(니콜 키드먼)는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부부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한 빌과 앨리스는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에도 각자 다른 이들의 구애를 받는다. 다음날 앨리스는 빌에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 과거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자신만 바라본다고 믿었던 앨리스로부터 이러한 고백을 듣고 빌은 충격을 받는다. 앨리스의 고백을 듣고 생각이 복잡해진 빌은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비밀파티장에 간다.

<아이즈 와이드 셧>(1999)는 국내에 '꿈의 노벨레'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촬영이 400일 가까이 진행된 걸로 유명하다. 중간에 조연배우들의 교체가 있을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니콜 키드먼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스탠리 큐브릭의 디렉팅을 온전히 소화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아이즈 와이드 셧> 트레일러 

만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제도는 탄생할 수 없다. <아이즈 와이드 셧>이 다룬 결혼도 마찬가지다. 제도와 욕망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도가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진 빌과 앨리스의 관계는 이전과 같을 수 있을까. 앨리스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부터 관객들까지 <아이즈 와이드 셧>은 영화가 끝난 뒤에 점점 더 부피가 커질 질문을 안겨준다.

 

<물랑 루즈>

1899년 파리,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은 어느 날 천장을 뚫고 떨어진 위층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공연 각본을 쓰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공연을 올리기 위해 환락의 중심에 있는 '물랑 루즈'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물랑 루즈 최고의 스타 '샤틴'(니콜 키드먼)을 만난다. 물랑루즈가 아닌 더 큰 무대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샤틴은 투자자를 유혹하기로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크리스티앙을 투자자로 오해한다. 크리스티앙은 샤틴에게 반하고, 샤틴은 크리스티앙이 각본을 쓴 공연의 주인공으로 연기할 준비를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부터 <위대한 개츠비>(2013)까지 바즈 루어만 감독은 화려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감독이고, <물랑 루즈>(2001) 또한 마찬가지다. <물랑 루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과 의상상을 받을 만큼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슬픔을 감추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샤틴 캐릭터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물랑 루즈> 트레일러 

샤틴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웃음을 파는 댄서를 넘어 진짜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성공과 사랑 앞에서 고민한다. 샤틴의 고민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 봐온 고민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샤틴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이러한 고민이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기 때문이 아닐까.

 

<디 아워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집필에 몰두 중이다. 1951년 미국 LA, 둘째를 임신한 '로라'(줄리안 무어)는 첫째 아들 '리차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파티를 준비 중이다. 2001년 미국 뉴욕, 출판 편집자 '클라리사'(메릴 스트립)는 옛 애인 '리차드'(애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 준비로 바쁘다. 시대는 다르지만 세 사람은 각자의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디 아워스>는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다.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은 본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외적인 모습부터 배역에 몰두하기 위해 신경 썼고, 그 결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니콜 키드먼 외에도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까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셋이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 셋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디 아워스> 트레일러 

<디 아워스>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시대도 다르고 직접적인 교류를 하지 않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델러웨이 부인>을 곁에 두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이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삶 전체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비율은 비슷해 보인다. 2019년을 사는 이들의 고통도 종류가 다를 뿐 여전해 보인다. 전자책 리더기에 <델러웨이 부인>을 넣어두고 읽으면서, <디 아워스>의 인물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