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꿈을 꾼다. 그 꿈의 중심에는 언제나 집이 있다. 유년 시절에 집은 단순히 나를 보호해주는 안온한 공간이었고, 사춘기의 내겐 비밀스러운 상상을 키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역으로서 존재했다.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지금, 집이란 타인의 부와 사회적 계급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이 되었다.

집은 그렇게 때론 따뜻한 휴식처로, 사적인 공간으로, 마지막엔 욕망의 대상으로 남았다. 개인마다 다층적인 기억으로 존재하는 집은 그 자체로 많은 예술가에게 주요한 화두가 된다. 그들은 폐허로 남겨져 버려지거나 빛을 받아 고요히 서 있는 집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정재호, ‘을지로 빌딩’, 한지에 아크릴, 209 x 150cm, 2018

작가 정재호는 오래된 아파트를 그린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한지에 아크릴로 켜켜이 쌓인 시간을 그려낸다. 회현 시범아파트, 정릉 스카이아파트, 대성 맨숀아파트, 중산 시범아파트처럼, 한때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욕망 속에 건축되었으나 현재는 철거를 앞둔 많은 아파트들이 정재호란 화가의 손에 다시 재현됐다.

정재호, ‘소공로 99-1’, 한지에 아크릴, 280 x 280cm, 2018
정재호, ‘난장이의 공’, 한지에 아크릴, 600 x 450cm, 2018

서울의 밝은 이면을 뒤로 한 채 정재호가 바라본 1960년대~1970년대 아파트는 그 자체로 한국이란 장소의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로 한국은 신화와 같은 고도의 성장을 이뤄냈으나 그사이엔 아직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도시의 풍경이 존재해왔다. 정재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헐리고 버려지고 낡아버린 도시의 어떤 것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그렸다. 한때 경제개발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의 희망이었고, 그 이전에 한 가족의 평생의 시간이 담겼었던 집을. 그는 도시의 풍경 속에 응축된 시간 자체를 사진으로 찍어 붓으로 기록한다. 헐리고 부서져 영영 잊히기 전에 붙잡아 그렸다.

정재호, ‘원호 relief’, 130×194
정재호, ‘검은 집’, 한지에 목탄가루, 147x208cm, 2018

한지라는 종이의 물성 덕에 쌓기보다 스며드는 방법을 택한 그의 그림은 ‘낡은 아파트’란 소재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우리는 정재호의 그림을 보며 붓질을 차곡차곡 올리는, 마치 기나긴 수행과도 같은 화가의 몸짓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폐허가 된 아파트를 다시 되살려내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언젠가 존재했으나 사라져버린 어떤 대상의 죽음과 깊은 애도. 화가의 시선에 깔린 이 감정을 연민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까?

ⓒ 홍성우, 이미지 출처 – 홍성우 홈페이지
ⓒ 홍성우, 이미지 출처 – 홍성우 홈페이지

 

 

여기, 아파트 그 자체의 조형성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우는 지어진 지 2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를 주로 그린다. 실제로도 오래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그는 많은 이들이 흉물스럽다고 여기는 아파트의 구조적 미감에 주목해왔다.

ⓒ 홍성우, 이미지 출처 – 홍성우 홈페이지
ⓒ 홍성우, 이미지 출처 – 홍성우 홈페이지

홍성우는 새벽녘 동이 틀 때, 노을이 져 노란빛이 드리울 때의 아파트를 작업에 담았다. 실제로 작가는 3D 디자인 툴을 이용해 아파트의 요소를 하나씩 그려나가며, 에어컨 실외기, 배관, 내부에서 비치는 빛은 획일적인 아파트의 형태에 다양한 변주를 가능하게 한다.

아파트의 구조는 얼핏 단조로워 보이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받는 아파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적인 대상이 된다. 일상 속에 무수히 마주치는 아파트의 모습은 홍성우의 그림을 통해 전혀 다른 이면을 발견하게 한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외딴 섬에 고립된 듯한 그의 그림 속 아파트는 주거라는 기능적 목적이 아닌, 그저 ‘아파트’ 자체의 물성으로서만 존재한다.

ⓒ 홍성우, 이미지 – 홍성우 홈페이지

오래된 집은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하는 것 자체로 누군가의 기억 한편에 조용히 자리한다. 때론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고, 단단한 무게감에 짓눌리기도 하지만 집, 특히 아파트는 한국이란 공간에서 유년을 보낸 모두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공통된 무엇일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욕망에 뒤덮여 흉물이 되어버리는 집은 현실 그 자체이자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에겐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꿈으로 남기도 한다. 이는 아직도 우리가 집에 대해 할 말이 많이 남아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Writer

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