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여기저기 출몰하다 보니 그들을 분석한 책들이 빠르게 팔려나간다. 그러나 한 세대를 한 권의 책으로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삶은 얄팍하지 않다. 팝 음악 신에는 이제 막 98년생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요즘 세대의 지독한 자아에 대한 고민과 우울한 감정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한두 곡만으로는 알 수 없을 클레어오(Clairo),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 렉스 오렌지 카운티(Rex Orange County)의 음악을 통해 요즘 세대의 감성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이미지 출처 - 각 뮤지션 공식 계정 및 'NME' 링크의 이미지 편집

 

아픔을 딛고 일어난 성장 일기를 공유하는 클레어오(Clario)

매사추세츠 출신 클레어오는 16살부터 인터넷에 자신을 기록해왔다.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유튜브 등 인터넷 채널 곳곳엔 클레어오의 타임캡슐이 묻혀있다. 2017년, 클레어오가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오른 건 2년 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Pretty Girl' 영상 덕분이었다.

Clairo 'Pretty Girl'

기숙사에서 자다 일어나 웹캠으로 찍은 클레어오의 모습은 인디 팬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의 등장이었다. 당시 클레어오의 음악은 살짝 싱겁고 서투르게도 느껴졌지만, 귀여운 외모에 우울감이 감도는 목소리로 노래하며 아웃사이더의 분위기를 풍기는 클레어오는 인디 프린세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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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오는 데뷔 전부터 인기라는 양날의 검을 쥐게 됐다. 코첼라 같은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으나 그녀의 라이브는 너무 차분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미국 내 마케팅 거물 인사인 클레어오 아버지의 입김으로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에 팬들 사이에선 그녀의 D.I.Y(Do It Yourself) 정신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 발매된 클레어오의 데뷔 앨범 <Immunity>는 이 모든 논란을 잠재운다. 클레어오는 이번 앨범 작업을 통해 한 단계 성장을 이뤘고, 그 결과물은 '누구든 좋아할 만한 음악'이었다.

Clairo 'Sofia'

<Immunity>에서 클레어오는 조력자의 도움으로 부족함을 보완한다. 밴드 Vampire Weekend의 전 멤버 Rostam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밴드 Haim의 Danielle Haim이 드럼 연주를 맡아 그의 음악을 업그레이드했다. 흡입력 있는 트랙 'Bags', 'Softly', 'Sofia'를 앨범 곳곳에 배치해 베드룸 팝의 단조로움을 탈피하기도 했다. <Immunity>는 클레어오가 여성에게 감정을 느낀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클레어오는 어떤 순간에 느낀 감정과 그 장면을 섬세하게 음악의 형태로 박제하는데 탁월함을 보인다. 자신이 아직 성 지향성을 찾아가는 중이고, 음악 역시 배우는 과정에 있음을 나타낸 회심작 <Immunity>로 인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음악 팬들이 클레어오의 성장 스토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Clairo 'Bags' 라이브 영상

 

자신과 같은 성 소수자들의 자랑이 되고 싶은 킹 프린세스 (King Prin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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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부터 확실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그는 “독특하기도, 이상하기도 하고, 젠더의 복잡한 특징을 잘 아우르기 때문에” 킹 프린세스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킹 프린세스는 거침없고 반항적이면서도 처절한 슬픔을 노래할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강하고 뚜렷한 캐릭터는 앞서 에이미 와인하우스,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 같은 대스타 선배 뮤지션들을 떠오르게 한다.

King Princess '1950'

킹 프린세스는 커밍아웃이랄 것도 없이 처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음악에 녹였다. 그는 이전 세대의 뮤지션과는 달리 성 지향성을 숨기기를 거부한다. 나아가 자신의 퀴어 성향을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로 활용하여 오히려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King Princess 'Talia'

킹 프린세스의 음악은 사실 그의 강렬한 캐릭터에 비해 힘을 뺀 느낌이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프트 록, 신스 팝, 일렉트로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레코드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기타, 베이스, 피아노와 프로덕션 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싱어송라이터 킹 프린세스에게서는 히트 싱글을 손쉽게 뽑아내는 타고난 감각을 갖춘 팝스타의 향기가 풍긴다.

이미지 출처 - 'Genius'

2019년 발매한 데뷔앨범 <Cheap Queen> 역시 'Ain't Together', 'Prophet', 'Hit The Back' 같은 잘 만든 히트곡들로 가득하다. 프로듀서 마크 론슨의 레이블 Zelig 레코드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킹 프린세스. 성 소수자만의 희망이 아닌 앞으로 팝 음악계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King Princess 'Prophet'
King Princess 'Cheap Queen'

 

요즘 세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렉스 오렌지 카운티(Rex Orange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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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은 마을 출신 렉스 오렌지 카운티 역시 Z세대답게 사운드클라우드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런던의 음악학교 BRIT 스쿨 재학시절, 직접 작사, 작곡, 피아노, 드럼, 기타 연주와 프로듀싱까지한 믹스테이프 <bcos u will never b free>를 올리면서였다. 1980~90년대의 팝을 연상시키는 코드 반주 위주의 피아노 사운드 위에 무신경한 목소리로 부르는 솔직한 가사의 조합은 꽤 신선했다.

믹스테이프가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할 무렵,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귀에도 렉스 오렌지 카운티의 음악이 들어갔다. 즉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제안으로 LA에 건너간 렉스 오렌지 카운티는 그의 정규 4집 <Flower Boy>에 두 곡이나 피처링을 하며 평단과 음악 팬들의 관심을 얻는다.

Tyler, The Creator 'Boredom'

19살에 발매한 데뷔 앨범 <Apricot Princess> 속 렉스 오렌지 카운티는 사랑 앞에서 찌질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보지 말아야 할 일기장을 읽어버린 듯 자신의 감정에 거짓없이 솔직한 그의 가사는 10대들의 감성과 감정을 대변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 'Genius'

이후 2년이 지나 21살이 된 렉스 오렌지 카운티가 세 번째 앨범 <Pony>를 발매했다. 스티비 원더, 퀸시 존스의 영향을 받은 피아노 발라드 곡들도 여전히 눈에 띄지만, 관현악기와 전자악기 등을 가사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앨범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변하는 것과 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의 충돌로 괴로웠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때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

Rex Orange County 'Pluto Projector'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