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가 차다. 여름이 저물어간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어느 순간 여름이 간다. 뒷북의 동물인 우리는 그제야 아쉬워진다.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더 누릴 걸 그랬다고. 그 태양을, 그 빗줄기를, 그 녹색을…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여름을 곱씹어야 한다. 다름 아닌 여름의 소설을 통해서.

여기, 여름의 소설들을 모아봤다. 배경이 여름인 소설도 있고, 여름을 닮은 소설도 있다. 혹은 여름 그 자체인 소설도 있다. 서늘해진 밤바람을 맞으며 한 편씩 읽어보자. 아마 그 순간만큼은 여름 안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전하는 이야기에 마음이 뜨끈하게 달아오를 테니까.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비행운 | 김애란 소설집 | 문학과지성사 | 2012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물속 골리앗> 중에서)

해마다 장마가 찾아오면 ‘물속 골리앗’이 떠오른다. 헌데 올해는 그 시기가 조금 일렀다. 영화 ‘기생충’ 덕분이었다. 장마라는 단어가 아직은 낯선 6월 초순의 어느 날, 물에 잠긴 반지하 집을 헤매는 기택의 가족들을 보며 나는 ‘물속 골리앗’의 소년을 떠올렸다. 퍼붓는 폭우와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황톳물. 그 안에서 그저 휘청댈 뿐인 인간들. ‘물속 골리앗’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물속 골리앗’의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아파트 재개발을 반대하며 크레인에 올랐다가 죽은 소년의 아버지. 아버지의 부고와 함께 소년을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장마였다. 하지만 여느 장마와 달랐다. ‘지구가 정신병에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전기는 예전에 끊겼고, 아파트 1층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래 비가 왔는지, 얼마나 오래 비가 올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 남겨진다. 빗물이 마침내 소년의 집 바로 아래층까지 차오르고, 병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소년은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마을까지 삼켜버린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폭우 속에서 어머니의 시신은 물론이고 자기 몸조차 지키기 힘든 소년.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외롭고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무용으로 다시 태어난 ‘2017 창작산실 무용 <물속 골리앗>’

속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물 저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공포,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이미지, 물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듯 숨이 가빠오는 느낌까지. 장마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물속 골리앗’에 살아있다. 그 생생한 감각은 결국 무대에도 오른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물속 골리앗>(안무 김모든)이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소설가 김애란, 이미지 출처 – ‘씨네21

사실 김애란의 소설에는 유독 여름의 이미지가 강렬한 소설들이 많았다. 김애란만큼 여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김애란 작가표 ‘여름’을 더 느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물론, 소설집 ‘비행운’에 실린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과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풍경의 쓸모’까지. 제각기 다른 여름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소설집 | 문학동네 | 2013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에서)

여름이 배경인 소설이 아니다. 여름에 관한 소설도 아니다. 소설 속 화자가 처음 ‘팸’ 이모를 찾아갔을 때의 계절이 여름이기는 하다. 허나 그것뿐이다. 하지만 여름이 찾아오고 소나기의 거센 빗방울이 창문을 투둑투둑 두드릴 때면 어김없이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떠올리게 된다. ‘솔’ 음으로 함석지붕을 두드리던 칠월의 빗소리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여름의 소설인 이유다.

소설은 여자친구와 함께 팸 이모를 만나기 위해 플로리다를 찾은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 속 화자의 어머니에 의하면 팸 이모의 어려서부터 꿈은 ‘미국놈 마누라’였단다. 미국인과 결혼하여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팸 이모는 언뜻 ‘미국놈 마누라’의 꿈을 이룬 듯 보였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 찾아온 조카에게 들려준 이모의 이야기는 달랐다. 사실 팸 이모의 꿈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것. 하지만 ‘미국놈 마누라’보다 소박해보이는 이 꿈은 팸 이모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영화배우를 하던 젊은 시절, 팸 이모는 사랑하는 유부남 영화감독과 서귀포에 있는 함석지붕집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 함석지붕 밑에서 부둥켜안고 빗소리를 듣던 그 달콤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감독의 부인과 어린 아들이 찾아오면서 석 달 만에 끝난 것이다. 감독을 떠나보내고 감독과의 사이에서 생긴 뱃속 아이도 지워야 했던 팸 이모.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미국인 남편인 폴마저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팸 이모는 조카 앞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소설가 김연수, 이미지 출처 – ‘씨네21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에서)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의 짧지만 영원한 사랑. 따스한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까지 그 석 달의 사랑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구절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군가 여름을 소리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칠 월,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솔’음의 빗소리가 바로 여름이라고. 여름이라는 계절을 소리로 치환시켜 귀에 들리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이자 우리가 여름이 지나기 전에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아무도 아닌 | 황정은 소설집 | 문학동네 | 2016

