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루이 암스트롱, 영화배우 폴 뉴먼, 듀크 엘링컨

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반적으로 흑인 노예들이 주인이 건네준 유럽 악기를 독학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면서, 여기에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이 더해져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예해방 이후에는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 전문적인 직업 연주자가 되어 독창적인 스타일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이로써 재즈는 하나의 장르 음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예 시대에는 소요 사태를 우려한 농장주들이 드럼 같은 타악기를 금지했고, 흑인들은 노예해방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떠돌이 연주자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로 이주하여 스윙밴드에서 일하면서 백인 고용주의 갑질과 관객들의 야유에 맞섰다.

하지만 한겨울에 피는 꽃 향기가 더욱 진하듯 이때 다수의 재즈 스타가 탄생했으니. 그들의 면면을 알아보고 이들에게 인종차별은 어떤 문제였으며 각각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알아보자.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1901~1971)

연신 땀을 닦아가며 노래를 하고 트럼펫을 연주하던 루이 암스트롱은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는 최초의 재즈 스타로서 인종을 초월, 백인사회에서도 명사 대접을 받았다. 흑인 출입을 금지한 고급호텔, 일류 레스토랑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지만, 흑인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을까 봐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다. 일부 동료들은 그가 흑인 인권운동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난했지만, 암스트롱은 아이젠하워 정부의 흑인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FBI의 감시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특유의 걸쭉한 목소리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Hello Dolly’를 부르는 영상을 보자.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1926~1991)

초기의 재즈 스타 대부분이 불우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는 예외였다. 그는 치과 의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뉴욕의 명문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입학했지만 뉴욕의 비밥 연주자들과 어울리면서 클래식을 포기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데이비스는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로서 공공연히 인종차별을 비난하였고, 불우한 재즈 연주자를 후원하며 흑백 연주자들을 가리지 않고 고용했다. 그는 백인 청중의 비아냥을 참지 못하고 도중에 무대를 박차고 나간 최초의 흑인 재즈 음악가로 알려진다. '쿨 재즈(Cool Jazz, 이전의 스윙이나 밥 재즈의 빠른 리듬감이 아닌 비교적 느리고 차분한 음악)'라는 새로운 재즈의 시발점이 된 명곡 ‘So What’을 들어보자. 당시 존재감이 높지 않았던 존 콜트레인이 색소폰을 불고 있다.

 

찰스 밍거스 (Charles Mingus, 1920~1979)

'재즈계의 보스'로 불린 밍거스는 불같은 성격과 거친 언행을 가진, 가장 화끈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였다. 그는 '재즈 아티스트 길드'를 창설하여 뉴욕 클럽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했고,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반발하여 인근에서 '뉴포트 반역자(New Port Rebel)'라는 인디 음악제를 따로 열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를 자주 주동했고 인종차별 시위에 연루된 Orval Faubus 아칸소 주지사를 비난하는 'Fables of Faubus'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음악에서도 아프리카 흑인 고유의 원시성과 주술성을 강조하여 강렬한 구성 음악과 집단적인 즉흥연주를 추구했다. 대표곡 ‘Moanin’을 들어보자.

 

아트 파머 (Art Farmer, 1928~1999)

아트 파머는 내성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의 트럼펫 연주가로서 좀 더 따뜻한 소리를 내기 위해 프루겔혼(Flugelhorn)을 재즈 연주에 도입한 선구자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트럼펫 연주가들과 달리, 연주 속도보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재즈 동지였던 쌍둥이 동생의 죽음, 인종차별적 환경 등을 괴로워하였고, 그 때문에 유럽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1968년 세 번째 결혼과 함께 비엔나에 정착한 이후 인종차별 없는 환경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이후 한결 릴랙스해진 그의 부드러운 프루겔혼 소리를 들어 보자. 1988년 발표한 ‘Blame It on My Youth’이다.

 

아치 셰프 (Archie Shepp, 1937 ~)

Archie Shepp Quartet 'God Bless the Child'(Germany, 2001)

아치 쉐프는 ‘영혼이 울부짖는 듯한’ 테너 색소폰 연주 스타일로 유명하다. 재즈의 뿌리인 아프리카 음악에 조예가 깊어 약 30여 년 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아프리카-미국 음악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또한, 흑인 인권운동, 프리 재즈 참여, 시인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그는 특히 1971년 일어난 아티카(Attica) 죄수폭동 사건의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고, 이듬해 앨범 <Attica Blues>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깊은 정신세계로부터 우러나오는 색소폰 연주를 들어보자. 왜 '울부짖는(Roaring)' 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