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이 인생에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과거의 불행을 벗 삼아 어두운 미래를 바라본다. 어떤 이유로 보람찬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매번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밝은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고 우리의 시대상이다. 그렇게 우리의 정신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누군가를 탓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과연 지금은 희망 가득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일까?

지난 6월 방영된 BBC 드라마 <Years & Years>(2019, 이하 이어스 앤 이어스)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펼쳐냈다. 마치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2011~)와 같이 미래 기술의 진보를 흥미롭게 그려낸 덕분에 시즌 내내 몰입도는 갈수록 고조되며 심지어 너무 그럴듯해서 소름 끼치기까지 한다. 점차 디스토피아로 되어가는 풍경을 따라, 작품은 영국 맨체스터의 ‘Lyons’ 가족이 점차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때로는 몰락하는 모습을 담았다. ‘가족 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각 캐릭터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시련을 이겨내는 것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프로듀서 러셀 T. 데이비스는 이를 공상과학이라는 틀 안에서 영리하게 풀어냈다.

 

지루한 일상을 붕괴한 포퓰리즘

모두 2004년으로 거슬러 가보자. 그때 우리는 15년 뒤를 어떻게 예상했을까. 그리고 그 상상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닿아있을까? <이어스 앤 이어스>는 한 시간 남짓한 6개 에피소드로 무려 15년을 건너가는 빠른 전개를 보인다. 그사이에 당연히 기술은 진일보하고 지구는 더 큰 환경 오염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와중에도 굳건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주의에서 비롯한 정치의 흐름이다. 극을 가장 크게 뒤흔드는 사건은 이에서 시작된다.

<이어스 앤 이어스> 예고편

극의 주인공, 다소 유복해 보이는 Lyons 일가는 인공지능 스피커 ‘Señor’에 가족 채널을 열어, 누군가 이를 호출하면 다세대 모두가 연결되어 함께 대화하는 소통을 즐긴다. 어느 날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한 기업가 ‘비비안 룩’(엠마 톰슨)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에 대해 "I don’t give a f**k(나는 신경 안 써)"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선보인다. 그리고 ‘집 앞 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돼야 한다’ 혹은 ‘인도에 주차를 해서 노인이 걷기 불편하다’, ‘이민자는 위협이 된다’는 식의 사소한 불만을 이유로 들며 서민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실제 영국에서 브렉시트에 찬성했던 극우파가 ‘유럽연합에 드는 비용을 민간 의료에 투자하자’고 선동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룩의 등장에 대하여 가족 중 금융업에 종사하는 ‘스티븐’(로리 키니어)과 공무원 ‘다니엘’(러셀 토비)으로 종사하는 형제가 우려를 표하는 반면, 이른바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로지’(루스 메딜레이) 등 다른 가족은 환호를 지르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룩은 제3야당을 내세워 독자 노선을 구축하고, 자신이 부패한 사회에서 도덕적인 대안이라도 된 듯 기존 정치인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외부 인터뷰를 차단해 독립된 채널을 설립하고 캠페인 도중에 선정적인 미디어를 사용해 자극을 최대한 활용하기도 한다. 대중 앞에 서서 약자를 대표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기업의 배를 불려 정작 평범한 유권자들의 사소한 권리조차 박탈할 인물이다. 이러한 기업가 출신, 권위주의, 언론 검열, 데마고그(선동가). 모두 낯설지 않은 우리 시대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실제로 이를 대표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아예 극 초반부터 재선에 성공하며 ‘영국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묘사되고 있다. 오늘날 포퓰리즘과 강경파 리더들이 잘못된 정책을 펼쳐 각국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뒤이어 또 다른 선동가가 투표를 거쳐 언제 다시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 당장 극 초반의 한 캐릭터는 직업이 교사임에도 ‘지구는 사실 네모나다’는 명제를 신뢰할 정도로, 우리 중 일부는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있다. <이어스 앤 이어스>는 그렇게 이 시대의 위험과 불안이 바로 ‘우리가 선택한 잘못’이니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전달한다.

