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외형의 생물체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 괴물을 다룰 때, 그들을 악한 존재로 묘사한다.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려 보면, 인간이 사악해 보이는 괴물을 물리치는 줄거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괴물에게 위로받는 영화가 있다. 소외되거나 상처 입은 이들에게 괴물은 인간보다 더 따뜻한 위로를 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괴물들. 괴물로부터 잊지 못할 위로를 받는 영화들을 살펴보자.

 

<이티>

어느 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숲에 우주선이 나타나고, 한 외계인이 낙오된다. 낙오된 외계인은 ‘엘리엇’(헨리 토마스)의 집에 몰래 숨는다. 엘리엇은 우연히 외계인을 발견하고 ‘이티’라고 부르며 챙긴다. 엘리엇은 형 ‘마이클’(로버트 맥노튼), 동생 ‘거티’(드류 베리모어)에게 이티를 보여주고, 셋은 어른들 몰래 이티를 고향에 돌려보내기 위해 움직인다.

1982년은 SF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존 카펜터의 <괴물>(1982),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1982)가 공개된 해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관객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대표작은 <이티>다.

<이티> 트레일러 

<이티>는 괴물과 인간의 긍정적인 소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엘리엇에게 이티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우린 엘리엇의 미래를 영화 속에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엘리엇의 마음 한쪽에 이티가 영원히 머물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이티>는 오래전에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기억 안에 이티가 선명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몬스터 주식회사>

괴물들의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몬스터주식회사는 어린이들의 비명을 동력으로 삼는다. 벽장 문을 통해 들어가서 어린아이들을 놀래서 비명을 수집하는데, ‘설리’(존 굿맨)와 ‘마이크’(빌리 크리스탈)은 몬스터주식회사 최고의 실적을 자랑한다. 어느 날, 설리는 문을 살펴보다가 인간 세계의 꼬마 ‘부’(메리 깁스)가 침입한 걸 발견한다. 인간 아이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괴물들은 부를 보고 도망가기 바쁘고, 설리와 마이크는 부를 집에 숨긴 뒤 돌본다.

<몬스터 주식회사>(2001)는 후속편 <몬스터 대학교>(2013)로 이어질 만큼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의 피터 닥터, <토이 스토리3>(2010), <코코>(2017)의 리 언크리치, <심슨 가족, 더 무비>의 데이빗 실버맨까지 세 명의 감독이 연출에 이름을 올렸다. 픽사의 애니메이션답게 독특한 상황 설정이 인상적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 예고편

우리는 괴물의 말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영화 속에서 늘 과격하게 소리 지르는 역할을 맡은 괴물에게 소감을 묻는다면,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을까. 아이들을 놀래서 소리 지르게 만드는 게 직업인 설리와 마이크가 사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미국 항공우주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일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말을 못 한다. 어느 날, 일라이자는 비밀 실험실에 갇힌 괴생명체(더그 존스)를 발견한다. 비닐로 뒤덮인 몸에다가 아가미로 호흡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보며, 일라이자는 점점 사랑을 느낀다. 실험실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괴생명체를 해부하려고 하고, 일라이자는 괴생명체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2017)은 꾸준히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어 온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잭 아놀드 감독의 <해양 괴물>(1954)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제목처럼 물의 형태 같은 사랑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트레일러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속 일라이자의 집은 극장 위에 위치해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는 당시의 걸작이 아니라 <룻 이야기>(1960) 같은 평범한 작품들이다. 평범해 보이는 영화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랑과 특별한 사랑을 구분 지을 수 없다. 일라이자의 사랑은 괴물과 인간의 독특한 사랑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랑의 모양 중 하나다. 사랑의 모양을 정의하기 바쁜 세상에서, 자유에 가까운 사랑에 몸을 맡긴 건 일라이자 뿐일지도 모른다.

 

<범블비>

사이버트론 행성은 디셉티콘과 오토봇의 전쟁이 한창이고, 디셉티콘에게 점점 밀리자 오토봇의 수장 옵티머스 프라임은 B-127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지구로 보낸다. 그러나 B-127은 디셉티콘과 군인들에게 쫓기고, 치열한 전투 끝에 기억을 잃고 낡은 노란색 비틀로 변신한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집에 가져온 노란색 비틀을 고치다가, 비틀이 변신하는 걸 목격한다. 꿀벌을 닮았기에 이름을 ‘범블비’라고 지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찰리와 범블비가 친해지는 동안에도 디셉티콘과 군인들의 추격은 계속된다.

<범블비>(2018)는 마이클 베이가 연출을 맡지 않은 첫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애니메이션 <쿠보와 전설의 악기>(2016)를 감독했던 트레비스 나이트가 연출을 맡았다. 액션에 중점을 뒀던 이전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성장 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등장하는 로봇의 수는 줄어들었고, 감정의 깊이는 더해졌다.

<범블비> 트레일러

범블비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우월한 로봇이 아니라, 찰리의 친구다. 범블비 덕분에 찰리는 웃음을 찾고, 범블비는 찰리 덕분에 깨어난다. 성장은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해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다. 범블비와 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게 아닌, 서로가 부재해도 자립할 힘을 기르며 함께 성장한다. 찰리는 노란 비틀을 볼 때마다, 부지런히 함께 성장했던 범블비와의 시간을 떠올리게 될 거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