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에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마 묘한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해와 강박적 독해의 열병을 앓고 있던 시대 속에서 사진을 이용한 이미지적 전달 방식은 이런 어긋남을 일축하기 위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사진은 문자보다 쉽고 간결했으며, 무엇보다 직접적이었다. 그리고 곧 영화가 탄생했다. 이 두 매체의 등장은 이후 먼 미래까지 이어질 이미지 시대의 시발점으로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이란 논문에서, 문자를 활용하지 못하는 다수의 민중을 계몽하기에 사진과 영화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현재의 영화와 사진이 미칠 어마어마한 영향력에 대해 예측하였다. 사진의 힘이 흐르는 순간을 포착하여 정지시키는 데에 있다면, 영화는 그 순간들의 인과관계까지 포함한 연속적 서사를 연출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장면으로써 대화를 시도하려 하는, 그 의도의 뿌리는 같다. 그만큼 사진과 영화의 관계는 긴밀하다.

 

안드레아 타르코프스키 <Instant Light>

<솔라리스> (1972), <거울> (1975), <희생> (1986) 등 다수의 걸작을 남긴 감독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보물이다. 그의 영화는 강박적인 편집과 몰아치는 속도감, 원초적인 자극에 의지하여 가는 할리우드의 영화 스타일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오히려 느린 호흡과 정적이며 여유로운 장면들은 철학적이며 종교적이기까지 한 작품의 주제들을 전달하는 데에 최적화인 연출이었다. 그의 영화를 지배하는 힘은 은유, 즉 불명확한 의미를 포함한 시적인 영상미였다. 그러나 이런 불명확함은 해석을 불가능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서 긍정의 의미를 갖도록 만든다.

<Instant Light> 는 타르코프스키가 지병으로 사망하기 몇 년 전, 폴라로이드를 이용하여 찍은 작업을 모아 출판한 사진집이다. 사진 현상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숨에 축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폴라로이드가 역으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 온 타르코프스키를 만나 탄생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작고 휴대가 간편한 기억 장치로써의 사진기는 방금 전 죽음을 맞이한 과거의 순간들을 빠르게 소생시킨다.

"감독의 임무는 삶의 운동과 모순, 역동성, 그리고 그 속의 갈등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 사람, 빛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자신만의 ’시간의 철학’을 영화뿐만 아닌 사진에서도 재현하였다. 안개와 석양이 맞닿은 신비한 풍경과 외부의 빛이 실내로 스며 들었을 때의 형성되는 선명한 실루엣과 그림자, 대상과 배경을 조화롭게 감싸는 구도는 그의 사진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현실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담으려 하기보단 오히려 상상력에 의지하여 물질적인 세계를 탈피한, 낭만적이며 정서적인 화면을 연출한다. 실제보단 환상에 가까운 마술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에 집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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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 ‘Lake’, 이미지 출처 링크

 

스탠리 큐브릭 <Look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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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1962) 와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시계태엽 오렌지> (1971) , <샤이닝> (1980), 그리고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1999) 까지. 큐브릭의 영화는 철학적인 주제를 혁신적이며, 스타일리쉬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미장센은 모든 영화연출을 꿈꾸는 이들의 바이블이 되었고, 서거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은 영화계의 화두가 된다.

큐브릭에겐 영화감독이란 공식적인 타이틀 외에 특이한 이력이 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연출하기 전, 17세의 어린에 사진잡지 <Look>의 전속 포토그래퍼로 5년간 활동한 것이다. 그의 피사체는 모델이나 배우, 혹은 연출된 세트처럼 특별하지 않다. 구두를 닦는 소년, 기차 속 연인, 클럽의 호화로운 분위기와 거리를 걷는 사람들처럼 어디서나 봤을 법한 일상의 풍경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익숙함에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평범한 사건들의 평범한 요소들을 낯설고 신선한 장면으로 뒤바꾼다.

큐브릭의 팬이라면 아마 사진들을 보자마자 바로 작가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그의 영화와 사진 속의 구도와 분위기는 서로 많이 닮아 있다. 같은 모체에서 태어난 작품이라는 걸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큐브릭의 영화와 사진은 동일한 아우라로 각자의 존재감을 선명히 드러낸다. 매체를 아우르는 그의 재능은 거장의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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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린치 <Nu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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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하나의 언어다."

‘컬트의 제왕’ 이라고 불리는 데이빗 린치의 필모그라피는 다채롭고 독창적인 시도로 가득하다. 데뷔작인 <이레이져 헤드>(1978)를 시작으로 <블루벨벳>, <광란의 사랑>, <트윈픽스> 까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지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마주하게끔 한다. 한 매체는 20세기 최고의 영화로 그의 작품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꼽기도 했으며, 여러 거장도 그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재능은 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몇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그림을 전시했으며,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까지 연출했다. 거의 예술의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창작세계는 넓고 풍성하다. 그리고 그 재능은 사진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2017년 출간된 <Nudes>는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린치의 사진집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신의 여성을 촬영한 자신의 작품들이 소프트코어 (포르노의 한 장르) 와는 다른, 즉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목적으로 한 작업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밝혔다. 오히려 그는 색과 구도와 새로운 포즈들로 인체의 형상을 변주하여 피사체가 비인간적으로 보이게끔 노력했다. 더 생생하지 않고, 더 자연스럽지 않은 쪽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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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가 어떤 대상에 관해 품고 있는 고정된 생각들을 비트는 데에 집중한다. 2014년 런던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그는 버려진 공장과 폐허를 주제로 한 사진을 선보였다. 회색의 콘크리트와 철골, 부식되고 철거 중인 건물들이 그가 선택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굴뚝의 굴곡과 주인 없는 공장의 열려있는 문에서 그는 되려 생명력을 포착해낸다. <트윈 픽스>에서의 움직이는 판잣집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의 소용돌이치는 공간처럼, 살아있지 않은 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린치의 영화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연출이다. 이처럼 그는 일관된 철학과 시선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관찰한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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