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에서의 조 헨더슨 데뷔 음반 <Page One>(1963)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은 재즈 명문 블루노트 레코드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당시 비밥(Bebop)을 대체하는 새로운 물결 하드 밥(Hard Bop)을 연주하던 신진 재즈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블루노트에서 새롭게 재즈 스타로 떠오른 색소포니스트 조 헨더슨(Joe Henderson)과 트럼페터 케니 도햄(Kenny Dorham)은 콤보를 이뤄 함께 연주하며 블루노트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조 헨더슨의 데뷔 음반 <Page One>(1963)과 케니 도햄의 <Una Mas>(1963)는 두 사람이 함께 기획, 작곡, 연주한 음반으로, 하드 밥 계열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Page One>에 수록한 ‘Recorda Me’. 조 헨더슨 오리지널로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하이오 출신인 조 헨더슨은 어린 시절부터 색소폰 연주와 작곡 분야에서 신동으로 소문나, 여러 곳으로 불려 다니며 명성을 떨쳤다. 군대에서도 밴드에서 순회 연주를 다녔고, 제대 후에는 바로 블루노트와 계약하면서 5년 동안 30여 장 앨범의 녹음에 참여했다. 이 중 자신의 이름으로 낸 음반은 다섯 장으로, 블루노트의 전속 색소포니스트처럼 활동한 것이다. 1960년대 블루노트의 대표적 하드 밥 명반인 리 모건의 <The Sidewinder>(1964),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1965), 허비 행콕의 <The Prisoner>(1969), 앤드류 힐의 <Point of Departure>(1965)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솔로 연주 ‘Lush Life’(1992)

블루노트에 이어 마일스톤, 그리고 5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블루노트로 돌아와 40여 년 동안 재즈 색소폰 레전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는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50대 후반에 접어든 1990년대에 들어서, 4회의 그래미 상복이 연이어 찾아왔다. 재즈 레이블 버브(Verve)와의 계약에 따라 다섯 장의 음반을 냈고 이 중 세 장에서 4회의 그래미를 수상한 것이다. 계약 당시 프로듀서 Richard Seidel이 그에게 과거의 레퍼토리를 벗어나 헌정 형식의 앨범을 내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따라 <Lush Life: The Music of Billy Strayhorn>(1992)을 냈다. 이 앨범은 9만 장이나 팔리며 그해 그래미 Improvised Jazz Solo 상을 받았고, 빌보드 재즈 차트에서 2개월 동안 수위에 올랐다.

그래미상을 수상한 연주곡 ‘Miles Ahead’(1992)

이듬해에는 마일스 데이비스 헌정 음반 형식의 <So Near, So Far: Musings of Miles>(1993) 역시 같은 부문의 상과 재즈 음반상을 수상하여 그래미 2관왕이 되었다. 환갑을 넘긴 1998년에는 4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빅밴드를 편성하여 버브의 네 번째 앨범 <Big Band>를 출반하여 그래미 Large Jazz Ensemble 부문 상을 받았다. 네 번째 앨범 <Double Rainbow>(1995)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의 콜라보 음반으로 기획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헌정 음반으로 발매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생애 마지막 앨범 <Porgy & Bess>(1997)을 끝으로, 폐기종으로 오랜 투병 생활에 들어간 그는 2001년 심장 발작으로 64년의 생을 마감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Once I Loved’를 연주하는 조 헨더슨

블루노트를 대표하는 테너 색소포니스트로 명성을 쌓은 그는, 150여장의 재즈 레코딩에 참가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출반한 음반은 약 30여장으로, 세션 뮤지션이라는 이미지로 저평가된 뮤지션이었다. 더군다나 마일스톤 레이블과 10여년 활동하며 거의 잊혀져 가는 레전드였다. 하지만 1991년 버브와 계약하며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신선한 기획으로 5년 내에 4회의 그래미를 수상하며 말년의 영광을 되찾았다. 아티스트의 실력과 함께 소속 레이블의 기획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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