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0세 생일을 맞아, 존 존은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문화적 장소에서 이색적인 콘서트를 열었다

그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위키피디아만 봐도 그는 작곡가, 어레인저, 프로듀서, 색소폰 연주자,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로 규정되며, 그 외에도 음악 레이블과 공연장을 운영한다. 그가 하는 음악의 장르는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재즈, 록, 하드코어, 클래식, 서프, 메탈, 사운드트랙, 앰비언트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약 4백여 장의 음반이 빼곡히 쌓여 있다. 1980년대부터 음반을 내기 시작했으므로, 대략 한 해에 10여 장의 음반을 낸 것이다. 한 마디로 규정하기가 불가능한 다양성 음악의 아이콘, 존 존(John Zorn)에 대해 알아보았다.

Jazz in Marciac(JIM) 2019에 출연한 존 존(색소폰 연주자)

대학 시절 앤소니 브랙스톤의 프리재즈 음반 <For Alto>(1969)를 듣고 깊은 영감을 받은 그는, 대학 중퇴 후 영화감독 잭 스미스과 연극 연출가 리처드 포맨을 도와 일을 하면서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작곡 능력을 살려 스포츠 게임 음악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엔리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을 재해석한 <The Big Gundown>(1985)와 <Spillane>(1987)이 평단의 호평을 얻으며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컬트를 넘어서 인기 아방가르드 재즈 뮤지션으로 발돋움했다. 그의 음반에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앨버트 콜린스, 프리재즈 장르의 크로노스 쿼텟 등 다양한 분야의 연주자들이 힘을 보탰다.

영화 음악과 유대인 음악은 그의 주요 관심분야 중 하나다. 그는 뉴욕의 인디영화 감독들과 함께 일하며 25장의 <Filmworks> 시리즈를 냈고, 유대인으로 구성된 밴드 Masada와 함께 자신의 선대 음악과 종교를 찾아 5백여 곡을 만들었다. 또한, 하드코어 록에 심취하여 Naked City(1988), Painkiller(1991), Moonchild(2006)와 같은 밴드를 만들었고, 오케스트라나 챔버 구성을 위한 클래식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관심 분야가 바뀔 때마다 그 분야의 뮤지션들을 만나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출반하다 보니, 어느덧 그가 출반한 음반은 줄잡아 400여 장이 넘어섰다.

앨범 <The Gift>(2001)에 수록한 ‘Makaahaa’. 로맨틱한 서프 음악을 선보여 기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메이저 레이블에 매였을 때 음악적인 간섭을 받게 되자, 1995년에 Tzadik Records를 설립하여 아방가르드와 실험 음악을 보급하였고 그 자신은 음악 디렉터로 일하며 뮤지션들을 발굴했다. 다음에는 연주할 장소도 여의치 않았다. 자신의 아파트나 길거리에서 청중을 모아 연주하다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자 뉴욕의 아방가르드 문화의 산실인 <Knitting Factory>, <Tonic> 같은 곳을 섭외하여 연주하였다. 2005년에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에 <The Stone>을 열어 업소 측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니치의 아방가르드 공연장 <The Stone> (* 2018년에 일시 문을 닫았으나, 현재 새로운 장소를 물색 중이다)

그는 쉬지 않는다. 지난해 박스 셋트 <The Book Beriah>에 11장의 CD에 92곡의 종교 음악을 담아 발표한 이래, 올해만 해도 벌써 여섯 장의 음반을 발표하였다. 언제 또다시 새로운 음반을 발표할 지 모르지만, 혹시 버려진 깡통을 들고나와 전혀 새로운 장르의 프로젝트에 심취할지 종잡을 수 없다. 그는 1977년부터 40여 년째 살고 있는 이스트 빌리지의 아파트에서 혼자 일한다. 그곳에 파묻혀 쉴 새 없이 음악을 듣고 악보를 쓰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수많은 음반과 음악 장비들로 가득 찬 자신의 아파트를, 존 존은 한 인터뷰에서 “창의력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라 부른 적이 있다.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인터뷰 중인 존 존

남들은 한 해 한 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어렵지만, 그는 열 장에 가까운 음반을 내며 뉴욕 아방가르드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레이블에서 신인 아방가르드 뮤지션을 발굴하여 프로듀싱을 하고 공연장을 운영하며, 오늘도 쉴 틈 없는 바쁜 일정을 보낸다. 한 음악 잡지는 그를 취재하며 <일하는 사람>(Working Man)이란 부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