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은 재즈 뮤지션이라고 하기도, 가수나 보컬리스트라고 하기에도 어딘지 불충분해 보인다. 그는 여러 음악의 장르와 보컬 스타일을 넘나들며 매우 독보적인 보컬 영역을 개척하여 8년(1985~1992)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래미를 10회나 수상했다. 악기 반주없이 홀로 보컬 음반을 낸 적도 있고, 무대의 맨 앞에 걸터앉은 채 관중의 싱어롱을 유도하기도 했다. 1988년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형성한 노래 ‘Don’t Worry, Be Happy’로 팝차트 1위에 올랐고, 이듬 해 그래미 올해의 곡, 올해의 음반상을 모두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화 <칵테일>에 수록한 ‘Don’t Worry, Be Happy’ MV

그의 아버지 로버트 맥퍼린 시니어(Robert McFerrin, Sr)는 오페라 바리톤 가수였고, 어머니 사라(Sarah) 역시 오페라 가수였다. 특히 아버지는 뉴욕 MET 극장에서 처음 오페라 무대에 오른 아프로-아메리칸 가수로 기록되었고, 어머니는 캘리포니아에서 교수로 20년간 재직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보컬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아들의 음악적인 방향성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페라 가수였던 아버지 로버트 맥퍼린 시니어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인 바비 맥퍼린은 32세가 되어서야 첫 음반을 냈는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는데 6년을 바치며 음반 데뷔가 늦어졌다. 이 중 2년 동안은 혹시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답습할 것이 염려되어 과거 음반을 전혀 듣지 않을 정도로 독창성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음반은 키스 자렛의 <The Koln Concert>, 그는 키스 자렛이 즉흥적인 연주에 도달한 성과를 보컬 영역에서 재현하고 싶었다.

<Sing! Day of Song> 공연에서 관중의 싱어롱을 유도하는 바비 맥퍼린

그의 음악은 노래라 부르기보다는 몸을 악기처럼 사용하여 입으로 소리를 낸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1994년부터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활동을 시작해서는, 연주자들에게 연주 대신 입으로 소리를 내라고 주문하거나 관객들의 싱어롱을 유도하며 장중한 클래식 공연장의 분위기를 즐겁게 바꾸기도 했다. 1988년 대선에서 그의 히트곡 ‘Don’t Worry, Be Happy’가 조지 부시 대통령 캠프에서 캠페인 송으로 쓰이자, 그는 정치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반대편에 있다며 이를 강력히 항의했다. 그는 자신의 의사를 더욱 명쾌히 밝히기 위해 한동안 자신의 레퍼토리에서 이 노래를 사용하지 않았다.

로버트 글래스퍼와 함께 Beatbox에 나선 테일러 맥퍼린

그는 세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이들 중 둘이 아버지를 따라 뮤지션이 되었다. 아버지의 음악교육 캠프에 쫓아다니던 큰아들 테일러 맥퍼린(Taylor McFerrin)은 프로듀서, DJ 및 비트박서(Beatboxer)로 활동하며 2014년 앨범 <Early Riser>로 데뷔했다. 최근에는 로버트 글래스퍼와 함께 <R+R=Now> 라는 퓨전재즈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데, 비트박스로 다양한 퍼커션 소리를 내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딸 매디슨 맥퍼린 역시 버클리 음악학교 출신으로 일렉트로닉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순회 공연에 함께 다니기도 하는데, 2015년 아버지의 내한 공연에 따라와서 백 코러스를 맡은 적도 있었다.

매디슨 맥퍼린의 싱글 ‘Try’ (테일러 맥퍼린이 프로듀스했다)

 

바비 맥퍼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