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1903~1950)은 <1984>, <동물농장>과 같은 소설로 유명하다. 인간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권력을 고발하고, 기술만능주의가 불러올 미래를 우려했다. 무거운 주제 탓에 독자 대부분은 그를 매사 정통에 목매는 노인처럼 느낀다. 상아탑에 앉아 독자를 계몽하는 대문호의 고매한 눈빛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는 마흔일곱 짧은 생애를 격정적으로 산 영원한 청년이었다. 격랑에 빠진 유럽 일대를 오가며 전쟁과 가난에 맞섰다. 밑바닥 삶을 직접 겪고 노동자의 비참한 실태를 기록했다.

그는 어떤 글이든 정치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쏘아붙였다. 어릴 적부터 사변적인 문학에 심취한 내 어깨를 죽비처럼 내려치는 선승이 따로 없다. 그래도 문학이란 게 밤의 낭만 아니던가. 힘든 노동을 마친 한 인간이 세수하고 수건을 어깨에 건 채 여린 마음을 적는 소박한 시간도 있는 법이다. 이번 글에서는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세상을 근심한 청년 조지 오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교수형>(1931)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산문을 엮은 책이다. 산문이 가진 특징은 연표로만 보던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웰이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하기 전, 이제 막 성인이 된 당시 글도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오웰은 명문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은 포기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하기로 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고생을 자처한 셈이다. 당시 경험을 기록한 작품이 <교수형>이다.

오웰은 어느 날 관할 구역 사형수가 교수대로 걸어가는 도중 물웅덩이를 피하는 걸 목격한다. 대체 몇 분살지도 못하는 사형수가 제 옷이 더럽혀지는 걸 왜 걱정할까. 오웰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형수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그는 이 일화를 통해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파괴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문명은 생명에 우열을 부여하고 살육을 정당화했다. 야만의 문명 앞에서 지식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마땅할까. 오웰은 <교수형>을 통해 자신이 작가로서 인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 경험은 오웰의 대표작이자 사회풍자소설로 유명한 <동물농장>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조지 오웰이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집필한 첫 소설이다. 접시닦이, 부랑자 생활을 하며 지켜본 세상살이가 눈물겹다. 자본가는 프롤레타리아 폭동을 두려워할 뿐, 그들의 고난을 도외시한다. 오로지 관심을 표하는 건 빈자가 폭도로 변해 권력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그래서 노동자를 가혹한 환경으로 내몰고,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옥죈다. 인류 지성의 토대가 된 서유럽의 주요 도시인 파리와 런던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죄다 곪아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깝고, 작가의 목소리가 화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회 개혁 없이 살만한 세상은 없다는 나지막한 목소리는 매섭고,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오웰은 어떤 식으로든 뾰족한 수를 제시한다. 빈자를 구호하고 지식인의 게으름을 꾸짖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세상을 고치려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조지 오웰은 이 작품을 쓴 후 스페인에 가서 프랑코 정권의 파시즘과 맞섰다. 공화파를 지지하는 좌파 의용군으로 참전했으며, 아나키즘 성향의 좌파 정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소설이 실제 삶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던 셈이다.

조지 오웰은 직접 보고 느낀 것만 적는다. 요즘 보면 이런 문학 태도가 어쩐지 무모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글로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다. 우린 어느새 낙담과 냉소에 익숙해져선 오웰이 그린 마르크스적 유토피아를 비웃고 있다. 포기와 체념의 편에 서서 개혁가의 목소리에 하품을 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주요 모티브는 대도시의 빈민굴을 훔쳐보는 지점이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타인의 고난을 구경한다. 나는 안전하고 살만하니까 안심하며 낄낄댄다. 연민을 가장한 흥미를 느낀다. 독자는 디스토피아를 구경하는 방관자다. 뼈아픈 사실은 이 시점을 현재에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조지 오웰의 작품이 영겁의 세월을 거쳐서도 여전히 뜨겁게 읽히는 이유다.

 

<서점의 추억>(1936)​

오웰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건강 문제로 긴 시간 글을 못 썼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동네 헌책방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쓴 작품이 <서점의 추억>이다. 이 글엔 헌책방에서 일하며 미래를 도모하던 오웰의 가난한 일상이 녹아있다. 당시 불규칙한 생활에 병약해진 오웰은 오전엔 글을 쓸 수 있고, 오후엔 책 더미 곁에서 일하는 헌책방 일을 좋아했다. 그 증거로 <서점의 추억>은 한층 어깨에 힘을 뺀 소소한 문장과 기대하지 않은 유머가 빼곡하다.

"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건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중략) 남성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아예 피하는 소설 장르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거칠게 말해서 평균치 소설이랄 만한 것들은 여성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남성들은 존경할 만하다 싶은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보는데, 그들의 소비량은 엄청나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멀리하는 남자는 무려 1934년의 영국 런던의 한 헌책방에서도 개체로서의 편향을 드러낸다. 누구나 아는 고전문학 아니면, 역사서나 추리소설만 찾는 남자들은 디킨스 소설 양장본을 사서 책장에 진열할 허영은 있지만,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일생을 미처 돌아볼 엄두는 못 낸다. 그들은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이를 그린 이야기엔 시시하다며 손사래 친다. 반대로 여성은 일상의 자취를 더듬는 소설에 심취한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이야기 속에 몰입하길 즐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매사 세심한 여성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런던에서도 타인을 좇으며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그린다.

 

<나는 왜 쓰는가>(1946)​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제목처럼 이 글은 스스로 글을 쓰는 이유를 자문한다. 오웰은 첫째로 순전한 이기심, 둘째는 미학적인 욕구, 셋째로는 역사적 충동을 꼽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번째로 정치적 목적을 강조한다. 내게 이 말은 세상 모든 책상물림을 향한 경고처럼 들렸다. 의도와 목적이 없는 글은 개인 안에 머물고, 타인의 고통엔 끝내 무심하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인 글이란 공공의 영역에 가닿는 글이다. 대체로 작가는 제 안위를 살피기 위해 글을 쓰지만, 조지 오웰은 세상을 근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 사회에서 모두 피하고자 하는 음습한 문제를 끄집어내고, 겉이 번지르르한 도시에서 숨죽여 사는 약자를 살핀다. 세상은 바꾸겠다는 결기로 강철같은 문장을 쌓아간다.

내가 글을 쓰는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고,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은 심리가 독서를 추동한다. 조지 오웰은 작가라는 존재를 허영과 자기중심적 태도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글을 써서 자기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무뢰한과 다를 바 없다. 요즘 도시에서 글을 쓰는 무수한 이들 역시 다르지 않다. 정제된 글을 통해 카오스로 혼재한 일상을 코스모스의 영역으로 넣고는 안심한다. 비루한 사고를 그러모아 미묘한 문장으로 장식하고, 그럴싸한 제목을 다는 기쁨. 낱말의 소리와 그로 인한 연상이 주는 정취를 만끽한다. 그것이 비단 정치적인 목적과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을 글로 표출할 수 없다면 그다음 단계는 애초에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