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당시 24세의 룻거 하우어(1968)

SF 영화의 컬트 클래식으로 길이 남은 <블레이드 러너>(1982)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건물 옥상에서 추적자(해리슨 포드)를 살려준 복제인간(레플리컨트)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가 죽기 직전에 남긴 대사 장면이었다. ‘빗속의 눈물 독백(Tears in Rain Monologue)’이라고 회자되며 영화 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이 대사는, 촬영 전날 시나리오 원문을 룻거 하우어(Rutger Hauer)가 짧게 다듬고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라는 구절이 추가되며 마치 오페라와 같은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평론가들은 “영화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임종의 대사”라며 극찬했다.

룻거 하우어의 ‘TTears in Rain’ 명대사 장면

영화사에 길이 남은 독백의 주인공 룻거 하우어가 지난 7월 19일 네덜란드 자택에서 병환으로 75년 생애를 마감했다. 최근까지도 영화 촬영을 계속하여 마지막 세 편은 유작으로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모국 네덜란드와 미국 할리우드를 오가며 악역이나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하여 120여 편의 영화와 40여 편의 드라마를 남겼고, 목소리 연기로도 인상적인 작품을 남겼다. 20대 초반 데뷔 시절에는 나치 장교 역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고, 할리우드로 진출해서는 테러리스트, 헌터(‘반 헬싱’), 뱀파이어, 연쇄살인마 등 악역을 주로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2012년 이탈리아 밀란에서 인터뷰에 나선 룻거 하우어

배우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11세부터 연기를 시작한 그는, 연기 학교 졸업 후 네덜란드 명감독 폴 버호벤(Paul Verhoeven)의 영화에 출연하며 일찍 성격파 배우로 두각을 나타냈다.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영화 <Nighthawks>(1981)로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이듬해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복제인간 ‘로이 배티(Roy Batty)’ 역으로 스타로 부상했다. 여러 언어에 능통한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을 가리지 않고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쳤다.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AIDS 퇴치를 위한 자선기금을 설립했고 연기 학교를 개설하기도 했으며 환경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의 활발한 사회 공헌도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네덜란드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중세 로맨틱 판타지 <레이디호크>(Ladyhawke, 1995)에 출연한 룻거 하우어
<배트맨 비긴스>(2005)에서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CEO로 출연한 룻거 하우어

 

룻거 하우어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