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미국, 식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앨범이 등장했다. 특이한 콘셉트만큼 이 앨범을 손에 넣는 방식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 (Mother Earth Plant Boutique)' 매장에서 식물을 구매하거나, '시어즈' 쇼핑몰에서 시몬스 침대를 사는 것이 이 앨범을 받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Mort Garson의 앨범은 식물 구매 독려를 위한 증정품의 하나로 미국인들의 집에 식물과(때론 침대와) 함께 입성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Sacred Bones Records'

Mort Garson의 1976년 작 <Mother Earth's Plantasia>(이하 Plantasia)는 증정품으로 세상에 나온 지 43년 만인 올해 6월 Sacred Bones 레코드를 통해 공식 재발매 되었다. <Plantasia>가 발매된 70년대 중반의 미국 시민들은 실내식물로 집안 곳곳을 꾸미는 일에 흠뻑 빠져있었다. Peter Tompkins와 Christopher Bird가 공동 집필한 <식물의 비밀스러운 삶>이란 책이 미국을 강타, 식물 열풍을 주도했다. 식물의 텔레파시, 거짓말탐지 능력 등 다소 미심쩍은 내용도 포함됐지만, 미국인들의 식물 사랑은 계속되었다.

© Terence Conran, 이미지 출처 - 'The Bed and Bath Book'(1978)

할리우드 커플 Lynn과 Joel Rapp이 LA에서 운영했던 식물 매장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 역시 이 비밀스러운 책과 함께 70년대 식물 트렌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Rapp부부는 책에서 제안한 또 다른 내용인 식물들의 음악을 향한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식물을 위한 앨범을 제작하기로 한다.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Mort Garson이 앨범의 작곡을 맡아 <Plantasia>가 탄생하게 된다.

<Plantasia>는 발매 당시, 음악계에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사람이 아닌 식물을 위한 앨범이었기에 인간의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오래된 앨범이 재발매 되는데 중요한 건 음반 수집가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일이다. 홍보용 상품으로 뿌려진 이 앨범은 어떻게 43년에 걸쳐 음악 팬들로부터 '수집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미지 출처 - 'Sacred Bones Records'

첫 번째로, <Plantasia>는 초기 모그 신시사이저(Moog Synthesizer)로만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점에서 음반 수집가들에게 희소성을 느끼게 했다. 60년대 중반 모그 신시사이저가 출시되자 음악가들에게 이 기기는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채 모그를 탐험하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실험적인 신시사이저 음악이 탄생한 이 시기에 수집가들은 이끌렸다. 여기서, 모그 신시사이저란 로버트 모그가 개발한 피아노식 키보드가 달린 전자음향합성기기이다. 비틀스 역시 1969년 작 <Abbey Road>에 이 기기를 활용했다. Mort Garson은 모그 얼리어답터로서 여러 장의 콘셉트 앨범을 내놓았는데, 조디악의 사인을 다룬 <The Zodiac : Cosmic Sounds>, Lucifer란 이름으로 발표한 오컬트 앨범 <Black Mass>,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Music for Sensuous Lovers by Z>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Plantasia>는 신시사이저의 고음만을 사용해 신비롭고도 사랑스러운 식물의 세계를 표현했고, 돋보이는 콘셉트로 Mort Garson 카탈로그 중에서도 수집 가치가 있는 앨범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이미지 출처 - 'Moog Music'

음반 수집가들은 희귀 앨범인 <Plantasia>를 찾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타인에게 제시하는 일에 착수했다. 입 소문으로 퍼지던 이 앨범은 온라인 시대의 도래로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독특한 자신의 음악 취향을 과시하려는 이들의 욕망 덕분에 <Plantasia>는 많은 Youtube 사용자의 알고리즘에 침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식물의 시대가 다시 돌아옴과 함께 <Plantasia>는 그 생애주기를 함께 했다. '플랜테리아', '반려식물'이 보편화되며 식물과 다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났고, 식물을 위한 음악인 <Plantasia>의 위상 역시 높아져갔다. 마음만 먹으면 특정 시대를 불러낼 수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Plantasia>의 재발매이자 첫 공식 발매를 이뤄낸 것이다.

<Plantasia> Green Vinyl, 이미지 출처 - 'Sacred Bones Records'
Mort Garson 'Swingin' Spathiphyllums'

과연 오늘부터 내 방의 식물에게 <Plantasia>를 들려주면 잘 자랄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수록 곡 'Symphony for a Spider Plant(비행기 식물을 위한 교향곡)', 'Concerto for Philodendron and Pothos(필로덴드론과 포토스를 위한 콘체르토)', 'Swingin' Spathiphyllums(흔들리는 스파티필름)'처럼 식물을 특정한 트랙들은 우리의 마음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앨범 전반에 걸친 신비로운 분위기와 밝고 따뜻한 음들은 식물과 사람 모두 해할 리는 없어 보인다. 오리지널 해설지 속 Joel Rapp도 말한다. "확실한 건 이 음악을 들은 그 누구든 아플 리는 절대 없어!"

Mort Garson 'Mother Earth's Plantasia (Official Full Album Stream)'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