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서 에세이 코너를 둘러보면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제목의 책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보드라운 감성이 맞지 않는다면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은 어떨까? 마루야마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홀로 50년 가까이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한 작가다. 그는 "힐링, 위로로 세상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서늘한 돌직구를 날린다." 꼰대와 달리 자신이 체득한 인생론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의 책에는 값싼 동정도, 쉽게 내뱉은 위로의 말도 없다. 인생이란 "태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태어나지 않는 게 최상인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는 노(老)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에게 세상은 지옥과 같다. 그는 세상이 비극과 참극으로 얼룩져 있다고 고백한다. 사랑과 선의는커녕 조건만 갖춰지면 생명 따위는 가차 없이 말살당하는 곳이 이 우주다. 작가는 전쟁 같은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한 몇 가지 팁을 독자에게 전한다. 첫째, 스스로 길을 결정하기 위해 부모를 떠날 것. 둘째, 내 배를 내 힘으로 채워 일의 근본 철학을 지킬 것. 셋째,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포기하지 말 것 등. 일흔이 다 된 그가 내뱉는 독설 섞인 인생 논평은 뜨겁고 젊다. "한 치 앞은 어둠이고 빛이기도 하다. 어둠에 내던져질지, 빛으로 뛰어들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생을 타자에게 맡기는 타율적인 삶 속에서는 절대 빛을 얻을 수 없다."

 

"직장인은 노예다"

'퇴직러' '휴직러' '취준생' '이적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 생활은 일상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은 듯하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그는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 넓은 세상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고,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이 있는데 왜 어린 시절부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왔는가?" 작가는 남에게 고용되는 처지를 선택하는 건 자유의 9할을 스스로 방기하는 일이라며 어차피 이성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남 밑에서 일하는 한 백 퍼센트 만족감을 얻을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와 직장, 국가 등 타자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야말로 생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고 전한다.

 

 

"시골에서도 살기 힘들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도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꿨을 장밋빛 귀농 생활에 대한 판타지를 처참히 깨뜨린다. 작가는 초반부터 선언한다. "도시에서 현실은 분명 혹독했다. 시골 또한 그 이상이다. 결코 안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거의 50년 넘게 시골 생활을 한 그는 현실 탈피용으로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면 꿈 깨라고 직언한다. 도시 소음 못지않게 시골 또한 온갖 농기계와 엔진이 내는 소음으로 시끄럽다는 사실을, 시시콜콜 사생활을 파고드는 시골 사람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함을 경험에 빗대어 설명한다. 무엇보다 시골 역시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는 시골에서도 쉬이 맞닥뜨릴 수 있는 범죄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호신법도 알려준다. 그만큼 불편한 것이 많은 시골이니 마루야마 겐지는 귀향을 속단하지 말고 분명한 목적을 세운 후 고민해보라고 충고한다.

 

 

"소설가의 각오란,"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가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론이라면 1993년 첫 출간된 <소설가의 각오>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몰두해온 작가의 직업론을 담고 있다. 작가는 1968년부터 1991년까지 있었던 여러 일과 사념을 기록했다. 특히 '소설가의 각오'라는 글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글쓰기 위한 자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담담하게 회상한 문장 사이사이에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트집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단순히 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이 있는데,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만두는 편이 낫다"와 같은 뼈 있는 조언을 심어 놓았다.

 

고독하게 불안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산 자의 길>에서도 밝혔듯이 마루야마 겐지가 가장 기피하는 것은 집단과 타협이다. <소설가의 각오>에서도 이런 작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떼 지어 몰려다니며 허무를 안주 삼아 술 퍼마시는 과거 문인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소설가 지망생에게 권력에 오염된 문단에 휘둘리지 말고, 그 누구도 모델로 삼지 말며 오로지 깊은 고독 속에 홀로 침잠해 자신과 대적하면서 고민하고 투쟁하라고 일러둔다. 작가 본인 역시 문학상을 거부하며 예술에 정반대에 위치하는 '출세'를 멀리했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