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를 생각하면 ‘발리’부터 떠오른다. 여행지를 검색하다가 발리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여행이 아닌 영화로 그려낸 인도네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조슈아 오펜하이머와 가렛 에반스.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온 두 이방인이 그려낸 인도네시아의 풍경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인도네시아의 비극을 보여주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가렛 에반스는 인도네시아의 무술 ‘실랏’의 매력을 극대화한 두 편의 액션 영화를 찍었다. 비극의 재연부터 액션의 향연까지, 두 이방인이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그려낸 강렬한 영화들을 살펴보자. 

 

조슈아 오펜하이머, 크리스틴 신의 <액트 오브 킬링>

1960년대, 인도네시아 공산주의 독재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무너진다. 정권 교체에 반대하는 노동자, 지식인, 화교 등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학살당한다. 당시에 대학살을 주도한 이들은 여전히 기득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학살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한다.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직접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를 하며 그때의 상황을 재연한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몇 년간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비극을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개봉과 관련해서 많은 압박이 있었고, 엔딩 크레딧에는 공동연출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이름이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나온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액트 오브 킬링>(2013)과 <침묵의 시선>(2014)을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유튜브에 영화 전체를 올렸다.

<액트 오브 킬링> 트레일러 

영화의 설정을 보고 눈을 의심하게 된다. 가해자가 자신의 악행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심지어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당시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기득권으로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해자에게 죄를 묻지 않았기에, 그들은 반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반성 없는 가해자들이 웃고 있을 때, 좌절하고 우는 건 피해자들이다. 학살은 과거가 되었지만, 그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

안경사 ‘아디’는 형 ‘람리’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50여 년 전 인도네시아에 일어난 학살로 인해 형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디의 부모님은 람리를 잃은 고통을 간직한 채 살고 있고, 당시의 가해자들은 반성 없이 당시의 학살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디는 가해자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형과 당시의 상황에 관해 묻는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과 마주 보고 있는 작품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가해자들이 당시의 학살을 죄의식 없이 재연하는 걸 포착하고, <침묵의 시선>은 그런 가해자들을 바라보는 피해자에게 집중한다. 안경사 아디는 가해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시력을 교정해주지만, 그들에게 어떤 렌즈를 맞춰줘도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침묵의 시선> 트레일러 

가해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디에게 왜 지난 이야기를 꺼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느냐고 적반하장 한다. 아디의 가족들은 여전히 기득권인 가해자들 때문에 아디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걱정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과거에 죽은 공산주의자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가해자가 떳떳하고 피해자가 숨는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아디가 가해자들의 시력에 맞는 안경을 맞춰져도 명백해지는 건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회의 부조리다.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디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한 눈으로 현실을 응시하는 것뿐이다.

 

가렛 에반스의 <레이드 : 첫 번째 습격>

‘라마’(이코 우웨이스)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임무 수행을 위해 출동한다. 갱단의 보스 ‘타마’(레이 사헤타피)를 비롯해서 많은 범죄자가 거주 중인 낡은 아파트, 라마를 비롯한 정예 요원들이 타마를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아파트에 잠입한다. 무장한 범죄자들의 역습에 요원들 대부분이 다치거나 죽는 가운데, 라마는 고군분투하며 적들과 맞선다.

<레이드 : 첫 번째 습격>(2011)은 액션에 집중하는 영화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술 실랏을 활용한 장면들만으로 압도적인 작품이다. 라마를 연기한 이코 웨이스와 타마의 부하 매드독을 연기한 야얀 루히안은 실제로 실랏을 전공한 무술인들이다. 가렛 에반스 감독이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찍은 작품인 <메란타우>(2009)부터 두 편의 레이드 시리즈까지 두 배우와 함께했을 만큼, 가렛 에반스의 액션이 완성되는 데 있어서 두 배우는 필수적인 존재다.

<레이드 : 첫 번째 습격> 트레일러 

제약이 오히려 창작에 날개를 달아줄 때가 있다. <레이드 : 첫 번째 습격>은 적은 예산으로 인해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층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적들과 맞선다는 설정은, 복잡한 해석 대신 오로지 액션에 집중하게 만든다. 선택과 집중을 훌륭하게 해낸 덕분에, 레이드 시리즈는 완성도 높은 액션 영화의 근사한 예시가 됐다.

 

가렛 에반스의 <레이드 2>

‘라마’(이코 우웨이스)는 범죄조직 소탕 작전에 참여한 이후로 위험에 처한다. 라마는 믿을 수 있는 경찰에게 가족을 맡기고, 범죄조직에 잠입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두 범죄조직 ‘반군’과 ‘고토’가 도시를 접수한 가운데, 라마는 범죄자 신분으로 감옥에 들어가서 반군 가문의 후계자 ‘우초’(아리핀 푸트라)와 친분을 쌓는다. 새로운 범죄조직의 ‘보스 베조’(알렉스 압바드)는 우초에게 접근하고, 출소한 라마는 우초를 도와 반군 조직에서 일하며 상황을 주시한다.

전작보다 나은 후속작을 가진 시리즈를 찾기는 쉽지 않다. <레이드2>(2014)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한 작품이다. 전편보다 많은 예산으로 제작된 만큼 러닝타임도 길어졌고, 레이드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의 쾌감도 더 커졌다. 전작은 한 건물에서 싸움을 이어 나갔지만, <레이드2>는 교도소 화장실부터 자동차, 주방, 창고 등 다양한 공간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레이드 2> 트레일러

<레이드2>가 액션 영화 후속작으로서 갖는 가장 큰 미덕은, 액션만큼이나 스토리도 전작보다 탄탄해졌다는 거다. 단순히 액션에만 감탄하는 걸 넘어서, 인물들의 선택을 곱씹으며 사유하게 만든다. ‘저런 액션은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관객의 호기심은 어느새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인물에 대한 몰입으로 바뀐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레이드 시리즈는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됐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