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공포는 대체로 느끼기 꺼려 하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멋지고 훌륭한 작품으로 승화될 때 사람들은 이를 통해 평소와 다른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오늘날 공포 영화의 트렌드가 변하듯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술 작품 속 공포의 대상도 바뀌어 왔다. 강렬한 이미지의 세 작품을 통해 변화상을 살펴보자.

 

한스 멤링 ‘지옥’

‘지옥’(1485년경), 출처 – ‘Hansmemling

한스 멤링(Hans Memling)은 15세기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플랑드르 화파의 한 사람이다. 멤링이 활동했던 시기는 종교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림도 종교화가 큰 인기를 끌었고, 공포의 대상 역시 종교의 대상이었는데, 그의 그림은 유독 독특한 상상력과 화려한 화풍이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끌었다. 멤링의 작품 ‘지옥(Hell)’ 속 악마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과 다르다.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모습, 개의 얼굴, 용의 날개와 새의 다리, 심지어 배에 얼굴 형상까지 갖춘 흉측한 존재는 인간들을 거대한 물고기 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옥 불 위에 가둔 채 그 위에서 괴상한 몸짓을 춤을 추고 있다.

‘최후의 심판’(1460년), 출처 – ‘Hansmemling

독일 젤리겐슈타트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이주했고, 플랑드르의 번영한 상업 도시였던 브뤼헤에 정착했다. 멤링의 작품은 당시 얀 반 에이크로 대표되는 플랑드르 화파의 혁신적인 기법을 따랐고, 특히 빛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초상화와 종교화로 부유한 중산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최후의 심판’ 속 심판하는 예수는 성경 속 열두 사도와 마리아, 그리고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세례 요한에 둘러싸여 있으며, 성별과 인종을 가리지 않은 채 오른편의 인물들은 천국으로 올라가고, 왼편의 인물들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벼룩 유령’

‘벼룩 유령’(1819~1820년)

18세기 낭만주의 시기에 이르러 예술가의 상상력은 신화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이 뒤섞이게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대표작 ‘벼룩 유령(The Ghost of Flea)’은 마치 그리스 신화나 판타지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모습의 괴물이 밤의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다. 파충류 같은 외모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 초점 없는 눈과 내밀고 있는 혀,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그릇과 무언가를 찌를 듯이 날카로운 손가락이 인상적인 이 존재는 다름 아닌 곤충 벼룩을 의인화한 것이다. 당시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벼룩으로 가득했던 사회상과 이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피에 굶주린 벼룩의 모습을 이질적인 괴물의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블레이크의 상상력이 한 장면에 집약된 작품이다.

단테 <신곡> 삽화 중 ‘연인들의 회오리’(1824~1827년)


윌리엄 블레이크는 오늘날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것에 비해 당대와 미술사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였다. 유난히 이질적인 상상력과 의미를 알기 힘든 상징을 자주 사용하는 신비주의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평론가 로버트 헌트는 그의 작품을 두고 "한 정신질환적인 두뇌의 폭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는 반대로 블레이크의 작품이 남다른 표현력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앤디 워홀 <전기의자>

‘큰 전기의자’(1967~1968년), 출처 – ‘Andy Warhol’s Life

현대에 오면 공포의 대상은 더욱더 구체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바로 ‘죽음’ 같은. 영원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가볍고 유쾌한 대중문화 이면에,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꼬집는 작품들도 다수 제작했다. 그는 특히 죽음과 관련한 이슈에도 큰 관심이 있었는데 이를 작품으로 만든 것으로, 1960년대 미국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나던 시점에 제작한 <전기의자(Electric Chair)>(1963~)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10년 넘게 수십 작품 가까이 제작된 이 그림들은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돼 원본 이미지가 흐릿하게 뒤바뀐 덕에, 사진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의 침묵이 더욱 소름 끼치게 다가온다.

‘그린 카 크래시’(1963년) , 출처 – ‘Andy Warhol’s Life

‘그린 카 그래시(Green Car Crash)’에서는 실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 끔찍한 현장을 사진에 적나라하게 담고, 이를 녹색 모노톤으로 촬영해 무섭고도 색다른 감각을 전해주고 있다. 죽음과 재앙을 다룬 워홀의 이와 같은 작품은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고, 그는 사망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의 남다른 관찰력과 단순하고도 강렬한 표현 기법은, 요즘 현대 작품들과 견주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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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실패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 나를 어리석게 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의 총체가 곧 나임을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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