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소비, 과장된 장식, 복잡한 도심 등. 우리를 둘러싼 ‘과잉’에 대한 반감은 간단명료한 공간을 꿈꾸게 만든다. 지난 몇 년 사이 미니멀리즘이 뜨겁게 떠오르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면에 집중하며 부수적인 것을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단순히 여백을 두는 것이 아닌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그 무엇에 의미를 둔다. 이러한 미니멀리즘 철학에서의 여백은 절대 공허하지 않다. 특히 단순함의 미학을 관철하는 분야, 현대 건축과 이러한 파사드를 파인더에 담는 건축 사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는 정갈하게 비워진 선과 면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Alberto Compo Baeza

이미지 출처 – ‘Campo Baeza

건축에서의 미니멀리즘은 그 무엇보다 곧고, 명확하다. 1960년대 이래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건축계 미니멀리즘은 최근 들어 맥시멀리즘으로 차츰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다. 그중 미니멀리즘 건축 거장, 스페인 출신 건축가 알베르토 캄포 바에자(Alberto Compo Baeza)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은 본질적인 것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오직 빛과 중력을 이용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빚어내고자 하기 때문. 캄포 바에자는 근대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vusier)와 모더니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영향을 받아 실용적 건축을 지향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초반 작품을 살펴보면 합리주의에 입각해 설계한 건축물이 주를 이룬다.

 

“중력은 공간을 만들고, 시간은 빛을 만든다”

이미지 출처 – ‘Campo Baeza

그는 1992년 스페인 저밀도 지역에 위치한 은둔형 주택, ‘가스파 하우스(GASPAR HOUSE)’를 완성한다. 이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가 될 정도로 미니멀리즘 건축의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개방되어 있지만, 왠지 모르게 실내에 있는 듯한 높은 담이 특징이다.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요구한 건축주의 뜻에 따라 경내를 감싼 형태의 ‘폐쇄된 숲’을 구상해 설계했다고 한다. 내부와 외부 사이의 시각적 연속성을 위해 개구부에 설치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닥 면을 안팎으로 이었으며, 여기에 수평적인 빛이 더해져 긴장감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공간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네 그루의 레몬 트리를 심은 점 또한 돋보인다.

이미지 출처 – ‘Campo Baeza

캄포 바에자는 가스파 하우스와 투레가노 주택(1988)과 같은 주거 프로젝트를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마이애미 비엔날레, 왕립 영국 건축가 협회 등 다수의 비엔날레에서 수상했으며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받게 되면서 독보적인 미니멀리즘 건축가로 자리 잡았다. ‘최소한의 언어를 사용해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의 건축 철학이 담긴 파사드는 빛의 은근한 온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끔 설계돼 있다. 그가 빚어내는 집은 쏟아지는 빛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2016년, 멕시코에 위치한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라는 주택은 빛을 최대로 활용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 ‘Campo Baeza

도무스 아우레아는 라틴어로 ‘황금 궁전’을 뜻하는 말로, 그야말로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설계해냈다. 내부구조는 정원과 거실로 구성된 1층, 침실이 있는 2층과 작은 개인 공간과 수영장으로 꾸며진 옥상까지. 층마다 벽면에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창에서는 햇빛이 쏟아진다. 또한 이 공간의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길쭉한 직사각형 구멍은 단번에 시선을 빼앗는다. 허공에 걸린 멋스러운 액자는 건물의 뒤편, 시에라 마드레 산을 담고 있다. 담백한 명확함이 낭만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캄포 바에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난 시처럼 명확하고 정확한 것만 전달하고 싶다. 시는 언제나 최소한의 단어를 가지고 소설보다 훨씬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Jeanette Hägglund

이미지 출처 – ‘Jeanette Hagglund

캄포 바에자가 빚은 파사드의 단정한 면과 선은 간혹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유는 빛의 굴절과 벽의 단면이 만들어 내는 콘트라스트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여백의 ‘먹먹함’을 프레임에 담아내는 미니멀리즘 건축 사진가의 작품에 주목해보자. 스웨덴 출신 포토그래퍼 쟈넷 해그룬드(Jeanette Hägglund)의 작품에서도 건물의 면에 대한 고찰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건축물이 지닌 조형성과 컬러, 건물을 에워싼 풍경, 하늘과 바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바뀌는 외관처럼 건축에서의 빛을 이해하고자 구석구석 탐구하는 일을 즐긴다. 한 폭의 추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하학적인 이미지. 구조 사이의 반복을 이용하거나 건물의 가장자리를 비스듬히 담는 등 실험적인 구도가 돋보인다.

이미지 출처 – ‘Jeanette Hagglund

그가 도시를 여행하는 법은 바로 그 나라의 건축을 살피고 파악하는 것. 코펜하겐, 바르셀로나, 리스본, 두바이 그리고 서울까지 건축 사진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움직일 수 없는 물체를 왜곡해 추상적인 물체로 보이게끔 연출하는 게 작품의 특징. 건물을 조각조각 해체한 후 안정적인 면을 찾는 둥 미니멀리즘적 접근은 보는 이들에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출처 – ‘Jeanette Hagglund
이미지 출처 – ‘Bak Magazine
이미지 출처 – ‘Bak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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