 

찬란한 미래 뒤 감춰진 내막

<이어스 앤 이어스>는 우리가 현재 영위하는 기술력을 조금 비틀어 꽤 익숙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페이스 필터는 이제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머리에 심은 심 카드와 웨이퍼를 통해 얼굴 앞에 펼쳐지며 손가락에 직접 스피커와 마이크를 달아 전화가 가능하기도 하다. 집에서 가사도우미 혹은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로봇을 사용하고 무인 자동차가 보편화되는 한편, 숙취가 없는 술이 개발되기도 한다. 불치병을 단숨에 치료할 수 있는 의료 기술이 등장해 평균 수명이 더 연장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이를 초월해, 스티븐의 딸 ‘배서니’(리디아 웨스트)은 트랜스휴먼이 되어 자신의 꿈은 디지털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의 진일보함이 정작 보는 이에게는 그다지 환희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에 따른 부작용이 더 대비되어 묘사되니 허무하기까지 하다. 의술의 발달로 고령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대도시의 인구 밀집도는 더욱 증가해 부동산 가격은 극한으로 치솟는다. 애초에 고도의 의술은 백만장자들의 전유물일 뿐이기도 하다. 회계사, 계산원, 심판 같은 일부 인간의 직업은 기계에 완전히 잠식되어 일자리가 하나둘 사라지게 된다. 대기업과 경제 대국은 무분별한 개발과 확장을 지속하고, 이에 따른 환경 파괴로 홍수, 태풍과 같은 기후 변화가 더욱 급격해지거나 흔한 농작물이 멸종되기까지 한다. 또한 자원이 고갈되면서 발전소 운영이 어려워지고 가정에서는 정전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우리가 편리해지고자 영위하는 것의 내막에는 사실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더 많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배척하는 삶에 대한 경고

드라마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기류는 우크라니아인 ‘빅터’(맥스 밸더리)가 Lyons 가족 일원이 되는 과정이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일하는 다니엘은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피난을 온 빅터와 첫눈에 반하고, 그가 정착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더 강해진 정부의 탄압과 몇 사건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하는데도 다니엘은 사랑을 넘어 일종의 소명감을 가지고 그를 지킨다.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난민선을 비롯한 국경 통과의 위험성과 유럽 각국 정부의 난민 정책이 꽤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가족 중 가장 늦게 등장하는 ‘이디스’(제시카 하인즈)는 환경 보호부터 정부의 음모까지 파헤치는 운동가로서 작중 가장 심지가 굳은 캐릭터다. 자신의 인생을 바치면서까지 약자를 위하는,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다. 그렇게 <이어스 앤 이어스>는 단순히 디스토피아로 시작되어 악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를 거듭할수록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유하게 보이는 Lyons 일가에도 사실 동성애자, 장애인, 싱글맘, 유색인종, 난민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들의 두려움과 희망이 끝없이 교차하는 역동적이고 빠른 전개에서도 다양성을 포용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이 자주 노출된다. 어두운 미래에도 행복과 희망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범위를 점차 넓히는 것으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제 추방당하는 빅터와 이를 바라보는 다니엘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오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오른 영국인들에게 이 드라마는 오히려 모욕적일 수 있다. 분명히 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낸 자국민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선택이 십여 년 뒤에 재앙처럼 다가와 매일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하는 수준이 되었음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궁극적으로 <이어스 앤 이어스>가 나오게 된 계기이고, 놀랍게도 드라마는 BBC 방영 직후 HBO를 통해 미국 전역에 송출되었다.

프로듀서인 러셀 T. 데이비스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약 25년 동안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요소들을 대담하게 연출했고, 결과적으로 드라마에는 부유층과 어릿광대 같은 놀음을 하는 정치인, 일부 현실에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풍자성이 강하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풍자하는 대상이 당신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우리 모두 그 경고를 듣고, 과거의 불안을 최소화해 밝은 미래를 보려면, 현재에 충실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은 이런 불안함도 위기도 없는 예전의 지루한 일상이 그립기도 하다.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