“제희네 아버지가 퇴원한 날에 제희네 누나들은 다시 그 집에 모였다. 제희는 누나들과 돈을 모아서 환자가 드러눕고 일어나기 편하도록 전동으로 작동되는 침대를 사서 방에 넣어두었다. 제희네 아버지가 그 위에 앉자 제희네 누나들은 한 번씩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우리 아버지, 한번 안아봅시다. 그의 조그만 머리가 이제는 그보다 더 크게 자란 딸들의 품에 한 번씩 묻히는 광경을 나는 지켜보고 있었다.” (<상류엔 맹금류> 중에서)

한여름의 나들이를 상상해본다. ‘길 위로 나온 것들을 모조리 끝장내버릴 것처럼 무더운’ 어느 여름날의 수목원 나들이. 평생 여행 한번 가본 적도 없고,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 해본 적 없는 어느 노부부와 함께 고약한 냄새나는 어떤 수로 옆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런 나들이를. 여름이면 티비에 등장하는 계곡 풍경을 보며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상상의 끝에선 늘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려온다.

‘물속 골리앗’이 여름의 축축한 촉감을 느끼게 해주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여름의 청량한 음감을 들려준다면, ’상류엔 맹금류’는 여름의 ‘냄새’를 맡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맹금류 축사로부터 전해지는 그 악취가 코 끝을 떠나지 않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축사로부터 내려오는 똥물에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목을 닦던 제희의 아버지와 썩어가는 잎들이 달라붙어 있는 비탈에 앉아 음식을 먹는 제희의 어머니를 등지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에 시간이 한참 흐르고도 그 날 일을 떠올릴 때면 자책하게 되는 화자의 마음 또한 이해가 간다. 평생을 성실하게 반듯하게 살았지만 가난의 악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제희의 부모님.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악취만큼은 외면하고 싶은 그 마음. 소설 속 화자의 마음은 곧 소설을 읽는 우리의 마음이다.

소설가 황정은, 이미지 출처 – ‘인터파크

이 소설로 2014년 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황정은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름에 쓴 ‘상류엔 맹금류’ 속 화자가 걱정이 되어 가을과 겨울에 밤잠을 더러 설쳤다고. 소설을 쓴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읽은 이 소설이 가을과 겨울이 지나도 여전히 당신의 마음에 남아있을 테니까.

 

최은영의 <그 여름>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소설집 | 문학동네 | 2019

“수이의 손을 잡았을 때,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 구석에서 수이를 처음 안으면서 이경은 자신이 뼈와 살과 피부를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사했고,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들 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둘이 함께한 첫해의 여름은 그렇게 흘렀다.” (<그 여름> 중에서)

제목부터 ‘그 여름’이다. 소설 첫 문장인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에도 여름이 들어간다. 누가 봐도 분명하게 여름의 소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촉각이나 청각, 후각 같은 여름의 감각을 담고 있는 앞선 소설들과 달리 ‘그 여름’은 여름의 경험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열여덟 여름 처음 만난 ‘이경’과 ‘수이’. 2반이었던 이경과 9반이었던 수이는 그 숫자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많이 다른 소녀들이었다.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이 맞는 사고만 아니었다면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졸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만큼 사랑했다. 서로 달랐기에 서로의 몸을 마음을 더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첫사랑과 마찬가지로 그 다름 때문에 둘은 결국 멀어진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대학 진학이라는 선택지조차 가질 수 없었던 수이. 넓은 세상에 눈을 뜨던 이경과 오로지 이경밖에 모르던 수이. 서로에게 첫사랑이자 전부였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 간극은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소설가 최은영, 이미지 출처 – ‘예스24

우리는 모두 ‘이경’이었던 적이 있다. 또 언젠가는 ‘수이’였던 적도 있다. 이경과 수이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니 소설 속 그 여름은 다름 아닌 우리가 모두 한번쯤 겪어봤을 어느 여름. 첫사랑의 열병에 뜨겁던 혹은 첫이별에 가슴 속까지 시렸던 바로 그 여름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이 소설을 읽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뜨거웠던 여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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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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