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선구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자 맥스 플라이셔(Max Fleischer)는 ‘베티 붑(Betty Boop)’, ‘뽀빠이(Popeye)’ 등 인기 연재만화 캐릭터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다. 당시 개성파 배우 헬렌 케인(Helen Kane)의 목소리와 용모, 그리고 몸동작을 패러디하여 탄생한 베티 붑 애니메이션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코튼 클럽의 인기 댄서이자 스윙가수인 캡 캘로웨이(Cab Calloway)와 협업했다. 자신이 개발한 로토스코프(Rotoscope) 기술을 적용하여 그의 히트곡과 댄스 동작을 베티 붑의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적용했다.

베티 붑 카툰 <The Old Man of the Mountain>(1933)

1930년 등장 당시 베티 붑은 보조 캐릭터였지만, 애기같은 용모와 귀여운 몸동작으로 메인 캐릭터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자 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때 인기를 누리던 재즈 에이지 플래퍼(Flapper, 1920년대의 신여성)의 상징적인 캐릭터가 된 것. 초기 애니메이션에는 섹스 심볼로 인식되고 성추행을 연상케 하는 그릇된 내용으로 언론이나 종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내용을 순화하여 1939년까지 최고의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헬렌 케인과 그를 캐리커추어한 베티 붑 캐릭터

베티 붑 카툰과 캡 캘로웨이의 협업 결과는 1932년의 단편만화 <Minnie the Moocher>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듬해, 극장용 만화 <The Old Man of the Mountain>과 <Snow White>에서는 캡 캘로웨이의 히트곡을 베티 붑과 ‘코코 더 클라운(Koko th Clown)‘캐릭터에 로토스코핑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캡 캘로웨이 역시 극장 상영시기에 맞춰 인근에서 공연을 하여 상호 보완적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베티 붑 카툰 <Snow White>(1933). ‘St. James Infirmary Blues’ 등 캡 캘로웨이의 히트곡이 삽입되었다

캡 캘로웨이는 기발한 댄스 동작과 스윙 음악으로 1930년대의 최고 엔터테이너였다.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뉴욕의 유흥가 할렘(Harlem)에 나타난 그는, 당대 최고의 클럽 코튼 클럽(Cotton Club)에서 듀크 엘링톤의 밴드와 함께 쌍두마차로 군림했다. 1931년에는 ‘Minnie the Moocher’를 녹음하여 히트하며, 흑인 최초로 1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곡에 나오는 스캣 소리를 따서 ‘The Hi De Ho Man’라 불리며 1940년대 후반까지 댄스클럽과 영화에서 왕성한 활동을 지속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Moonwalk) 동작은 60년 전에 창안된 그의 댄스 동작 ‘Buzz’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베티 붑 카툰 영상과 캡 캘로웨이의 댄스 동작을 비교한 영상

1930년대 스윙 재즈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만나 양측 모두에게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베티 붑 제작사인 파라마운트는 재즈 음악을 더 많은 애니메이션에 적용했다. 하지만 언론이나 카톨릭 교계에서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의 과도한 선정성을 지적하자, 맥스 플라이셔는 이들의 지적이 단지 선정성만이 아니라 인종 문제와도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고 협업을 중단했다. 당시 재즈는 흑인의 음악이라는 사실만으로 선정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었던 것.

영화 <Blues Brothers>(1980)에 출연한 73세의 캡 캘로웨이

캡 캘로웨이는 1994년 8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의 최고 히트곡 ‘Minnie the Moocher’와 베티 붑 카툰 <Snow White>는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미국 국회의사당에 영구히 보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