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하면서 영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더욱 깊숙이 들어왔다. 이에 영화에 관한 감상은 빈번히 대화의 주제 거리로 나타나곤 하지만, 몇 마디 내에 자취를 감추기 일쑤이다. 모든 영화가 쉽게 소비되고 빠르게 사라지는 이 시대에, 이야기의 끝을 잡고 곱씹는 모임이 있다. 그들은 영화와 함께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취향을 공고히 해간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좋은 영화를 보는 최적의 방법은 좋은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라고.

 

1. 함께 완성시키는 영화,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영화의 완성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마다 내리는 결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이하 너비조아)는 이 점에 주목한 영화 모임이다. 운영자는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관객들 각자의 삶에 맞닿은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생각했고, 이 모임을 통해 나누길 원했다. 실제로도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 사이로 어색한 공기가 흐르다가 영화가 끝난 후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모이다 보니 영화 하나에도 쉽게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슷한 생각에 공감하고, 색다른 의견에 놀라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기는 훈훈해지고, 이내 다음 모임을 기약하게 된다.

출처 -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페이스북

현재 너비조아는 운영자의 사정으로 2년간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돌아온 상태다. 컴백과 함께 기존 모임과 더불어 하나의 모임이 더 생겼다. 넷플릭스 콘텐츠와 동네를 연결한 ‘넷플릭스를 보려면 연희동에 가야 한다’이다. 넷플릭스 콘텐츠를 이와 어울리는 동네에서 공간을 섭외해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어떤 콘텐츠를 상영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함께 보는 사람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각자 그들의 영화를 하나씩 함께 완성해 나갈 것이다.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페이스북

 

2. 무슨 영화를 좋아할지 몰라도, ‘비밀영화탐독’

출처 - ‘생산적헛소리’ 블로그

‘비밀영화탐독’은 말 그대로 상영할 영화를 미리 밝히지 않고 비밀로 한 채 진행하는 영화 모임이다. 모임을 알리는 공지에는 단지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는 사람,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 영화의 키워드만이 담겨 있다.

매번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건대에 자리한 독립 책방 ‘생산적헛소리’에서 열리는 모임은,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영화 기자 김동진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주최한 책방에 이름에 걸맞게 이 시간에는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제목은 모를지라도, 이야기를 나눌 주제를 먼저 던지다 보니 영화를 볼 때의 몰입도도 높아지고, 나누는 이야기도 깊어진다. 더불어 책들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의 분위기가 대화에 낭만도 곁들인다.

비밀영화탐독은 올 7월을 들어서 변화를 맞았다. 영화를 밝히지 않는 콘셉트를 뒤엎고 한 가지의 테마로 여러 달에 거쳐 여러 영화를 함께 보는 것. 먼저 7월부터 9월까지 총 세 번에 걸쳐 ‘문학’을 테마로 영화 리스트를 뽑았다. 큰 틀은 바뀌었지만, 미리 이야기의 주제를 던지는 것은 동일하다. 상영할 영화를 추측하며 기대하는 재미는 사라졌지만, 영화의 충성도 높은 팬들이 함께할 것이라 예상돼 더욱더 깊은 이야기가 오가지 않을까 기대된다.

생산적 헛소리 인스타그램

 

3. 삶이 영화이자 모임이 일상이 되는, 시네마비

어떤 모임에 참여하기까지는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 속 큰 이벤트이자 색다른 경험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 모임 ‘시네마비’는 다르다. 매주 빠짐없이 열리는 모임은, 6명 정도의 인원만 신청을 받아 진행된다. 소규모라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자주 열리는 만큼 크게 마음먹고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동네 사랑방에 찾아가 친구들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듯 편하게 찾아갈 수 있다.

올해로 태어난 지 2년이 넘은 시네마비는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모임에 자주 찾아와 실제 동네 친구 사이처럼 서로가 익숙해진 참여자들도 생겼다. 멤버십 회원제도 함께 운용해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 선물을 나누기도 하고 직접 같이 볼 영화를 추천하기도 하며 만남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즐겁게 서로를 반기고 영화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또 다른 영상을 만들어낸다. 본업으로 영화와 광고를 제작하는 운영자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편집해 영상으로 기록해두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거실에 앉은 듯 편안하고, 대화는 주저 없이 흘러간다. 어느새 시네마비 모임은 그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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