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글이나 한 컷의 사진보다 영상이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기록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적절한 시점에 완벽한 구도로 담아낸, 잘 찍은 사진 한 컷은 여전히 그 어떤 영상이나 파노라마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류는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세상을 바꾼 사진 목록에는 과학 사진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지나온 세기의 수많은 정치사회적 이슈와 변화의 물결 위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더욱 불을 지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를 희생한 이들의 사진이 지닌 힘도 무시할 수 없다. 20세기 근래 가장 대표적인 혁명의 순간을 담은 몇몇 사진을 모아 봤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1957년, 워싱턴 D.C. © Bob Henriques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 내 흑인의 인권 운동에 앞장 선 가장 대표적인 해방 운동가로 손꼽힌다. 1955년 발생한 '몽고메리 버스 사건', 이른바 몽고메리에서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시 경찰서에 체포, 연행당했던 사건으로부터 발발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지도하며 본격적인 흑인 해방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투옥과 석방을 거쳐 여러 인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힘썼다.

광주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고 있다. 1960년, 광주 © 4·19혁명광주고교공로자회

1960년 발발한 4·19 혁명은 당시 제 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와 같은 독재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하여 전국의 대규모 시민에게 확대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이다. 최초 시위는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이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의 총궐기 선언이 있었고, 4월 19일 오전 9시 30분에는 위 사진의 광주고 학생들이 뛰쳐나오며 4·19 혁명의 서막을 알렸다.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 © Ian Barry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48년 국민당 집권 이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라고 하여 오랜 세월 인종 차별을 정당화 했다. 이에 넬슨 만델라를 비롯해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정책에 저항했지만, 이는 1990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에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체포되는 한 시위자, 1963년,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 © Bruce Davidson
'워싱턴 행진', 1963년 워싱턴 D.C., © Leonard Freed
경찰에 대항하는 프랑스 학생들, 1968년, 프랑스 파리 © Bruno Barbey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5명의 청년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지사를 습격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번져나간 68운동은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혁명 중 하나다. 이 혁명은 냉전과 베트남전 등의 시대적 문제와 결부되어 고루한 전통 가치들의 모순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당대 청년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다.

100만 명이 군집한 노동자 및 학생 시위에서 한 남성이 신호등 위에 올라가 있다, 1968년, 프랑스 파리 © Bruno Barbeytest
블랙 팬서 당원들의 항의, 1969년, 시카고 © Hiroji Kubota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 있어서, 비폭력 노선을 유지했던 킹 목사와 달리 블랙 팬서(흑표범) 당은 폭력을 불사하는 매우 급진적인 행동을 보였다. 그들은 강경 투쟁 노선을 진두지휘하던 말콤 엑스가 살해된 이듬해 1966년 창립됐으며,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을 위한 10대 강령을 내걸었다. 완전고용, 주거, 교육, 의료 보장 등과 함께 미국이 벌이고 있는 모든 전쟁의 종식도 요구했다.

진압군에게 체포되는 시민들, 1980년, 광주 © 광주 5.18 기념재단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앞선 4·19 혁명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혁명이다.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했다. 당시 광주 시민의 정당한 시위에도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

톈안먼 광장에 올라서서 혁명의 승리를 염원하는 한 남성, 1989년, 중국 베이징 © Stuart Franklin
탱크의 진군을 막아서는 일명 '탱크맨(The Tank Man)'으로 알려진 한 남성, 1989년, 중국 베이징 © Stuart Franklin

톈안먼 사건, 국내에는 흔히 천안문 사태로 알려진 6·4 사건은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의 사망 이후 톈안먼 광장 등지에서 시위대와 인민이 벌인 반정부 시위를 공산당 정부가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이 사건을 춘하계 정치풍파라 지칭하고 아직까지도 일방적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혁명은 이어진다. 100년 전 러시아에서, 반 세기 전 프랑스에서 작동했던 혁명의 불꽃은 2010년대 들어 한국의 촛불 투쟁으로 이어졌고, 20세기 흑인들의 인권 투쟁은 인류 역사 내내 끊이지 않는 여성들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당한 투쟁에도 무수히 많은 피를 불렀던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2014년에 이어 2019년에도 홍콩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워싱턴 여성 행진, 2004년, 워싱턴 D.C., 이미지 출처 - 'Makers'
한국의 촛불혁명, 2016년, 서울 © 안영준
영국 여성 행진, 2019년, 런던, 이미지 출처 - 'Stylist'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홍콩 © Billy H.C. Kw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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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실패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 나를 어리석게 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의 총체가 곧 나임을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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