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백악관 드라마는 롱런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 26개의 에미상을 받으며 역대 최고 드라마 반열에 오른 <웨스트 윙>(1999~2006)과 7개의 에미상을 받은 <하우스 오브 카드>(2013~2018) 외에 기억나는 백악관 드라마는 별로 없다. ABC가 생소한 제목과 콘셉트로 시도한 <지정 생존자>는 출발이 좋았다. 파일럿 프로그램 없이 바로 첫 시즌 제작에 들어갈 만큼 시나리오가 좋았고 무엇보다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 캐스팅에 큰 기대를 걸었다. 2016년 9월에 방송된 첫 에피소드는 1천만 명이 시청하며 괜찮은 출발을 보였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시청자의 궁금증이 해소되며 시청률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에는 첫 에피소드의 절반인 5백만 명 선까지 떨어지며 겨우 하락세를 멈추었다. 평론가들은 드라마의 롱런 여부에 우려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제작자를 교체하며 시즌2를 시작했으나 좀처럼 시청률은 올라가지 않았다. 키퍼 서덜랜드가 열연한 ABC의 전작 <24>는 아홉 시즌 동안 1천만 명 선을 유지했지만, <지정 생존자>는 좀처럼 5백만 명 선을 넘지 못하였다. 시즌 2에느 4백만 명 선을 힘겹게 유지하다가 갈수록 힘이 떨어지자, ABC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추가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자 제작사(Entertainment One)가 나서서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했고, 넷플릭스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폭스의 <루시퍼>나 라이프타임의 <You> 처럼 방송사가 추가 제작을 포기한 드라마를 살려낸 경험을 재현하고 싶었다. 한 시즌 22편 대신 정주행이 가능한 10편으로 시즌 3를 제작하여 올해 6월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했다.
다소 생소한 용어인 ‘지정생존자’는 미국 ‘Presidential Succession Act(대통령직 승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실제로 운영되는 제도다. 냉전 시절 핵무기가 개발되어 정부 요인에 대한 대량 살상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자, 의회는 1946년에 법 개정을 통해 지정생존자 제도를 신설했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동일한 장소에 모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내각 멤버 중 한 명이 지정 생존자로 정해져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한다. 위키피디아 상으로는 이제까지 지정생존자로 지정된 인물은 알려진 사람만 6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라마는 만약 지정생존자가 대통령직을 맡았을 때를 가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시즌 3를 서비스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추가 제작은 없을 거라고 발표했다. ABC에 이어 넷플릭스마저 이 드라마를 살리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제작자에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였지만,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은 계속되었다. 특히, CIA 요원 ‘한나 웰스(Maggie Q)’의 독자적인 활약상이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과 함께 <24>에 <웨스트 윙>을 섞어 놓은 드라마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갑자기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된 ‘커크먼’ 대통령이 아마추어에서 벗어나 프로의 기량을 선보이자 시청자를 붙잡을 만한 힘을 점점 잃게 되었다. 세 시즌 동안 다섯 명의 제작자를 거치며 드라마를 살리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이야기 구성에 구심점을 잃고 갈팡질팡했다는 비난은 계속되었다.
이제 국내 TVN이 리메이크한 <60일, 지정생존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국내 드라마는 미국과의 법 체계 차이로 인하여 배우 지진희가 60일의 임기를 갖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출연한다. 8월 20일 종영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