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의 재즈 기타 레전드 지미 레이니

1979년 뉴욕에서 녹음된 재즈 앨범 <Duets>(1980)는 기타 듀엣의 기념비적인 음반으로 칭송된다. 두 사람의 재즈 기타리스트는 서로 번갈아 가며 리더와 팔로워로 나서서 아름다운 기타 화음을 구성한다. 뛰어난 연주 실력 외에 이 음반이 명성을 얻은 또 하나의 배경은, 두 사람이 부자 관계이기 때문이다. 재즈 평론가 스콧 야노우는 “더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사실은 분명하나 탈 팔로우와 짐 홀에게도 밀접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기타 소리를 구분해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평했다.

Jimmy & Doug Raney <Duets>(1980)

아버지 지미 레이니(Jimmy Raney)는, 1950년대 스탄 게츠, 버디 드프랑코, 알 헤이그 등과 함께 연주한 재즈 기타의 전설이었다. 그는 스탄 게츠의 콤보에서 활동하며 스탄 게츠가 색소폰에서 이룩한 명성을 기타리스트로 그대로 이어받아, 쿨 재즈 계열의 대표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았다. 경쾌하고 스윙감 넘치는 그의 자작곡 ‘Signal’이나 ‘Motion’은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곡이다. 그는 유전적으로 청력을 잃게 되는 메니에르병을 오래 앓았으나 연주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무대 위에서 다른 멤버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베이스 연주자 옆에 최대한 붙어 앉아 진동으로 박자감을 유지하였다고 전해진다.

Stan Gets Quartet 당시 지미 레이니의 오리지널 ‘Signal’(1951)

지미 레이니는 마약 과용 등 누적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한 동안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돌아가 잠적했다. 그가 뉴욕으로 돌아온 것은 1967년, 이때는 혼자가 아니라 아들 더그와 함께였다. 그는 14세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록과 블루스에 심취했지만, 이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재즈로 전향했다. 아버지의 옛 동료 알 헤이그의 콤보에서 연주 생활을 시작했고, 아버지의 콤보와 함께 유럽으로 공연을 떠났다.

그 당시 매일 밤 기타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집에 가서 연습이나 더 해라, 애야.”라고 할 것 같았어요. 유럽 투어를 할 무렵, 음악이 성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더그 레이니)

아버지는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들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자신의 음악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은 “기타 레전드의 아들”이라는 부담을 떨쳐 내기 위함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이 자신의 음악에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기타 워크숍에 참석한 말년의 Jimmy Raney(1993). 그로부터 2년 후 생을 마감했다

더그는 스물 하나의 나이에 코펜하겐의 재즈 레이블 스티플 체이스(Steeple Chase)에서 자신의 첫 앨범 <Introducing Doug Raney>(1977)를 내며, 평론가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정상의 기타리스트 반열에 오른 그는, 2년 후에 유럽에 머물던 인기 트럼펫 주자 쳇 베이커의 콤보에서 네 장의 음반을 낼 정도로 급성장했다. 아버지와 함께 쿼텟을 구성해 첫 음반 <Stolen Moments>(1979)을 냈고 곧바로 아버지와의 듀엣 음반을 내면서 평론가들로부터 아버지에 필적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듀엣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은 <Duets>(1979)와 <Nardis>(1983)이다.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2013)에서 말년의 더그 레이니

아버지와 아들 모두 약물 문제를 안고 있어서 꾸준한 음악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아버지 지미는 말년에 후진 양성에 힘쓰며 뉴욕의 재즈 클럽 브래들리(Bradley’s)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했고, 아들 더그는 음주, 흡연, 약물로 인해 말년에는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코펜하겐의 재즈 클럽 몽마르뜨에 가끔 출연했다. 두 사람 모두 심장마비로 갑자기 생을 마감한 점도 같았다. 지미는 고향 루이스빌로 돌아와 68세의 나이에, 아들은 60세의 나이에 코펜하겐 자택에서 의자에 앉아 잠들었다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였다.

코펜하겐에서 열린 더그 레이니 장례식 및 메모리얼 콘서트(201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