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는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34년 전 <방랑자>를 함께한 배우 상드린 보네르와 만났다. 어쩐지 바르다는 이것이 마지막 영화일 줄을 예감한 것 같지만, 아마도 보네르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짧은 대화는 <방랑자>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팬서비스로 남게 됐다. 상드린 보네르는 겨우 17세였던 당시, 집도 법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모나’를 연기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잠깐 놀랐다. 너무도 모나 그 자체였던 상드린 보네르에게 모나가 되는 일이 힘겨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거쳐간 영화만큼의 삶 여러 개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던 배우 상드린 보네르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말하자면 상드린 보네르가 아닌 상드린 보네르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1. 대결하는 자의 얼굴

끌로드 샤브롤, <의식>

상드린 보네르의 얼굴은 첫눈에 온화하다. 그러나 수 초 내에 그 판단을 거두게 된다. 몇 마디 대사로 캐릭터를 가늠하기가 힘들고, 말보다 강력한 언어가 몸으로부터 나온다. 똑바로 뜬 눈은 어딘가 비협조적인 기운을 풍기면서, 언제라도 터질 듯한 불화를 예견하게끔 만든다. 많지도 않은 대사는 최소한의 자신을 지키기에 알맞은 내용이며, 이는 당연하게도 소통을 위한 언어와는 다른 부류다. 많은 불협화음이 예상되지만 인물은 적잖은 부분을 침묵으로 채운다. 혹시 달갑지 않은 태도를 마주쳐도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치곤 자신을 지킨다. 이때 그에게 고립은 생존과 동의어일 것이다. 인물의 과거사를 구태여 일러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캐릭터가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체득했음을 짐작한다. 보네르의 캐릭터들은 줄곧 대결한다. 타인과, 타인들과, 사회와 대결하고 불응한다.

 

2. 아무렇게나 존재하는 우리

아녜스 바르다, <방랑자> 비하인드 컷

보네르의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뚜렷한 일관성이나 규칙을 찾기 어렵다. 동의하기 어려운 순간도 종종 찾아온다. 굳이 말로 풀자면 오로지 자신이 관여하고 싶은 것과 아닌 것, 혹은 원하거나 말거나 따위의 단순한 문제만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간 우리는 수많은 영화 속에서 납득 가능한 만큼 말끔히 재단된 인물들로 하여금 안정을 느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도리어 이들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선형적 인간상을 영화 속에서 보고 안심한다 한들, 고개를 돌리면 다시 현실 세계인 것을. 상드린 보네르의 인물들처럼 규칙을 쌓아가는 듯하다가 이탈해 버리는, 절대 선의 영역에 수렴하지 않는 예측 불가한 인물들이 차라리 이 세계를 고통스럽게 대비하지는 않는다.

 

3. 자유를 갈망하는 신체

모리스 피알라, <우리의 사랑>

실존의 강에서 길어 올린 듯한 보네르의 인물들은 신체 언어를 통해 한층 구체화된다. 마치 이 배우에게는 투명 망토를 두른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것 같다.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가장하지 않는 그의 시선, 표정, 몸짓들이 지극히 자유롭다. 스피노자가 의식을 탐구하던 철학자들에게 ‘신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듯, 의식과 무의식 모두의 영향을 받는 신체 언어를 들여다보면 더 넓은 서사가 보인다. 상드린 보네르의 인물들은 주로 타인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오직 자신으로서 존재하기에도 벅찬 인물들이다. 그 모습이 생경한 까닭은 우리가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으로만 존재하기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런 모나 되기를 시도한 배우 상드린 보네르의 고통을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스 피알라, <우리의 사랑>

상드린 보네르의 놀라운 데뷔작. 포스트 누벨바그의 대표 작가인 모리스 피알라의 <우리의 사랑>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충격을 안긴다. 15세 ‘수잔’(상드린 보네르)은 억압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무분별한 사랑을 즐긴다. 수잔을 끔찍이 보호하는 오빠의 모습은 가끔 도를 지나쳐 무섭기까지 하고, 신경증이 극에 달한 어머니와의 다툼은 수잔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제대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수잔이 사랑 없는 결혼에 이르게 되는 비극을 분별없이 현실적인 묘사로 그려냈다.

아녜스 바르다, <방랑자>

어느 겨울, 얼어붙은 시체 한 구가 개울가에서 발견된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젊은 여자 ‘모나’(상드린 보네르)를 제대로 알던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를 본 적이 있거나 잠깐 겪었을 뿐이다.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모나가 죽음에 이르게 된 여정의 조각들이 모인다. 모나의 삶의 방식은 이들에게는 생경한 것이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거부하지 않았고, 고맙거나 미안해하는 법도 별로 없다. 어떤 관계에 귀속되기를 싫어했으며, 담배나 음악처럼 고고한 것을 좋아했다. 모나를 본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그의 삶을 열렬히 동경했다.

끌로드 샤브롤, <의식>

봉준호 감독은 끌로드 샤브롤의 정신적 후예다. 특히 <기생충>은 샤브롤의 <의식>을 빼닮았다. 부르주아 가족의 가정부로 취직한 여자 ‘소피’(상드린 보네르)는 사교적인 구석은 없어도 일만큼은 완벽하다. 그에게 약점은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다. 소피는 부르주아를 경멸하는 우체국 직원 ‘잔느’(이자벨 위페르)와 친구가 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큰 국면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체감한다. 주인집의 가족들은 대체로 소피에게 친절한 편이면서 그 허위의 민낯이 때로 소피를 자극한다. 끝내 파멸에 이르는 <의식>은 <기생충>의 가장 충실한 레퍼런스이자 쓰디쓴 계급 우화의 정전이다.

Writer

예측 불가능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을 닮은 영화를 사랑한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지금에 도착한 필자가 납득하는 유일한 진리는 '영영 모를 삶'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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