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생으로 올해 85세에 이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영화음악 작곡가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1960년대 인기가수 앤디 윌리엄스의 뮤직 디렉터로 채용되면서 시작한 그의 음악 인생은 이제 60년째에 접어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재즈 피아니스트로, 영화와 드라마 음악 작곡가로, 그리고 재즈 음반사 GRP의 공동 경영자와 프로듀서로 빡빡한 일정을 아직까지 소화 중이다. 올해 소개된 그의 전기 다큐멘터리 제목은 <Dave Grusin: Not Enough Time>으로, 로드아일랜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그의 바쁜 인생 행로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Dave Grusin: Not Enough Time> 예고편

그는 고향 콜로라도에서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로 진출하여 앤디 윌리엄스와 7년을 일한 후, 196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루신이 지금까지 음악 감독으로 쌓은 필모그래피에는 약 80여 편의 영화와 20여 편의 TV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에게 낯이 익은 유명 영화만 봐도 <졸업>(The Graduate, 1967), <투씨>(Tootsie, 1982), <구니스>(The Goonies, 1985), <테킬라 선라이즈>(Tequila Sunrise,1988),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 1989), <더 펌>(The Firm, 1993) 등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8회 올라 <The Milagro Beanfield War>(1988)에서 오스카를 안았다. 이듬해에는 <사랑의 행로> 사운드트랙으로 그래미상을 안기도 했다.

데이브 그루신 영화음악 중 가장 유명한 ‘It Might Be You’. 영화 <투씨>(1982)에 수록되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1970년대 중반부터 파트너 래리 로즌(Larry Rosen)과 함께 퓨전 재즈 유망주를 발굴하여 대형 음반사 아리스타(Arista)에 공급하는 프로덕션 사업을 시작했고, 패티 오스틴, 리 릿나워, 얼 클루 등 유망주를 발굴하면서 독자적인 사업화에 나서 1978년에 GRP(Grusin Rosen Production)을 설립하였다. GRP는 그래미를 33회 수상하며 빌보드 컨템포러리 재즈 장르에서 5회 연속 최고 레이블로 등극했다. 이들은 1990년에 GRP를 유니버설 뮤직 그룹에 매각하였고, 두 사람은 N-Coded Music사를 설립하여 뮤직 비즈니스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미를 수상한 데이브 그루신과 리 릿나워의 콜라보 앨범 <Harlequin>(1985)

데이브 그루신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재즈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는 자신의 10대 후반 데뷔 시절을 회상하며 그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데이브 그루신과 퀸시 존스와 함께 무슨 영화음악 세션 녹음을 할 때였어요. 이 사람들은 동시에 14가지 일을 하더라구요. 잠을 자지도 않아요." 소문난 일벌레인 그에 관해 주위 사람들은 뉴욕 출신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는 의외로 콜로라도 출신이며 자연을 좋아한다. 노년기에 접어 들어서는 도시 생활을 접고 몬타나주에 한적한 목장에서 지내며, 취미로는 플라이 피싱을 즐긴다.

데이브 그루신이 작곡한 곡 중 가장 자연친화적인 인상을 준다는 사운드트랙 'On Golden Pond'(1981) 

그는 85세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순회 공연을 다닌다. 과거 남미 음악에 열광하던 시절, 세르지오 멘데스의 집에서 처음 만난 오랜 동료 리 릿나워(Lee Ritenour)와 함께. 리 릿나워는 자신이 10대 시절 처음 그를 만나게 되어 친구가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두 사람은 2년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함께 방한하기도 했다. 이들은 함께 아시아권을 순회하면서 11월 12일에 서울에서 다시 한 차례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