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전에 다리우스 메흐르지의 <소>(1969),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정적인 삶>(1974) 등 이란의 작가주의 영화 몇 편이 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이후에, 1983년 프랑스의 예술영화관 ‘카티에 라탱’을 통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을 비롯한 이란 감독들의 영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과 전 세계 비평가들의 주목과는 별개로 이란 영화는 늘 검열과 싸워왔다.

제5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1997)는 이란 정부가 영화제 출품을 막았으나 이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커지면서, 영화제 막판에 기적적으로 상영한 작품이다. <써클>(2000)로 제5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2010년에 징역 6년 형과 20년간 영화 제작, 시나리오 집필, 인터뷰 금지와 출국 금지를 선고받았다. 이란의 대선 부정선거 논란 이후 대규모 항의 시위에 참여하고, 이란 정부를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이유다.

창작에 있어서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이란의 감독들은 검열로 인해 그조차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검열을 뚫고 관객의 곁에 찾아온, 아름다운 이란 영화들이 있다. 그 어떤 억압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란 감독들의 영화를 살펴보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장 뤽 고다르 같은 거장들도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이란 영화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데 있어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클로즈업>(1990)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잡지에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사칭한 ‘사브지안’이라는 남자에 대한 기사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작품이다. <순수의 순간>(1996), <칸다하르>(2001) 등을 연출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가족들도 영화인으로 유명한데, 아내 마르지에 메쉬키니는 제22회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특별상을 받은 <내가 여자가 된 날>(2000)의 감독이고, 딸 사마라 마흐말바프는 제53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칠판>(2000)의 감독이다.

실업자 알리 사브지안(알리 사브지안)은 버스에서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책을 읽고 있다. 옆에 앉은 여성이 그에게 말을 걸고, 사브지안은 자신이 모흐센 마흐말바프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말을 계기로 사브지안은 여성의 집에 초대받고, 그들 가족에게 집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하며 환심을 산다. 그러나 사브지안의 거짓말은 들통나고, 이들 가족은 사브지안을 고소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재판 상황을 영화로 찍기로 한다.

<클로즈업> 트레일러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해당 사건의 실제 인물들을 캐스팅해서 영화를 제작했다. 자신이 자신을 연기하고 삶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재연하면서,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가 아슬아슬해진다. 사브지안을 고소했던 가족들은 <클로즈업>을 통해 영화에 출연하게 됐고, 사브지안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실제로 만난다. 영화가 삶을 바꾸는 순간이다. 삶의 어떤 순간을 클로즈업하는 순간, 영화가 된다. 아니, 영화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서 출발한다. <클로즈업>은 영화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느냐에 대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영화로 증명한 답안이다.

 

바흐만 고바디의 <거북이도 난다>

바흐만 고바디는 이란계 쿠르드인 최초의 영화감독이다. 쿠르드인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걸친 산악지대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3천만이 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한 번도 국가를 가져본 적 없고, 늘 전쟁에 시달린다. 쿠르디스탄 출신인 바흐만 고바디는 전쟁을 피해 이란으로 이주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쿠르디스탄에서 촬영했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에 조연출과 배우로 참여한다. 바흐만 고바디의 대표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0)과 <거북이도 난다>(2004)는 아이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거북이도 난다>는 제34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작품으로, 바흐만 고바디의 고향 쿠르디스탄을 배경으로 전쟁의 위협 안에 사는 아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도는 이라크의 국경 지역 쿠르디스탄, 정보가 중요한 이곳에서 위성 접시 안테나를 다룰 줄 알아서 ‘위성’으로 불리는 소년(소란 에브라힘)은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지뢰 제거, 탄피 수거로 돈을 번다. 어느 날, 두 팔을 잃은 헹고(히레쉬 페이살 라흐만)와 그의 여동생 아그린(아바즈 라티프)이 찾아오고, 위성은 아그린에 호감을 느낀다.

<거북이도 난다> 트레일러 

쿠르디스탄의 아이들은 지뢰를 제거해서 시장에 팔고, 지뢰는 다시 전쟁에 사용되어 아이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전쟁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폭력의 논리에 익숙해진다. 어른이 저지른 전쟁에서 고통받는 건 아이들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늘 전쟁의 위험에 시달리는 쿠르디스탄의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대피하는 법 대신 희망을 품고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날이 와야만 한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일즈맨>(2016)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수상소감으로 전한 아쉬가르 파라디는, 이란을 넘어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빈틈없이 잘 짜인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끝난 뒤에 관객의 마음에 묵직하게 남을 질문을 던진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는 제6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남녀주연상을 받고, 제8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란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딸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원하는 씨민(레이라 하타미)과 치매인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는 나데르(페이만 모아디)는 별거 중인 부부다. 나데르는 아버지를 간호할 가사도우미 라지에(사레 바이아트)를 고용한다. 얼마 후 나데르는 라지에가 아버지를 집에 두고 밖에 나간 걸 발견하고, 흥분한 나데르는 해고하겠다며 라지에를 밀치고 쫓아낸다. 라지에는 나데르 때문에 유산했다며 나데르를 고소하고, 둘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트레일러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사건을 쫓다 보면 이란 사회의 계급, 성별, 종교 등 다양한 문제가 드러난다. 나데르와 라지에가 하는 각각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이들을 명확하게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특별히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를 만들기도 하는 세상의 아이러니 속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로부터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고도 계속해서 영화를 찍어왔다. 작년에 공개한 <3개의 얼굴들>(2018)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관객들은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제6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택시>(2015)는 그 어떤 억압도 영화를 막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택시기사로 위장한 채 영화를 찍는다. 그의 명성을 이용해 불법 DVD를 팔려는 이부터, 정오 전까지 샘에 물고기를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는 이들까지 다양한 승객들이 탄다. 자파르 파나히와 미리 약속을 잡아둔 조카는 그에게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요즘 학교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찍는 영화에 대해 말한다.

<택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 있는 작품이다. 조카는 자파르 파나히에게 학교 영화 수업 때 배운 좋은 영화의 조건을 말하는데, 남녀의 접촉이나 추악한 리얼리즘, 폭력 등을 피하고 경제와 정치 관련 이슈를 다루지 말라는 게 주된 내용이다. 몇 시간 후 조카는 촬영 중에 타인이 떨어뜨린 돈을 줍고 모른 척하는 또래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를 불러서, 자신의 영화에 담기에는 좋지 않은 장면이니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도한 대로 장면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영화란 무엇일까. <택시>는 결국 영화가 품어야 할 태도에 대한 영화다. 정답은 없지만, 불편한 진실이 포장된 거짓보다는 아름답다. 검열을 뚫고 관객에게 도달한 이란의 영화들이 그렇듯 말이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