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이나 빌리 아일리시의 음산하고 기괴한 색깔에 사로잡혀 본 적 있다면, 납량특집으로 물든 서늘한 여름밤을 그리워해 본 적 있다면.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에드워드 고리에게 빠져드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낮보다는 밤에 더 가까운 곳, 음울하다 못해 찝찝할 때도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꾸만 되돌아가게 되는 묘한 매력을 지닌 에드워드 고리의 기묘한 세계로 초대한다. 

아직 한국에서 에드워드 고리라는 이름은 생소한 편이다. 알려진 작품으로는 짤막한 그림책 몇 권뿐, 특유의 잔혹동화 같은 분위기로 인터넷에서 몇 차례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종종 덴마크 일러스트레이터 존 켄 모텐슨의 작품들과 뒤섞여 잘못 소개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분위기가 비슷한 데다 두 작가 모두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탓에 그 사실을 눈치챈 사람조차 적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존재는 그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에 ‘Gorey’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운명이었을까? 1950년대부터 에드워드 고리는 미국의 고딕 감성을 이끌어왔다. 후 불면 먼지가 풀썩일 듯 어둑어둑한 세상, 그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기이한 일들.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늘 그런 모습이었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묘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영화감독 팀 버튼과 기예르모 델 토로, 작가 닐 게이먼과 레모니 스니켓 등 독특한 색을 지닌 아티스트들의 이정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펑 하고 산산조각 난 꼬마들>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실제로 팀 버튼이 출간한 그림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은 에드워드 고리의 그림책 <펑 하고 산산조각 난 꼬마들>을 똑 닮았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엔 알파벳 순서대로 이름 지어진 26명의 꼬마가 등장한다. 누가 등장하든 내용은 딱 한 가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죽어 나가는 것.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에이미로 시작해 양탄자 밑에서 질식한 조지를 거쳐 진을 너무 많이 마신 질라로 끝나는 이 이야기의 첫인상은 피폐하고 엽기적이다. 음울하다 못해 끔찍한 일러스트, 감정이라곤 하나도 실리지 않은 건조한 문체.

<펑 하고 산산조각 난 꼬마들> 중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에이미, 곰에게 공격받은 베이질’
‘자객에게 암살당한 헥터, 호수에 빠진 아이다’
‘양탄자 밑에서 질식한 조지’

해피엔딩은 동화 속 유니콘 같은 거라고 비웃는 듯한 이 이야기는 그러나 사실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 누구의 관심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간 아이들, 1971년에 쓰였지만 2019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 그러니까 그의 책이 ‘아동도서’로 분류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건 단순히 잔혹한 묘사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큘라> 일러스트
에드워드 고리의 연극 <드라큘라> 무대 디자인

이 작품을 비롯해 그가 출간한 책은 총 100권 이상. 평생 책만 썼어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는 의외의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본인 작품을 원작으로 직접 연극을 연출하고, 대학 시절(무려 하버드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극단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삼아 연극 <드라큘라>의 무대 및 의상을 디자인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뉴욕 예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그는 이 작업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수상하는 토니상을 거머쥐며 가장 핫한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
타로 카드 디자인
1998년 ‘세계의 으스스한 호텔들’을 소개한 기사에 실린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 찰스 디킨스 등 유명 작가들의 책에 일러스트를 실었고,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카드와 캘린더를 제작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들 역시 원작 도서에 실린 에드워드 고리의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탄생했고, 고스 문화 또한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예술계에서 그가 얼마나 큰 자양분 역할이었는지 짐작해보기란 어렵지 않다.

TV 시리즈 <MYSTERY!>의 오프닝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 그리고 에드워드 고리의 세계가 바로 그랬다. 일러스트, 연극 연출, 의상 디자인, 스토리텔링을 넘나들며 화려하게 건설되던 고리 월드는 2000년도에 그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잠시 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폐장이 아니라 일시적인 휴장으로 여겨지는 건,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듯 에드워드 고리의 고딕풍 색깔이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통해 재탄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달 후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20년째, 글루미 콘텐츠의 부흥에 힘입어 이제는 다시 고리 월드의 개장을 기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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