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보다는 사랑스럽고 은은해서 더욱 눈길이 가는 것들. 지금부터 소개할 이래경 감독의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이래경 감독은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독립 CF 프로덕션 도날드시럽에서 연출부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이후 지금까지 선우정아, 옥상달빛, 루싸이트 토끼 같은 인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작업해왔다. 그는 현재 비하인드더씬(Behind the scenes, BTS FILM)이라는 필름 메이커스 크루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 이래경 감독이 연출한 볼빨간 사춘기의 ‘우주를 줄게’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 3천 9백만을 기록했다. 


뮤직비디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래경 대신 종종 ‘itchcock(이치콕)’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감독은 대학 시절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을 너무 좋아해서 모든 아이디를 ‘itchcock’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장 감독에게 영향을 받은 덕분일까. 이래경 감독이 만든 뮤직비디오는 영상미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처럼, 가사와 어울리는 스토리도 갖추고 있다. 백번 설명하기보다 한번 보고 이해하는 게 나을 터. 감독의 뮤직비디오 가운데 인상 깊은 몇 작품을 꼽았다.

 

짙은 '해바라기'(2014.06)

이래경 감독의 뮤직비디오 데뷔작. 방황하는 여고생과 그에게 다가온 다정한 교생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노래 가사 중 '난 어딜 봐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을 키워드로 뽑은 감독은 여기서 텅 빈 운동장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소녀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배우 유이든이 연기한 여고생 캐릭터는 매번 자해하며 살아있다는 걸 깨닫는 친구, 커트 코베인에 푹 빠져 살던 친구, 체육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친구 등 당시 제일 불우했던 주변 친구들의 캐릭터를 합쳐 만들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소품들 역시 이래경 감독이 직접 그리고 만들었다(주인공이 입은 체육복 프린트도!). 이렇듯 곳곳에 감독의 아이디어와 손길이 녹은 5분 30초짜리 뮤직비디오는 공들인 만큼 매끄러운 스토리와 영상미를 보여준다.

 

선우정아 ‘그러려니’(2016.02)

이래경 감독은 2016년,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와 3차례나 뮤직비디오를 함께 작업했다. ‘그러려니’는 그 첫 번째 작품으로 꼴라주 형식의 무비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거나 흩어지는 물질, 다른 하나는 픽셀이 흐린 디지털 데이터다. 카세트테이프, 달팽이, 모기향, 아이스크림 같은 갖가지 소품들이 가사와 맞아 떨어지며 아련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중간에 흐르는 노래방 간주 장면은 감독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치즈 ‘어떻게 생각해’(2016.06)

언뜻 보면 어느 커플의 연애를 다룬 뮤직비디오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애초에 감독이 설정한 주제는 모든 게 다 지겹고 무료한 커플의 ‘권태기’ 시절이라고. 그러기엔 노래도, 배우들도 너무 사랑스럽긴 하다. 파스텔 톤 배경에 치즈 케이크, 시리얼, 미니 오락기 같은 소품들은 아기자기하고 달콤하기 그지없다. 평소 좋아하던 대만, 태국 영화 같은 필름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여고생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1991년생 배우 전소니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준 보석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승환 ‘그저 다 안녕’(2016.10)

이 노래는 이승환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이 담긴 발라드곡으로, 감독은 사랑하고 상처만 남은 채 끝나는 연인의 모습을 애틋하게 담아냈다. 비를 맞으며 처연하게 우는 남자와 빗물에 젖은 운동화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배우 문소리가 연출한 <최고의 감독>(2015)으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 전여빈, 모델 출신 배우 손민호의 케미가 빛나는 작품.

 

이래경 감독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래경 감독 블로그 [바로가기
이래경 감독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