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함을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는 단연 수영장이다. 시각적 쾌감은 물론 찰박거리는 물장구 소리와 한낮의 열기에 짭조름한 땀과 뒤섞여 맡아지는 특유의 소독 내음까지. 사계절 내내 남녀노소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에, 수영장은 행운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당장이라도 눈앞에 파란 물보라가 펼쳐질 듯이 시원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작품을 통해 달라지는 수영장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더위를 잊게 해줄 것이다.

 

1. 중년 남성들의 수중발레 도전기,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둘

<스위밍 위드 맨>(2018),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9)

다큐멘터리 <맨 후 스윔(Man Who Swim)>(2010)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년남성들의 수중발레 도전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한 편이 발표된다. 그들은 평생 수중발레와는 상관없는 길을 걸어온,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가장이자 직장인들이었다. 그러다 수중발레 선수 겸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에스더 윌리엄스(Esther Williams)에 관한 책을 썼던 저널리스트 제인 마그누슨(Jane Magnusson)을 만나게 된 이들은 그 기법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된다. 2009년에 열리는 비공식 남자 세계선수권대회 참가였다.

대회를 위해 본격적으로 팀을 결성하고 코치도 정식으로 영입한다. 처음 경험해보는 높은 강도의 훈련과 갈등으로 끝없는 장벽들이 계속 생기지만, 그런데도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어느새 진정한 수중발레 선수가 되어간다. 대회에 참가하던 해에는 멤버의 절반 이상이 40세가 되면서, 더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단어인 '성장'과 '도전'을 다시 마주한다.

이러한 진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2010년 연말에 개봉하면서 이듬해에 AFI 디스커버리 채널 실버닥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그리어슨 어워드 후보작, 노르딕 영화제, 트롬소 영화제, 빅토리아 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활발히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 <스위밍 위드 맨>(2018)

이후 영국에서 감독 딜란 윌리엄스(Dylan Williams)의 손을 거쳐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스위밍 위드 맨>(2018)은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장면들이 각색되었지만, 그 애잔함과 유쾌함은 변함이 없다. '맨 후 스윔'의 실제 수중발레 팀이 출연하기도 하므로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아지다 못해 결국 좌절이 면역되어가는 나이 마흔. 그런데도 작은 빛을 발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지켜보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도피처였지만 이내 안식처가 된 곳. 그러다 전부를 걸 만큼의 목표가 된 이들의 수영장에는 에너지와 감동이 가득 차 있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2019)

그리고 올여름, 프랑스 배우 출신의 감독 질 를르슈(Gilles Lellouche)가 메가폰을 잡은 새로운 버전의 맨 후 스윔이 한국에서 개봉한다. 프랑스에서는 관객 약 400만 명을 기록하였다. 몇 년에 걸쳐 두 번씩이나 영화로 재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속이라고 해봐야 40년 동안 가정과 직장이 전부였던 사람들이 수영장에서 새로운 협동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같은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지는 오는 7월 18일, 프랑스 버전의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확인해보자. 한여름 속 시원함과 유쾌한 에너지를 선사해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2.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4등>(2016)

영화 <4등>(2016)

2016년, 대중에게 익숙한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꽤 많은 이들이 주목했던 영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 영화 프로젝트로 제작된 <4등>이다. 제 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고, 제 53회 대종상과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올해의 영화상 8회에서 신인 남우상을 받으며 영화 속 메시지를 널리 알렸다.

수영선수를 꿈꾸는 소년 ‘준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수영을 사랑하는 어린아이의 동화 같은 이야기와는 조금 멀다. 제목부터 무려 '4등'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대부분 등수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 숫자 ‘4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계급주의를 단번에 꼬집는다.

아들이 1등 하는 모습이 꿈인 준호의 엄마,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코치 ‘광수’가 중심이 되어 어린 준호를 내몬다. 여기에 방관의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주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까지, 이 속에서 준호는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수영 대회를 준비한다.

수영 때문에 코치에게 체벌을 받고 엄마의 집착에 시달리지만, 준호의 숨은 수영장에 들어가야 비로소 트인다. 괴롭지만 여전히 머물고 싶은 물속은 소년의 시선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공익영화라는 선입견으로 미장센을 놓쳐선 안 되는 장면들이며, 준호의 마음을 대변하는 순간들이다.

 

3. 치앙마이에서의 6일간의 동거

<수영장>(2011)

영화 <수영장>(2011)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카모메 식당>(2006)과 <안경>(2007)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다시 모여 만들어진 일본 영화 <수영장>은 2011년에 개봉하여 전작들과 같은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엄마가 가족을 떠나 치앙마이로 간 지 4년, 딸 ‘사요’는 엄마 ‘쿄코’를 찾으러 태국으로 간다. 사실 오랜만의 재회라지만 엄마와 딸 모두 얼굴을 마주하고도 덤덤하기만 하다. 치앙마이에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던 엄마는 딸이 일본에서 멀리 날아왔음에도 어제와 같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책을 읽거나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고, 쿄코는 훌쩍 떠나버린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막상 치앙마이에서 이웃들과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사요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시한부였던 엄마는 치앙마이에서 아르바이트로 함께 사는 청년 ‘이치오’와 엄마가 없는 태국 소년 ‘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심지어 비이의 친모를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 쿄코의 모습을 보면서 사요는 정작 엄마 없이 지내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어렵게 꺼내 보지만, 딸과 엄마의 갈등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이러한 위태롭고도 잔잔한 동거는 6일 동안 이어진다.

여유롭다 못해 너무나 고요한 엄마의 일상은 엄마의 게스트하우스 수영장과 닮았기도 하다. 영화 속의 수영장은 시끌벅적하고 흥이 가득한 분위기와는 멀다. 아무도 수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휴식처로서 최고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 엄마의 게스트하우스 수영장이다. 함께 모여 기타를 치거나 해를 쬐고, 각자가 시간을 보내는 것마저 모두 이 수영장을 곁에 두고서 이루어진다. 우연한 바람에 일어난 잔잔한 물결이 전부인 그곳에 투영되는 것은 이 이야기의 전부이기도 하기에, 영화의 제목이 <수영장>인 이유다.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