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펼쳐지는 엊그저께와 그저께, 어제의 모습은 무섭도록 닮아 있다. 출근길 풍경과 사무실에 앉자마자 쳐다보는 컴퓨터 화면, 상사의 잔소리, 구내식당의 향내. 주변 환경에 사랑할 구석이 없어 서글퍼질 때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이 노래들과 함께하는 건 어떨까? 직장인의 소심한 일탈을 도와줄, 그리고 마음을 달래줄 2000년대 밴드 노래를 추천해 보고자 한다. 

 

롤러코스터 '힘을 내요, 미스터 김'

보컬 조원선과 기타리스트 이상순, 베이시스트 지누가 결성한 밴드 롤러코스터의 2집 수록곡. 1999년 데뷔한 롤러코스터는 뚜렷한 멜로디 라인과 펑크(funk), 일렉트로닉, 애시드 팝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한 음악을 발표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었다. '꽉 채워져 있지 않고' 덜 다듬어진, 자유로운 느낌을 내기 위해 윤종신, 유희열, 이승환 등 친했던 동료 가수들한테서 장비를 빌려 집에서 녹음하는, 소위 홈레코딩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2006년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네덜란드로 유학길에 오르고 2008년 조원선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롤러코스터는 밴드 활동을 중단했다. 디지털 싱글 '유행가'가 마지막 발표 곡이다. 몽환적인 음색의 보컬, 록 그룹에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작곡가였던 베이시스트라는 개성 강한 멤버들이 지금 들어도 세련된 5개의 앨범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성이나 유행 때문에 우리 음악을 변질시키지 말자'는 이 셋의 음악적 목표가 같았기 때문이다. 

2집 <일상다반사> 앨범 커버

'힘을 내요, 미스터 김'은 롤러코스터 2집 앨범 <일상다반사>의 타이틀곡이다. 롤러코스터는 주로 도시인의 감정에 대해 노래했는데, 2집은 특히 도시인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노랫말 역시 보통 사람의 보통 이야기로 엮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은 약 1,000만 명이다. <힘을 내요, 미스터 김>은 미스터 김으로 상정된, 아무도 아닌 동시에 그 누구일 수 있는 보편적 존재를 응원하는 노래다. 보컬 조원선은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재미있는 사운드" 때문에 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번쩍이는 검은 구두, 무표정한 얼굴 위에는 무슨 생각하나요(...) 이름을 말해봐요, 미스터 김. 당신이 꿈꾸던 삶은 어디에."

 

언니네이발관 '산들산들'

언니네이발관은 몽환적인 보컬 목소리와 서정적인 가사, 감각적인 사운드로 오랫동안 모던록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사랑받은 국내 1세대 밴드다. 1994년 결성된 언니네이발관은 당시 홍대 클럽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데뷔 무대를 치렀다. 셋 리스트를 오롯이 자작곡으로 채우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런던에서 마스터링했으며 2집 <후일담>은 이석원의 이별 이야기가 담긴 앨범이다. 3집 <꿈의 팝송>은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4집 <순간을 믿어요>는 언니네이발관에게 요구되는 규정성을 깨뜨리기 위해 시도한 앨범이다. 6집 <홀로 있는 사람>을 끝으로 2017년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석원은 그 해 "음악이 일이 된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완벽을 추구하는 음악 작업으로 유명한 보컬 이석원은 베스트셀러 <보통의 존재>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커버

'산들산들'은 언니네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의 마지막 수록곡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은 당시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을 석권하며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15만 장이라는 앨범 판매량을 달성했다. 한국 대중음악 전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반이다. 3집이 그랬듯 이 앨범도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보컬 이석원이 작사·작곡 및 전체적인 구성을, 현재 못(Mot)의 이이언과 함께 나이트오프로 활동하고 있는 이능룡이 기타 연주를, 전대정이 드럼을 맡았다. 이 앨범은 '컨셉 앨범'으로 만들어졌으며 1번 곡부터 10번 곡까지 유기적인 흐름을 갖는 '한 권의 책'과도 같다. 따라서 발매 당시 보컬 이석원이 권장했듯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것이 좋다. '산들산들'은 10번째 곡으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화자가 어떤 시련에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다짐하는 노래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 거야.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브로콜리너마저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12년 동안 청춘에 대해 노래한 브로콜리너마저는 4인조 인디밴드다. 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멤버 전원이 30대에 들어섰으며 올해 9년만에 3집 <속물들>을 발표했다. 밴드의 유일한 남성 멤버인 덕원이 주로 가사를 쓰며 류지는 덕원과 함께 보컬을 맡고 있다. 잔디는 키보드를, 향기는 기타를 연주한다. 당시 1집에서 노래를 불렀던 계피는 브로콜리너마저를 탈퇴해 또 다른 밴드 '가을방학'에서 활동했다. 이후 2집 타이틀곡 <졸업>으로 2011년 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을 수상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라는 <졸업> 가사는 학교를 벗어나 험난한 사회를 맞닥뜨린 청춘들의 맘을 대변한다. 

1집 <보편적인 노래> 앨범 커버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1집 <보편적인 노래> 두 번째 수록곡이다. 홍보 없이도 거뜬히 6만 여장이 팔리며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은 음악 팬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자리 잡았다. 타이틀곡 '보편적인 노래'는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선정됐다. 명랑한 멜로디와 나긋한 보컬 목소리, 재치 있는 가사는 10년이 지나도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찾게 하는 매력 요소다. 특히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발매 당시 여러 TV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대중의 귀를 즐겁게 했다. 기분이 꿀꿀하지만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벽을 쳤다가는 아플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이 없을 때" 노래 속 화자처럼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자정의 공원"을 달려보자.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